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년 전 ‘발’을 보다, 한국 스포츠과학의 첫걸음을 뗀 논문

정훈교의 1979년 경희대 석사학위 논문「발의 형태와 기초운동능력에 관한 연구」스포츠과학이 탐구할 새로운 질문 일찍 제기한신대 명예교수...스포츠재활학과 대학원장 역임2010년부터 S전자 근골격계질환 예방운동센터장

요즘 사람들의 시선이 땅으로 향하고 있다. 정확히 말하면 땅을 밟는 ‘발’로 향하고 있다. 공원과 숲길, 해변에서는 맨발걷기를 즐기는 사람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걷기 자세와 발바닥 아치, 기능성 신발에 관한 관심도 높아졌다. 건강하게 걸으려면 먼저 자신의 발부터 알아야 한다는 이야기도 자주 들린다.

그런데 문득 궁금해졌다. ‘우리는 언제부터 발을 과학적으로 바라보기 시작했을까?’ 우연히 지인에게서 발을 전문적으로 연구해 온 학자가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가 최근의 걷기 열풍이 시작되기 훨씬 전인 1970년대부터 발을 연구했다는 사실이었다.

"언제부터 발을 과학적으로 바라보았을까?" 궁금 알아보니 정훈교 교수였다. 현재 한신대학교 명예교수로 이름을 올리고 있으며, 전공은 스포츠재활이다. 2010년부터 S전자 근골격계질환 예방운동센터장으로도 활동하고 있다고 했다. 이력까지 확인하고 나니, 마음속에 ‘신뢰’라는 도장이 금세 찍혔다. 이 정도라면 발에 관한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그래서 정 교수를 만나게 되었다.

그의 연구는 책상 위에만 머물지 않고 사람들의 자세와 움직임, 근골격계 건강을 관리하는 현장으로 이어졌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가 1979년 경희대학교 대학원에 제출한 석사학위논문의 제목은 「발의 형태와 기초운동능력에 관한 연구」다. 제목만 보면 담백하다. 그러나 그 안에 들어 있는 질문, '‘발의 생김새는 사람의 운동능력과 어떤 관계가 있을까?’'는 결코 작지 않다.

오늘날에는 발바닥 압력측정기, 3차원 발 스캐너, 동작분석 카메라, 근전도 장비로 발과 움직임을 정밀하게 살펴본다. 하지만 정훈교 교수는 이런 첨단 장비가 흔하지 않던 1979년에 이미 발의 형태와 운동 수행을 연결해 보려고 했다. 모두가 선수의 키와 몸무게, 근력과 달리기 기록을 바라볼 때 그는 몸의 가장 아래쪽, 땅과 맞닿은 발을 내려다본 것이다. 과학의 시작은 거창한 장비가 아니라 남들이 지나친 것을 다시 보는 눈일지도 모른다.

이력 확인하니, 마음속 ‘신뢰’라는 도장 꾹

정훈교 교수의 석사논문 「발의 형태와 기초운동능력에 관한 연구」.
정훈교 교수의 석사논문 「발의 형태와 기초운동능력에 관한 연구」.

빛바랜 종이 위에서 발견한 살아 있는 질문

논문을 펼치자 시간이 먼저 모습을 드러냈다. 종이는 누렇게 빛이 바래 있었고, 글자는 활자로 한 자 한 자 찍혀 있었다. 당시의 작업 방식을 생각하면 먼저 육필로 원고를 작성한 뒤 타자기로 입력한 것으로 보인다. 문장 사이의 간격과 활자의 농도에는 오늘날의 워드프로세서에서는 찾기 어려운 손맛과 긴장이 남아 있었다.

그림도 컴퓨터로 만든 것이 아니라 손으로 직접 그린 듯했고, 도표 역시 자와 펜을 사용해 정리한 흔적이 느껴졌다. 지금은 마우스 몇 번이면 표와 그래프가 만들어지지만, 당시에는 선 하나와 숫자 하나에도 사람의 손과 시간이 들어갔을 것이다. 그 빛바랜 종이는 오래된 낙엽처럼 보였지만, 그 안의 질문은 아직 마르지 않은 씨앗 같았다.

논문의 첫 문장에는 달리고, 매달리고, 던지고, 기어오르는 인간의 본능적인 움직임이 등장한다. 저자는 어떤 스포츠든 발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발은 몸의 맨 아래에 있지만 운동에서는 출발점이다. 건물로 치면 기초이고, 자동차로 치면 바퀴이며, 나무로 치면 뿌리다. 기초가 흔들리면 건물이 흔들리고, 바퀴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면 좋은 엔진도 속도를 낼 수 없다. 정훈교는 바로 그 ‘몸의 기초’를 연구 대상으로 삼았다.

연구대상은 중학생 60명의 발자국

연구 대상은 중학교 3학년 학생 60명이었다. 연구자는 이들의 발자국을 측정한 뒤 발의 형태를 네 가지로 나누어 살펴보았다. 첫째는 발의 길이, 둘째는 발의 너비, 셋째는 발의 두께, 넷째는 편평각이었다. 편평각은 발바닥 가운데의 홈, 즉 발의 아치가 어느 정도 형성되어 있는지를 보여 주는 값이다.

그다음 학생들의 기초운동능력을 측정했다. 제자리너비뛰기로 순발력을, 왕복달리기로 민첩성을 살펴보았다. 눈을 감고 한쪽 발로 서게 하여 평형성을 측정했고, 100m와 1,000m 달리기 기록도 확인했다. Harvard Step Test를 통해 심폐기능도 조사했다. 이것은 일정한 높이의 발판을 정해진 속도로 오르내린 뒤, 운동 후 심박수가 얼마나 빨리 정상으로 돌아오는지 측정하여 심폐지구력을 알아보는 검사다.

한쪽에는 학생들의 발자국이 놓였고, 다른 한쪽에는 달리고 뛰고 버틴 기록이 놓였다. 연구자는 그 두 자료 사이에 보이지 않는 다리가 있는지 찾으려 했다. 발 모양과 운동 기록 사이의 관계를 순위차 상관계수로 계산하고, 통계에서 나타난 관계가 실제 체력검사 기록과도 일치하는지 비교했다. 1979년의 교실과 운동장에서 이루어진 작은 실험이었지만, 연구의 질문은 오늘날 스포츠과학의 질문과 맞닿아 있었다.

정훈교 교수의 석사논문 「발의 형태와 기초운동능력에 관한 연구」의 일부.
정훈교 교수의 석사논문 「발의 형태와 기초운동능력에 관한 연구」의 일부.

발의 길이는 순발력과 1,000m 달리기에 관계

연구 결과에서 발의 길이는 순발력과 1,000m 달리기에 관계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발이 긴 학생일수록 제자리너비뛰기와 1,000m 달리기 기록이 좋았다. 발의 폭은 순발력과 높은 관계를 보였다.

흥미롭게도 넓은 발보다 좁은 발을 가진 학생이 제자리너비뛰기에서 약 6cm 더 좋은 기록을 냈다. 넓은 받침대가 언제나 더 좋은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는 우리의 짐작을 살짝 뒤집는 결과다. 발은 단순히 넓고 큰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움직임에 알맞은 형태와 기능을 갖추는 일이 중요할 수 있다는 질문을 던진다.

발의 두께는 모든 운동능력과 강한 관계를 보인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순발력과 100m 달리기에서는 분명한 관계가 나타났다. 실제 기록을 비교하면 발이 두꺼운 학생은 제자리너비뛰기에서 12.4cm 더 멀리 뛰었고, 100m에서는 0.6초, 1,000m에서는 19초 빨랐다. 0.6초는 일상에서는 눈 깜짝할 시간처럼 들린다. 그러나 100m 달리기의 세계에서는 출발선과 결승선 사이의 풍경을 바꿀 수 있는 시간이다.

발바닥에 숨어 있던 작은 활 '편평각' 클수록 평형성, 순발력 우수

이 논문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부분은 편평각이다. 발바닥의 아치는 활과 닮았다. 활시위가 당겨졌다가 화살을 밀어내듯, 발도 땅을 디딘 뒤 몸을 앞으로 보내야 한다. 다리의 아치가 무게를 견디듯 발바닥의 아치도 몸을 받치고 충격을 나누는 구조다.

연구 결과 편평각은 평형성, 순발력, 100m 달리기, 1,000m 달리기와 관계를 보였다. 실제 기록에서도 편평각이 클수록 좋은 결과가 나타났다. 특히 1,000m에서는 편평각이 큰 학생이 약 21.2초 빨랐고, Harvard Step Test 지수가 높은 학생은 약 9초 빨랐다.

오래달리기에서 심장과 폐가 엔진이라면 발은 지면을 끊임없이 굴러가는 바퀴다. 엔진만 좋다고 자동차가 잘 달리는 것은 아니다. 바퀴가 힘을 제대로 전달해야 한다. 정훈교 교수의 연구는 오래달리기에서 심폐기능뿐 아니라 발바닥의 형태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보았다.

정훈교 교수의 석사논문 「발의 형태와 기초운동능력에 관한 연구」의 일부.
정훈교 교수의 석사논문 「발의 형태와 기초운동능력에 관한 연구」의 일부.

평형성은 발의 길이, 너비, 두께와는 뚜렷한 관계가 없었지만 편평각과는 관계가 나타났다. 민첩성은 발 형태와 대부분 뚜렷한 상관관계를 보이지 않았으나, 실제 기록에서는 발이 긴 학생과 편평각이 큰 학생이 상대적으로 좋은 결과를 냈다.

순발력에서는 발이 길고, 폭이 좁고, 두껍고, 편평각이 큰 학생이 좋은 기록을 보였다. 100m 달리기에서도 발이 길고, 폭이 약간 좁으며, 두껍고, 편평각이 큰 학생의 기록이 우수했다.

길고, 폭이 약간 좁으며 두꺼운 발이 기초운동능력에서 좋은 기록

연구자는 전체 결과를 종합해 발이 길고, 폭이 약간 좁으며, 얇은 발보다 두꺼운 발을 가진 학생이 기초운동능력에서 좋은 기록을 보였다고 정리했다. 특히 편평각이 클수록 기본 운동능력에 많은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판단했다.

물론 오늘날의 기준으로 보면 이 연구에는 한계가 있다. 연구 대상은 중학교 3학년 학생 60명으로 제한되어 있다. 성별과 지역, 훈련 경험 등도 더 세밀하게 나눠 볼 필요가 있다. 상관관계가 나타났다고 해서 특정한 발 모양이 좋은 운동기록의 직접적인 원인이라고 단정할 수도 없다.

예를 들어 발이 긴 학생은 키가 크고 다리가 길었을 가능성이 있다. 100m 기록에는 발 형태뿐 아니라 근력, 출발 기술, 훈련 경험, 체격과 심리 상태 등도 영향을 준다. 오늘날 같은 연구를 다시 한다면 3차원 발 스캐너, 족저압 측정기, 지면반력기와 동작분석 장비를 사용하고 더 많은 사람을 대상으로 여러 조건을 함께 분석할 것이다.

아무도 표시하지 않았을 때 먼저 선을 그은 논문

그러나 오래된 지도를 오늘의 위성지도와 비교하며 “정확하지 않다”고만 말할 수는 없다. 오래된 지도의 가치는 아무도 길을 표시하지 않았을 때 먼저 선을 그었다는 데 있다. 정훈교 교수의 논문도 그렇다. 이 논문의 진정한 가치는 ‘운동을 잘하는 발의 정답’을 완성했다는 데 있지 않다. 국내 스포츠과학이 탐구할 새로운 질문을 일찍 제기했다는 데 있다.

▲선수의 몸을 볼 때 키와 몸무게만 볼 것인가. ▲발바닥 아치는 달리기와 도약에 어떤 역할을 하는가. ▲발의 정적인 모양과 실제 움직임은 어떻게 연결되는가. ▲발의 형태와 근력, 체격, 심폐기능 가운데 어느 요인이 운동 수행에 더 큰 영향을 주는가. ▲성장기의 발과 성인의 발, 일반인의 발과 전문선수의 발은 어떻게 다른가.

1979년의 석사논문 한 편이 후배 연구자들에게 이처럼 여러 갈래의 질문을 건넨다. 그것은 완성된 집 한 채를 물려준 것과는 다르다. 오히려 좋은 땅에 첫 삽을 뜨고, “여기에서 더 깊이 파보라”고 표시한 말뚝에 가깝다. 후배 학자들은 그 자리에서 발바닥 압력과 보행, 균형, 근활성도, 스포츠 손상, 신발 설계, 선수의 종목 적합성 같은 연구를 이어갈 수 있다.

정훈교 교수와 그의  대학원생 시절 석사논문 「발의 형태와 기초운동능력에 관한 연구」 표지.
정훈교 교수와 그의 대학원생 시절 석사논문 「발의 형태와 기초운동능력에 관한 연구」 표지.

“여기서 더 깊이 파보라” 말뚝 제시한 연구

정훈교 교수는 논문의 마지막에서 달리기나 너비뛰기처럼 발을 많이 사용하는 종목의 선수를 뽑을 때 발 형태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또한 더 전문적인 선수를 대상으로 연구하고, 운동능력에 영향을 주는 여러 요인을 함께 살펴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흥미로운 점은 그 제언 자체가 자신의 연구를 끝맺는 문장이면서 동시에 다음 연구의 출발선이라는 사실이다. 그는 결과에 마침표를 찍었지만, 질문에는 쉼표를 남겼다.

오늘 우리는 맨발로 흙길을 걷고, 스마트워치로 걸음 수를 세며, 3차원 장비로 자세와 보행을 분석한다. 그러나 반세기 전 한 대학원생은 색이 바랜 종이 위에 발자국을 올려놓고 “발의 형태는 우리의 움직임과 어떤 관계가 있는가?”를 이미 묻고 있었다.

그 질문은 낡지 않았다. 오히려 맨발걷기와 걷기운동이 유행하는 지금 더 생생하게 들린다. 논문 속 활자는 오래되었지만 문제의식은 여전히 젊다. 손으로 그린 듯한 그림과 도표는 투박하지만, 그 안에는 국내 스포츠과학이 앞으로 걸어갈 길을 먼저 가리킨 발자국이 남아 있다.

스포츠과학의 성장과정 살펴볼 수 있는 자료

그래서 이 논문은 서가 깊숙한 곳에 묻어 두기에는 아깝다. 국내 발 연구의 역사와 스포츠과학의 성장 과정을 살펴보는 자료로도 귀하지만, 후세 학자들에게 새로운 연구 아이디어를 제공하는 실마리로서도 가치가 충분하다. 선구적인 연구란 언제나 완벽한 정답을 내놓는 연구가 아니다. 때로는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은 곳을 가리키며 좋은 질문 하나를 남기는 연구다.

정훈교 교수가 1979년 대학원 석사과정 시절에 작성한 이 논문은 몸의 가장 낮은 곳에서 학문의 가장 먼 길을 내다보았다. 그는 발을 측정했지만, 사실은 미래의 스포츠과학이 걸어갈 첫걸음을 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가 남긴 발자국 위로 이제 후배 학자들이 다음 걸음을 내디딜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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