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준 기자의 ‘내가 만난 스타’ 1999년 수원 삼성]1999년 수원 삼성은 거의 모든 대회에서 우승전반전 뒤진 채 마쳐도 수원이 이길 것 같은 생각 들어모기업 삼성전자도 글로벌 기업으로 가파르게 성장챔피언 결정전서 ‘샤샤 신의손’ 사건 등 숱한 화제 낳아
[편집자 주] 체육기자로 활약한 중앙일보 이해준 기자의 ‘내가 만난 스타’를 연재합니다. 이 기자는 간결하고 반듯한 문장과 현장감 넘치는 표현으로 독자들에게 ‘글맛’을 느끼게 합니다. 단순 나열식 문장이 아니라 마치 영화의 한 장면을 떠오르게 하는 방식으로 묘사를 합니다. 독자 여러분도 이 기자처럼 자신의 경험담을 글로 진솔하게 표현해 보내 주시면 실어 드리겠습니다.
[글쓴이 주] 편집국 스포츠부를 떠난 지 어언 4년이 흘렀다. 한동안 글쓰기도 싫고, 운동 경기를 쳐다 보기도 싫었다. 일로 글을 쓰고, 스포츠를 본 세월이 너무 길어서다. 지난해부터 다시 축구를 보기 시작했다. 글을 쓰고 싶은 마음도 다시 생겼다. 내가 스포츠를 취재하며 만난 사람들, 겪은 사건, 들었던 이야기, 느꼈던 점을 편한 마음으로 쓰려한다. 이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한동안 고민했다. 그냥 나를 위해서 쓰기로 했다. 그 시절을 추억하는 건, 자신을 돌아보는 즐거운 일이다.

1# 1999년은 수원 삼성의 해였다. 1999년 수원 삼성은 거의 모든 대회에서 우승했다. 김호 감독은 원색의 빨간 잠바를 걸치고 삐딱하게 벤치에 기대 조금은 찌푸린 얼굴로 그라운드를 응시하곤 했다. 붉은 잠바는 수원 삼성의 상징색인 푸른색과 대비를 이루며 서로 돋보였다. 승리를 해도 그의 표정은 당연하다는 듯 나른했다.
2# 1999년 수원 삼성이 0-1로 뒤진 채 전반을 마쳐도, 왠지 결국은 수원이 이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팬도, 수원 선수도, 상대팀 선수도, 기자도 모두 그런 기분이었을 것이다. 기자들은 전반이 끝나면 기사를 어느 정도 써놓곤 하는데, 수원이 뒤진 채 전반이 끝나면, 조금은 느긋한 마음으로 경기의 추이를 지켜봤다.(심지어 0-2로 전반이 끝나도 수원 삼성 선수단의 기세는 밀리지 않았다.)
3# 박건하는 골을 넣으면 유니폼의 깃을 세우는 세리머니를 했다. 그 행동은 하나의 의식(ritual)이 됐다. 그 행동은 수원 삼성의 서포터 ‘그랑블루’를 미치게 만들었다. 고종수는 골을 넣으면 백덤블링을 했다. 날렵한 왼발잡이 그 시절 고종수는 알고도 막기 힘든 존재였다.
4# 수원 삼성이 창단한 건 1995년이다. 이렇게 짧은 기간 내에 수원 삼성처럼 빠르게 성장한 구단은, 적어도 K리그에는 없다. 다른 나라에서도 유례를 찾기 힘들 것이다.
고종수, 데니스, 샤샤, 신홍기, 박건하, …, …, …, …, ….
허영호, 안기헌, 리호승, 양태오, 김영기, …, …, …, …, …,
하나하나 놀라운 이름들이다. 수원 삼성의 프런트도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역할을 했다. 그들도 그 시절을 그리워하고 있을 게 분명하다.

5# 수원 삼성의 모기업 삼성전자는 글로벌 기업으로 가파르게 성장했다. 수원 삼성의 기세도 삼성전자를 빼닮았다. 수원 삼성의 목표는 K리그 최고가 아니라 레알 마드리드나 바르셀로나 같은 팀이 되는 것이었다. 정말로 그럴 수도 있겠다는 기대를 한 축구팬이 적지 않았다. 부천 SK, 부산 대우, 안양 LG 등 1980년대 창단한 K리그의 터줏대감은 아주 복잡한 심정으로 수원 삼성의 질주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신참 기자는 수원 삼성의 담당이 될 수 없었다. 각 스포츠 신문의 노련한 베테랑 기자들이 수원 삼성을 담당했다.
6# 시즌 막판, 수원 삼성은 일찌감치 정규리그 우승을 사실상 확정했다. 어쩌다 수원의 정규리그 우승이 확정되는 경기를 취재했다. 수원종합운동장에서 경기가 열렸다. 빅버드도 좋지만, 난 수원 삼성의 종합운동장 시절도 몹시 그립다. 그날도 김호 감독은 붉은 점퍼를 입었다. 상대팀은 기억나지 않는다. 경기 내용도 기억나지 않는다. 어렴풋한 기억으로는 수원은 전반에 조금 밀렸지만, 결국은 우승을 홈에서 확정지었다. 아마도 박건하는 후반에 골을 터트렸고, 서포터 앞으로 달려가 깃을 올리는 세리머니를 했다.
7# 챔피언 결정전은 다소 어이없이 끝났다. 샤샤의 결승골이 핸들링 논란을 빚었다. 이른바 ‘샤샤 신의손’ 사건이다. 논란 속에 MVP는 부산의 안정환이 받았다. 수원 삼성의 입장에서는 챔프전이 이렇게 끝났다는 게 옥에 티라면 티였다.

8# 1999년 축구 서포터가 되는 일은 매우 쿨한 행위였다. 축구 저지는 패션 아이템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그랑블루는 서포터 중에서도 가장 트렌티한 서포터로 통했다.
9# 1999년 수원 삼성뿐만 아니라 K리그 전체가 르네상스라 불리던 시기였다. 안정환, 이동국, 고종수는 소녀팬을 몰고 다녔다. 1999년으로부터 벌써 2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참 많이 달라졌다.
10# 수원 삼성이 우승한 대회, 당시 스쿼드를 누군가 댓글로 채워 주시길… 그리고 그밖에 1999년 수원 삼성과 K리그에 대한 추억도 함께.





기사 댓글 0
욕설, 타인 비방, 광고 등의 댓글은 예고 없이 삭제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