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환석 화백의 만인보(萬人譜)...50년간 만난 사람들, 10m 화폭에 다 호출

10m 화폭에 담은 50년의 인연…‘기억 속의 얼굴들’스쳐 간 사람도, 함께 웃고 울었던 사람도 한자리에1956년 어린 시절부터 언론·만화계 인연까지 ‘사람으로 쓴 자서전’데뷔 50주년 기념전 8월 14~25일 춘천 아트프라자 갤러리

70년 인생, 만화가 50년 세월 ‘사람의 얼굴’로 기록

사람의 인생을 무엇으로 기록할 수 있을까. 날짜와 사건으로 연표를 만들 수도 있고, 사진첩을 펼쳐놓을 수도 있다. 유환석 화백은 조금 다른 방법을 택했다. 자신의 70년 인생과 만화가로 살아온 50년 세월을 ‘사람의 얼굴’로 기록했다.

유 화백의 데뷔 50주년 기념전에서 눈길을 끄는 작품 가운데 하나가 길이 10m에 이르는 대작 <기억 속의 얼굴들>이다. 한눈에 담기도 어려운 긴 화면을 따라가다 보면 어린 시절 가족과 친구부터 학교와 직장, 언론계와 만화계, 문화예술계에서 만난 사람들까지 수많은 얼굴이 꼬리를 물고 등장한다. 유 화백이 살아오면서 만나고 인연을 맺었던 사람들 가운데 일부를 골라 특징적인 표정과 몸짓을 간결한 선으로 잡아냈다.

그래서 이 작품에는 ‘유환석 화백의 만인보(萬人譜)’라는 이름이 잘 어울린다. 한 사람의 초상화가 아니라 한 사람의 인생을 거쳐 간 사람들의 초상, 다시 말해 ‘사람으로 그린 자서전’이기 때문이다. 일부는 주인공처럼 크게 등장하고 일부는 화면 한쪽에서 조그맣게 웃고 있지만, 유 화백의 기억 속에서는 저마다 한 시절을 함께 건너온 사람들이다.

‘사람으로 그린 자서전’ 화제

기억의 두루마리를 펼쳐놓은 듯

작품은 거대한 기억의 두루마리를 펼쳐놓은 듯하다. 1950~60년대 어린 시절에서 출발해 학창시절과 청년기를 지나 언론사와 만화가로 활동했던 시간으로 이어지고, 마침내 2026년에 닿는다. 연도와 사건, 건물과 장소, 말풍선과 인물들이 촘촘하게 얽힌다. 한 사람의 생애가 한 줄기 강이라면, 작품 속 수많은 얼굴은 그 강으로 흘러든 크고 작은 지류와 같다.

특히 흥미로운 것은 사람을 기억하는 방식이다. 정교한 초상화처럼 얼굴을 그대로 복제하지 않는다. 몇 개의 선으로 머리 모양을 그리고 눈과 입을 찍고, 그 사람을 떠올리게 하는 몸짓이나 말 한마디를 보탠다. 신문 시사만화가가 반세기 동안 갈고닦은 ‘압축의 힘’이다. 긴 설명 대신 표정 하나, 자세 하나, 말풍선 하나가 사람의 성격과 당시의 상황을 불러낸다.

곳곳에 담긴 유머도 작품을 무겁지 않게 한다. 심각했던 사건도 세월이라는 체에 한 번 거르고 나면 웃음 섞인 추억이 되고, 당시에는 대수롭지 않았던 한마디가 수십 년 뒤에는 선명한 기억으로 되살아난다. 마치 오래된 서랍을 하나씩 열어보듯 화면을 따라가다 보면 “내 인생에도 저런 사람이 있었지” 하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겹쳐진다.

“내 인생에도 저런 사람이 있었지”

가족, 친구, 스승, 동료, 선후배...우연히 만난 사람도

<기억 속의 얼굴들>은 결국 유환석 한 사람만의 이야기에 머물지 않는다. 가족, 친구, 스승, 동료, 선후배와 우연히 길에서 만난 사람까지, 한 인간의 삶이 얼마나 많은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만들어지는지를 보여준다. 인생이라는 무대에는 혼자 찍는 독사진보다 함께 찍은 단체사진이 훨씬 많다는 사실을 10m의 긴 화폭이 말해주는 셈이다.

무엇보다 이 작품은 유 화백의 50년 작업세계를 상징한다. 세상의 권력과 사건을 풍자해온 시사만화가의 펜이 이번에는 자신의 기억을 향했다. 신문 지면에서 시대를 기록하던 펜이 사람을 기록하는 펜으로 돌아온 것이다. 50년 동안 세상을 그려온 화백이 결국 도착한 곳은 ‘사람’이었다.

유환석 화백의 데뷔 50주년 기념전은 8월 14일부터 25일까지 춘천 아트프라자 갤러리에서 열린다. 수많은 작품 사이에서도 10m짜리 <기억 속의 얼굴들> 앞에서는 조금 천천히 걸어볼 만하다. 한 사람의 50년 예술인생을 보는 동시에, 우리 역시 누군가의 기억 속 한 칸에 얼굴 하나를 남기며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50년 세상 그려온 뒤 도착한 곳은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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