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우가 왜 귀엽냐고?" "깝치는 게 귀엽잖아"

[이해준 기자의 ‘내가 만난 스타’ 축구선수 이승우]거침없고, 활달하고, 재기 발랄하고. 게다가 축구까지 잘해바르셀로나 유스에서 바르셀로나 성인팀으로 올라가지 못한 건이승우의 인생에 첫 번째 중대한 시련월드컵과 아시안게임 보면, 제법 형들과 잘 어울리고 있는 것 같아바르셀로나에서 밀려난 시련이 그를 더 성숙하게 만들었다면 다행겨우 스무 살...일찍 출세해 대중 관심 받는 가혹한 일

[편집자 주] 체육기자로 활약한 중앙일보 이해준 기자의 ‘내가 만난 스타’를 연재합니다. 이 기자는 간결하고 반듯한 문장과 현장감 넘치는 표현으로 독자들에게 ‘글맛’을 느끼게 합니다. 단순 나열식 문장이 아니라 마치 영화의 한 장면을 떠오르게 하는 방식으로 묘사를 합니다. 독자 여러분도 이 기자처럼 자신의 경험담을 글로 진솔하게 표현해 보내 주시면 실어 드리겠습니다.

[글쓴이 주] 편집국 스포츠부를 떠난 지 어언 4년이 흘렀다. 한동안 글쓰기도 싫고, 운동 경기를 쳐다 보기도 싫었다. 일로 글을 쓰고, 스포츠를 본 세월이 너무 길어서다. 지난해부터 다시 축구를 보기 시작했다. 글을 쓰고 싶은 마음도 다시 생겼다. 내가 스포츠를 취재하며 만난 사람들, 겪은 사건, 들었던 이야기, 느꼈던 점을 편한 마음으로 쓰려한다. 이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한동안 고민했다. 그냥 나를 위해서 쓰기로 했다. 그 시절을 추억하는 건, 자신을 돌아보는 즐거운 일이다.

#1 중학교 3학년 딸은 이승우를 좋아한다.

“왜 좋아?”

“깝치는 게 귀엽잖아.”

“.......”

거침없고, 활달하고, 재기 발랄하고. 게다가 축구까지 잘한다. 그러니 좋아할 수밖에. 이승우를 좋아하는 소녀는 우리 딸뿐만이 아니다.

축구선수 이승우.(사진=이해준 기자 페북)
축구선수 이승우.(사진=이해준 기자 페북)

#2 약 7~8년 전 서너 해 동안 차범근축구상 심사에 참여했다. 상을 공동제정한 일간스포츠 축구팀장 자격으로 말석을 지켰다. 이승우가 심사 대상에 오른 적이 있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축구를 너무 잘했다. 그런데 심사위원 중 한 명이 딴지를 걸었다.

“실력만 놓고 보면 두말 할 것 없이 대상을 받아야 하는데…”라며 어렵게 이승우의 축구 외적인 태도를 거론했다. 승부에 대한 지나친 집착, 자기 중심적 플레이, 불 같은 성격에 대한 이야기가 오갔다.

#3 논란에 논란을 거듭한 끝에 이승우는 차범근 축구대상 중 우수상을 받았다. 몇 가지 문제가 있지만, 이승우를 빼놓는 건 말이 되지 않을 정도로 탁월했기 때문이다.

#4 놀라운 기량을 뽐내는 초등학교 축구선수 중 대다수는 피지컬이 월등한 경우가 많다. 다른 선수보다 성장이 빨라 초등학교 무대를 휘저은 사례다. 이승우는 그렇지 않았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도 큰 편이 아니었다.

#5 이승우는 FC바르셀로나에 선발됐다. 리오넬 메시, 이니에스타 등 무시무시한 선수를 길러낸 바르셀로나의 유스팀에서 성장할 기회를 잡은 것이다. 바르셀로나에서 살아남기는 쉽지 않았다. 바르셀로나 유스에서 바르셀로나 성인팀으로 올라가지 못한 건 아마도, 이승우의 인생에 첫 번째 중대한 시련이었을 것이다. 지금은 이탈리아 2부리그에서 뛰고 있다.

축구선수 이승우.(사진=이해준 기자 페북)
축구선수 이승우.(사진=이해준 기자 페북)

#6 그러나 이승우는 기죽지 않았다. 거침없는 태도도 변함없다. 아시안게임 일본과 결승전에서 이승우가 터트린 선제골이 매우 인상적이다. 그는 페널티박스에서 손흥민의 공을 번개처럼 가로채 민첩하고 정확한 슈팅으로 골망을 흔들었다. 기사를 살펴보니 이승우가 비키라면서 달려들기에 손흥민이 양보했다고 한다. 이승우처럼 담대하고, 자신감 넘치는 선수가 아니었다면, 감히 손흥민의 슈팅 기회를 빼앗는 일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 순간 이승우의 선택은 감독의 처지에서 매우 옳았다. 이승우가 더 빨리 슈팅할 수 있었고, 골문을 향한 각도도 좋았다. 천부적 재능과 스트라이커에게 꼭 필요한 자신감이 돋보인 장면이다.

#7 이승우를 보면 이천수가 떠오른다. 재능과 거침없고 활달한 성격 등 비슷한 구석이 많아서다. 이천수를 두고 많은 축구인은 “재능은 박지성보다 훨씬 낫다”고 말한다. 그는 2002 월드컵 4강에 힘을 보탰고, 스페인리그에서도 뛰었으며, K리그에 돌아온 뒤에는 ‘사기 아이템’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남다른 클래스를 뽐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팬들이 이천수를 두고두고 아쉬워하는 이유는, 그의 재능에 거는 기대가 더 컸기 때문이다.

#8 전에도 한번 이야기했던 것처럼 축구 선수의 전성기는 28세 정도부터다. 성실한 성향의 스타, 이를 테면 박지성과 이영표 같은 선수는 이 시기 이후부터 3~4년간 ‘커리어 하이’를 찍는다. 축구를 보는 눈이 넓어진데다 특유의 성실함으로 체력을 유지할 수 있어서다. 어렸을 때 천재라는 소리를 들었던 선수 중에는 28세 이후 체력이 저물며 빛을 잃는 경우가 적지 않다.

#9 심사를 맡았던 인연으로 이승우의 소식이 미디어에 오르내릴 때마다 더 관심을 가지고 보게 된다. 논란 끝에 차범근 축구상을 탄 초등학생 소년은 과연 어떻게 성장할 것인가. 아주 느리게 진행되는 성장 다큐멘터리나 드라마를 보는 느낌이다. 성격과 인성은 축구 스타가 되는 것에 어느 정도의 영향이 있는 것일까. 시나리오 작가는 이승우. 그가 하루하루 온몸으로 써내고 있다.

#10 월드컵과 아시안게임을 보면, 이승우는 제법 형들과 잘 어울리고 있는 것 같다. 바르셀로나에서 밀려난 시련이 그를 조금 더 성숙하게 만들었다면 반가운 일이다. 그에 대한 신뢰도가 조금 커졌다.

#11 우리 딸이 이승우를 좋아하는 모습이 왠지 거슬린다. 매력적이지만 아무렇지도 않게 상처를 줄 수 있는 ‘나쁜 남자’ 같아서다. 박지성처럼 사위 삼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선수가 된다면, 이승우는 박지성, 손흥민, 차범근을 능가할 수 있을 것이다.

#12 그게, 그렇게 쉽지는 아닐 것이라는 게 내 솔직한 생각이다. 재기발랄한 선수에게 진중함까지 바라는 건 지나친 욕심일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나는, 그의 운명을 지켜보는 일이 재밌다.

#13 이제 겨우 스무 살. 이렇게 일찍 출세해, 대중의 관심을 받는다는 건 꽤나 가혹한 일이다. 소년급제가 좋은 일이 아니라는 옛말이 괜한 말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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