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는 최고의 운동이지만잘못 걸으면 몸을 망가뜨릴 수도 있어도움말=정훈교 한신대 명예교수(S전자 근골격계 예방운동센터(DSR) 센터장)
【편집자 주】 대한민국은 초고령사회에 접어들면서 근골격계 질환과 낙상, 근감소증이 중요한 건강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이 연재는 스포츠재활학과 족부(발) 기능, 체형 교정, 균형능력, 낙상 예방 등을 연구해 온 정훈교 교수와 지난 7월 31일 경기도 화성시 동탄의 한 카페에서 진행한 심층 인터뷰를 바탕으로 구성했다. 무릎 통증의 원인부터 올바른 걷기, 발과 척추의 역할, 노년 건강까지 근골격계의 핵심 주제를 살펴본다.

몸의 균형이 무너진 채 무작정 많이 걸으면
같은 동작 반복하며 부담을 축적하는 나쁜 습관
"하루 1만 보를 걸었습니다."
건강을 위해 걷는 사람이 크게 늘었다. 공원과 둘레길은 물론 해변과 산책로에도 걷는 사람들로 붐빈다. 맨발걷기 열풍까지 더해지면서 걷기는 이제 국민운동이 됐다. 누구나 쉽게 시작할 수 있고 비용도 거의 들지 않는다는 점에서 가장 대중적인 운동으로 꼽힌다.
하지만 정훈교 교수는 "걷기 자체보다 먼저 자신의 몸을 알아야 한다"면서 걷기 열풍 속에서 한 가지 우려를 내놓는다. 몸의 균형이 무너진 상태에서 무작정 많이 걷는 것은 건강을 쌓는 일이 아니라 같은 동작을 반복하며 부담을 축적하는 일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맨발걷기도 마찬가지...몸이 준비되지 않으면 독
걷기는 심폐기능을 높이고 혈액순환을 돕는 대표적인 유산소 운동이다. 그러나 같은 걷기라도 약이 되기도 하고, 독이 될 수도 있다고 정 교수는 설명한다. 예를 들어 골반이 한쪽으로 틀어졌거나 발의 아치가 무너진 사람이 하루 수만 보를 걷는다면 어떻게 될까. 걸을 때마다 몸은 같은 방향으로 기울고, 같은 무릎과 발목에 반복적으로 충격이 가해진다. 처음에는 피로감 정도로 지나가지만 시간이 지나면 통증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커진다.
마치 자동차 바퀴 정렬이 틀어진 상태에서 장거리 운전을 계속하는 것과 같다. 달릴수록 한쪽 타이어만 빨리 닳듯이 사람의 몸도 균형이 무너지면 특정 관절이 먼저 손상될 수 있다는 것이다.
"걷기는 분명 좋은 운동입니다. 하지만 몸의 균형이 무너진 상태에서 같은 동작을 반복하면 잘못된 움직임도 함께 반복됩니다. 운동량보다 먼저 확인해야 할 것은 자신의 체형과 균형입니다. 몸을 바로 세우는 것이 걸음 수를 늘리는 것보다 더 중요할 수 있습니다."
같은 길을 걸어도 몸은 다르게 반응
왜 어떤 사람은 오래 걸어도 멀쩡한데, 어떤 사람은 무릎이 아프고 허리가 뻐근할까. 정 교수는 그 차이가 체형과 보행 습관에서 나온다고 설명한다. 사람마다 발의 모양이 다르고, 골반의 기울기와 다리 길이, 체중이 실리는 위치도 다르다. 겉으로는 같은 속도로 걷는 것처럼 보여도 몸속에서는 전혀 다른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걷기 전에 자신의 몸 상태를 먼저 점검해야 한다고 말한다. 발이 안쪽으로 무너지는지, 보폭은 지나치게 좁지 않은지, 몸이 한쪽으로 기울어 걷지는 않는지를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많은 문제를 예방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사람마다 지문이 다르듯 걸음걸이도 모두 다릅니다. 남에게 좋은 걷기 방법이 나에게도 맞는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많이 걷는 것이 아니라 내 몸에 맞게 걷는 것입니다. 운동은 경쟁이 아니라 몸과의 대화입니다."
발의 아치가 무너지거나 좌우 균형 안 맞으면 그 영향이 무릎과 골반, 척추까지
집을 지을 때 기초가 흔들리면 아무리 튼튼한 기둥을 세워도 오래 버티기 어렵다. 사람의 몸에서 그 기초에 해당하는 곳이 바로 발이다. 정 교수는 발의 아치가 무너지거나 좌우 균형이 맞지 않으면 그 영향이 무릎과 골반, 척추까지 이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그는 오랫동안 발의 형태와 균형감각의 관계를 연구해 왔으며, 발이 몸 전체의 움직임에 미치는 영향을 꾸준히 분석해 왔다.
그래서 걷기를 시작하기 전에 가장 먼저 발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발은 단순히 땅을 딛는 기관이 아니라 몸 전체를 지탱하는 기초이기 때문이다.
"건물을 지을 때 기초공사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듯 사람의 몸도 마찬가지입니다. 발이 안정돼야 무릎이 편하고, 골반이 편해야 척추도 부담이 줄어듭니다. 발은 가장 아래에 있지만 몸 전체를 떠받치는 출발점입니다.“
운동도 '맞춤처방' 시대 걷기의 출발점은 '얼마나'가 아니라 '어떻게'
정 교수는 이제 운동도 개인별 맞춤 시대라고 말한다. 예전에는 "많이 걸으세요"라는 처방이 통했다면 이제는 "어떻게 걸을 것인가"가 더 중요해졌다. 같은 운동이라도 나이와 체형, 근력, 균형감각에 따라 방법이 달라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첨단 장비를 이용해 체형과 균형을 측정한 뒤 그 결과에 맞춰 운동을 처방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설명했다. 운동은 많이 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몸을 더 건강하게 만드는 과정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운동은 몸을 살리기 위해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방법이 잘못되면 오히려 몸을 해칠 수도 있습니다. 좋은 운동도 내 몸에 맞아야 좋은 운동이 됩니다. 그래서 운동에도 정확한 진단과 처방이 필요합니다."
첨단장비로 체형과 균형 측정 뒤 그 결과에 맞춰 운동 처방해야 하는 이유
걷기는 여전히 가장 좋은 운동 가운데 하나다. 다만 건강을 좌우하는 것은 걸음 수보다 걸음의 질이다. 몸의 균형을 잃은 채 만 보를 걷는 것보다, 바른 자세와 안정된 보행으로 오천 보를 걷는 것이 더 건강할 수도 있다.
정훈교 교수는 걷기를 숫자의 경쟁으로 만들지 말라고 조언한다. 만 보를 채우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몸이 편안하게 움직이는 걸음을 회복하는 것이 진짜 목표라는 것이다.
"걷기는 사람에게 가장 자연스러운 운동입니다. 그러나 자연스럽게 걷기 위해서는 먼저 몸의 균형을 회복해야 합니다. 좋은 걸음은 많이 걸어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바르게 걸어서 만들어집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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