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준 기자의 ‘내가 만난 스타’ 이동국]독일까지 진출했던 이동국불혹의 나이에도 여전히 부동의 골잡이
[편집자 주] 체육기자로 활약한 중앙일보 이해준 기자의 ‘내가 만난 스타’를 연재합니다. 이 기자는 간결하고 반듯한 문장과 현장감 넘치는 표현으로 독자들에게 ‘글맛’을 느끼게 합니다. 단순 나열식 문장이 아니라 마치 영화의 한 장면을 떠오르게 하는 방식으로 묘사를 합니다. 독자 여러분도 이 기자처럼 자신의 경험담을 글로 진솔하게 표현해 보내 주시면 실어 드리겠습니다.
[글쓴이 주] 편집국 스포츠부를 떠난 지 어언 4년이 흘렀다. 한동안 글쓰기도 싫고, 운동 경기를 쳐다 보기도 싫었다. 일로 글을 쓰고, 스포츠를 본 세월이 너무 길어서다. 지난해부터 다시 축구를 보기 시작했다. 글을 쓰고 싶은 마음도 다시 생겼다. 내가 스포츠를 취재하며 만난 사람들, 겪은 사건, 들었던 이야기, 느꼈던 점을 편한 마음으로 쓰려한다. 이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한동안 고민했다. 그냥 나를 위해서 쓰기로 했다. 그 시절을 추억하는 건, 자신을 돌아보는 즐거운 일이다.

취재 하면서 좋아하게 된 선수를 꼽자면 이동국을 빼놓을 수 없다. 내가 횡설수설한다면,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아서다. (이전에도 몇 번 페북에 이동국을 쓰려다 말았다. 하고 싶은 말이 흘러 넘쳐 정리가 안됐다.)
#이동국은 1979년생이다. 내가 초등학교 1학년이 되던 해, 그가 태어났다.
#그는 월드컵에서 두 번 좌절했다. 2002년 한일월드컵 땐 최종 엔트리에서 탈락했다. 2006년 독일 월드컵을 앞두곤 무릎 십자인대가 파열됐다. 어쩌면 두 번이 아니다. 세 번 좌절했다. 2010년 남아공월드컵 때는 출전했다. 그러나 우루과이와 16강에서 교체 투입된 그가 경기 막판 날린 회심의 슈팅은 힘없이 굴러갔다. 그의 월드컵이 끝났다.

#2002년 그는 23세였다. 2006년 27세, 2010년엔 31세였다. 2014년 월드컵 땐 부름을 받지 못했다. 황선홍은 숱하게 비난을 받았지만, 2002년 월드컵에서 한을 풀었다. 이동국은 그러지 못했다.
#2010년 남아공월드컵을 앞두고, 최종 엔트리에 이동국 포함될 지 관심이 모아지던 때다. 그를 전화로 인터뷰하며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이번에 또 월드컵 엔트리에서 탈락하면 어떡하죠.’ 그가 답했다. “2014년 월드컵이 있잖아요.”
#내가 기대한 답은 따로 있었다. “이번은 나에게 마지막 기회다. 반드시 출전해 한을 풀고 싶다”라는 상투적 대답을 기사의 마지막 문장으로 쓰고 싶었다. 그런 의지를 피력해야 감독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살 수 있다. 그런데 “(이번에 못 가면) 2014년이 있잖아요”라니.
#결국 기사에는 그의 멘트를 녹이지 못했다. 이번 월드컵이 이동국에게 얼마나 중요한 도전인지 잔뜩 설명해 놓았는데 맨 마지막에 ‘이동국은 “(이번에 못 가도) 2014년 월드컵이 있다”라고 말했다’라고 쓸 수는 없었다.
#그 이야기를 기사에 쓰면, 정말로 그가 월드컵 대표팀에서 또다시 탈락할 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들기도 했다. 죽기 살기로 가고 싶어하는 선수들 천지니까. 실제로 대회 직전 이근호가 대표팀에서 탈락했다. 어쩌면 이동국이 짐을 쌀 수도 있었다.

#요즘 대표팀 조기 은퇴가 유행이 돼버렸다. 벤투의 만류에도 기성용, 구자철 등이 은퇴를 선언했다. 후배에게 자리를 비워준다는 게 명분이지만 소속 팀에 집중하려는 현실적이고 실리적인 선택이다.
#이동국은 “대표팀은 은퇴하는 곳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그만두고 싶다고 그만둘 수 있는 곳이 아니”라며 “언제든 불러주면 달려가겠”단다. 대표팀은 몇 번 그를 버렸지만, 그는 대표팀을 버리지 않겠단다. 약삭빠른 시대를 역주행하는 이동국의 ‘촌스러운’ 로열티가 존경스럽다.
#이동국이 스타가 된 건 1998년 프랑스 월드컵이었다. 네덜란드와 0-5로 패한 경기에, 차범근 감독은 이동국을 교체 투입했다. 패한 경기지만, 미래의 한국축구를 위해, 새로운 세대에게 경험을 쌓을 기회를 주기 위해서였다. 비록 골대를 벗어났지만, 이동국은 힘차게 네덜란드 골문을 향해 슈팅을 쏘았다. 절망적인 패배 속에서 10대 소년 이동국이 보여준 패기는 한국 축구팬들의 마지막 자존심을 지켜주었다.

#그 후 이동국은 한국 축구의 ‘상수’였다. 이동국은 부동의 스트라이커였다. 그가 없는 대표팀은 상상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히딩크는 생각이 달랐고, 이동국은 2002년 충격적으로 엔트리에서 탈락했다. 이동국으로선 축구를 시작해 본 이후 처음으로 맛 본 너무나도 큰 좌절이었다.
#그는 월드컵 내내 축구와 상관없는 친구들과 월드컵 소식을 알 수 없는 곳으로 여행을 갔다. 그리고 상무에 들어갔다. 군대에서 박박 기면서, 이동국은 다시 살아났다.

#2006년 독일 월드컵이 열릴 때 이동국도 독일에 있었다. 스포렉이라는 재활 의료 센터에서 치료받았다. 그 와중에 대표팀을 응원하러 왔다.
#그가 맛본 실패가 더 있다. 그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미들스브러에 진출했다. 이렇다 할 활약을 펼치지 못하고 한두 시즌 만에 유턴했다.
#이동국만큼 팬들의 비난을 받은 선수가 또 있을까. “게으르다.” “뛰지 않는다.” “현대 축구에 맞지 않는다.” 숱한 비난이 그를 따라다녔다.
#그는 이 모든 실패를 이겨냈다. 이영표, 송종국, 김남일, 설기현, 박지성 등등등. 그와 비슷한 시절에 국가대표가 됐고, 지금은 모두 은퇴했다. 이동국은 여전히 현역으로 뛰고 있다. 올해 그는 만으로 마흔이 됐다.

#그가 이처럼 놀라운 회복 탄력성을 가진 비결은 뭘까. 언제 그랬냐는 듯 상처를 툭툭 털고 일어서는 느긋하고 너그러운 성품은 어디서 왔을까. TV 프로를 보며 답을 슬쩍 엿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TV 프로그램 ‘슈퍼맨이 떴다’를 보면 이동국은 자녀들에게 너무도 훌륭한 아빠다. 난 이동국의 아버지를 알고 있다. 그도 아들에게 매우 헌신적이고, 자상한 아빠였다는 걸 나는 알고 있다. 이동국이 대박이를 키웠듯, 이동국의 부친도 이동국을 키웠을 것이다. 부모의 헌신과 너그러움이 이동국을 좌절에 좌절하지 않는 넉넉하고 자신감 있는 사내로 키웠을 것이다.
#이동국은 아시안컵에 출전했다가 음주 문제가 불거져 징계를 당한 적이 있다. 몇 몇 선배 선수들과 함께였다. 이동국이 당시 가장 후배였다. 선배들이 놀러 가자면, 좀처럼 뿌리치지 못하는 성격. 이것도 이동국이다.
#이동국을 보면, 세상엔 크게 좌절할 일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십 수년이 흐른 지금, 2002년 월드컵 탈락은 아무 것도 아닌 일처럼 느껴진다. 2002년을 빛냈던 그 모든 선수들이 사라지고, 이동국이 홀로 남아 K리그를 빛내고 있다. 나에겐, 이동국이 박지성보다 더 빛나는 축구 선수다.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성경 구절이 있다. 기독교 교리의 핵심을 관통하는 유명한 구절이다. 이동국이 그렇다. 실패와 실패와 실패가 합력하여 만 40세 '불굴의 스트라이커' 이동국을 빚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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