[김동철의 '이순신 오해와 진실'(4)] 중국은 여전히 갑인가?
만절필동(萬折必東)은 존명사대의 대명사 조선 14대 왕 선조(1567~1608)는 명나라, 일본, 여진 등 주변국과의 외교에서 오로지 명나라를 향한 존명사대(尊明事大)에만 집착했고 일본과 여진은 글과 예법도 모르는‘오랑캐’로 치부했다. 그런 오랑캐 가운데 남쪽의 일본은 임진\-정유재란을 일으켰고 북쪽의 여진족은 정묘\-병자호란으로 왕(인조)의 항복을 받아냈다. 조선은 변화하는 주변국 정세(1543년 일본은 포르투갈 상인에게 조총 구입, 대량생산)에 둔감했고 조정과 백성의 안위가 담보되는 외교와 안보를 경시하는 폐쇄적인 태도를 보였다. 이로써 북로남왜(北虜南倭)‘오랑캐’에 의한 처참한 병화(兵禍)가 필연적으로 발생했다. 선조는 뼛속까지 존명사대주의자로 말끝마다 만절필동(萬折必東)을 거론했다. 만절필동이란? ‘황하는 아무리 구비가 많아도 동쪽으로 흘러간다’는 뜻으로 서고동저의 중국 지형상 물은 동쪽으로 흘러가게 마련이다. 이 말은 충신(조선)의 임(중국)을 향한 절개는 꺾을 수 없다는 말과도 통한다. 중화사상을 흠모했던‘소중화(小中華)’조선은 천자를 향한 제후로서 충성을 맹서했다는 것이다. 선조는 임진\-정유재란 때 일본국을 물리친 명나라의 은혜를 기린다는 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