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전에서 만나는 불교 경전의 지혜'월인천강'부터 '법성게'·'금강경'·'부모은중경'까지내달 서울 인사동과 청주 예술의전당서 전시회

붓과 먹으로 옮긴 부처님 가르침
가을이 깊어가는 11월, 서울 인사동에서 붓과 먹으로 옮긴 부처님의 가르침을 만날 수 있다. 연정(蓮汀) 정용남 서예가가 내달 12일부터 18일까지 종로구 인사동 백악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연다. 한글과 한문 서예, 불교 경전을 정성스럽게 옮겨 쓴 사경(寫經) 등 40점을 선보이는 전시다. 아름다운 글씨를 감상하는 즐거움과 함께 그 안에 담긴 삶의 지혜를 되새길 수 있는 자리다.
사경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기록한 책인 불경을 손으로 베껴 쓰는 작업이다. 단순히 글씨를 옮겨 적는 것이 아니라 한 글자 한 글자에 마음을 집중하면서 가르침을 되새기는 수행의 의미도 지닌다. 불교에서는 이러한 작업 자체를 마음을 닦는 과정으로 여긴다. 서예 작품으로서는 글씨의 아름다움과 정교한 구성을 감상할 수 있다.
이번 전시에서 눈여겨볼 문구는 '월인천강', '보현행원품게송', '부모은중경', '법성게', '금강경', '반야심경' 등이다. 이름은 어렵지만 그 속에 담긴 뜻은 의외로 우리 삶과 가깝다. 모든 사람을 차별 없이 대하는 마음, 부모에 대한 감사, 욕심과 집착을 내려놓는 지혜, 좋은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는 실천 등이다. 작품에 담긴 문구의 뜻을 하나씩 살펴본다.
월인천강(月印千江), 달 하나가 천 개의 강에 비친다
월인천강은 하늘에 떠 있는 하나의 달이 천 개의 강물에 비친다는 뜻이다. 달은 하나이지만 강과 호수, 작은 연못에도 달빛이 비친다. 이를 부처님의 공덕과 자비가 모든 사람과 생명에게 두루 미치는 모습에 비유한 표현이다.
여기서 '공덕'은 선한 마음과 행동으로 쌓은 좋은 결과를, '자비'는 다른 존재의 아픔을 헤아리고 그 고통을 덜어 주려는 마음을 뜻한다. '중생'은 사람을 비롯해 살아 있는 존재들을 가리키는 불교 용어다.
달빛이 부자와 가난한 사람을 가리지 않고 비추듯, 부처님의 가르침도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는 의미다. 정용남 서예가의 '월인천강'은 넓은 흰 여백에 힘찬 붓글씨를 배치한 작품으로, 글씨의 움직임과 비어 있는 공간이 조화를 이룬다.

보현행원품게송(普賢行願品偈頌),
좋은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라는 가르침
정식 명칭은 '대방광불화엄경입부사의해탈경계보현행원품게송(大方廣佛華嚴經入不思議解脫境界普賢行願品偈頌)'이다. 일반적으로 '보현행원품게송'이라고 부른다. 이 경전은 불교의 대표적인 가르침을 모은 『화엄경』의 한 부분이다. 화엄경은 세상의 모든 존재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연결돼 있다는 세계관을 담고 있다.
이야기에는 깨달음을 얻기 위해 여러 스승을 찾아다니는 선재동자가 등장한다. 선재동자는 진리를 배우려는 젊은 구도자를, '선지식'은 삶의 바른길을 일깨워 주는 훌륭한 스승을 뜻한다. 선재동자가 53명의 스승을 찾아가 배움을 얻는 여정의 마지막에 보현보살의 가르침이 등장한다.
보현보살은 좋은 마음을 실제 행동으로 실천하는 일을 강조하는 불교의 상징적 존재다. '행원'은 반드시 실천하겠다고 세우는 다짐이며, '게송'은 가르침을 기억하기 쉽도록 시처럼 간결하게 표현한 글이다. 보현보살의 열 가지 다짐에는 다른 사람을 존중하고, 선한 일을 칭찬하며,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고, 남의 기쁨을 함께 기뻐하는 일 등이 포함된다. 한마디로 좋은 사람이 되겠다고 생각하는 데 그치지 말고 행동으로 보여주라는 가르침이다.
정용남 서예가의 작품은 정교한 불교 그림과 빼곡하게 이어지는 경전 글씨가 어우러져 장엄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작품을 감상하며 자신이 일상에서 실천할 수 있는 작은 선행을 떠올려 보는 것도 좋다.

부모은중경(父母恩重經),
부모가 베푼 열 가지 은혜를 기억하라
'불설대보부모은중경(佛說大報父母恩重經)'은 부모가 자녀에게 베푼 크고 깊은 은혜를 설명하고 그 은혜에 보답할 것을 가르치는 불교 경전이다. 경전은 부모의 사랑과 희생을 열 가지 은혜로 나누어 설명한다. 어머니가 아이를 뱃속에 품고 보호하는 수고, 출산의 고통, 자녀를 먹이고 기르는 정성, 자녀가 아플 때 대신 아파하고 싶어 하는 마음 등이 그 내용이다.
자녀가 성장해 먼 곳으로 떠나도 부모는 걱정을 거두지 못한다. 자신은 불편하더라도 자녀가 편안하기를 바라는 마음도 부모의 은혜로 설명한다. 여기서 '보은(報恩)'은 받은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하는 마음을 행동으로 나타내는 것을 뜻한다. 부모의 은혜를 아는 데 그치지 않고 실제로 공경하고 돌보라는 가르침이다.
정용남 서예가의 '부모은중경'은 경전의 글씨와 여러 장면을 묘사한 그림이 어우러진 작품이다. 부모의 사랑을 이야기로 풀어낸 경전의 내용을 알고 감상하면 작품에 담긴 메시지가 더욱 가깝게 다가온다.

법성게(法性偈), 세상에 홀로 존재하는 것은 없다
법성게는 신라의 의상대사가 지은 『화엄일승법계도(華嚴一乘法界圖)』에 담긴 210자의 짧은 불교 시다. 이름부터 어렵지만 핵심은 비교적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법계'는 모든 존재와 현상을 아우르는 세계를, '일승'은 모든 존재가 궁극적으로 깨달음에 이를 수 있다는 하나의 큰 가르침을 뜻한다. '게'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시구로 압축한 글을 가리킨다.
법성게가 전하는 중요한 메시지는 세상 모든 존재가 서로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이다. 나무 한 그루를 생각해 보자. 나무는 혼자 자라는 것처럼 보이지만 햇빛과 물, 흙과 공기, 수많은 미생물의 도움을 받으며 살아간다. 인간도 가족과 이웃, 사회와 자연의 관계 속에서 살아간다.
불교에서는 이러한 상호 의존의 관계를 중요하게 여긴다. 내가 다른 존재와 완전히 분리돼 있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으면 다른 사람과 자연을 대하는 태도도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정용남 서예가의 '법성게'는 검푸른 바탕에 금빛 한자와 한글을 가지런히 배치했다. 밤하늘에 별을 수놓은 듯한 글씨의 배열에서 질서와 조화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금강경(金剛經), 욕심과 집착에서 벗어나는 지혜
정식 명칭은 '금강반야바라밀경(金剛般若波羅蜜經)'이다. 일반적으로 금강경이라고 부른다. 인도 출신 승려이자 번역가인 구마라집이 한문으로 옮긴 번역본이 널리 알려져 있다.
금강경은 특히 마음의 본성을 깨닫는 수행을 중시하는 선종에서 중요하게 여겨 왔다. 현재 대한불교조계종의 '소의경전'이기도 하다. 소의경전이란 한 종파가 가르침의 기본 근거로 삼는 경전을 뜻한다. 금강경의 '금강'은 매우 단단한 금강석을 가리킨다. 금강석처럼 강하고 날카로운 지혜로 잘못된 생각과 집착을 끊어 낸다는 의미다.
여기서 '집착'은 돈이나 명예, 지위, 인간관계 또는 자신의 생각에 지나치게 매달리는 마음이다. '반야'는 사물의 참모습을 꿰뚫어 보는 지혜이며, '바라밀'은 깨달음의 완성에 이르는 수행을 뜻한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높은 지위를 얻었다고 평생 그 자리를 지킬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재물도 인간관계도 세월에 따라 변한다. 그런데도 변하지 않을 것처럼 붙잡으려 하면 괴로움이 생기기 쉽다.
금강경은 모든 것이 변하고 서로 의존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이해하고, 고정된 생각과 집착에서 벗어나는 지혜를 강조한다.
정용남 서예가의 '금강반야바라밀경'은 경전의 글씨와 변상도를 정교하게 구성한 작품이다. 글자의 뜻을 모두 읽지 못하더라도 촘촘한 필치와 화면의 균형을 통해 사경 예술의 아름다움을 감상할 수 있다.

반야심경(般若心經), 세상 모든 것은 변하고 서로 연결돼 있다
정식 명칭은 '반야바라밀다심경(般若波羅蜜多心經)'이다. 일반적으로 반야심경이라고 부른다. 비교적 짧은 글에 대승불교의 중요한 가르침을 압축한 경전이다. '대승불교'는 자기 자신의 깨달음뿐 아니라 다른 존재의 고통을 덜고 함께 깨달음에 이르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는 불교의 큰 흐름이다.
반야심경의 핵심은 '반야'와 '공(空)'이다. 반야는 사물의 참모습을 바르게 이해하는 지혜를 뜻한다. 공은 모든 것이 텅 비어 아무것도 없다는 뜻이 아니다. 어떤 존재도 다른 것들과 관계없이 영원히 변하지 않는 독립적인 실체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대표적인 구절이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 空卽是色)'이다. '색'은 눈에 보이는 물질을 비롯한 여러 현상을 뜻한다. 이 구절은 눈앞의 현상과 공의 이치가 서로 분리돼 있지 않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꽃 한 송이를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꽃은 씨앗과 흙, 햇빛과 물이 있어야 피어난다. 시간이 지나면 시들고 다른 모습으로 변한다. 꽃은 분명 존재하지만 영원히 변하지 않는 고정된 모습으로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사람의 기쁨과 슬픔, 성공과 실패도 마찬가지다. 지금의 어려움이 영원히 계속되는 것은 아니며, 좋은 순간도 변할 수 있다. 이러한 변화의 이치를 이해하면 눈앞의 상황에 지나치게 매달리지 않고 삶을 조금 더 넓게 바라볼 수 있다. 반야심경을 옮겨 쓴 서예 작품에서는 짧은 경전 속에 담긴 깊은 가르침과 문자 예술의 아름다움을 함께 감상할 수 있다.

붓글씨 읽고, 그 속에 담긴 삶의 지혜를 만나다
이번 전시는 서예를 잘 모르는 관람객도 어렵지 않게 즐길 수 있다. 글자의 뜻을 모두 읽으려고 애쓰기보다 먼저 작품 전체를 바라보면 된다. 글씨가 어떻게 배열돼 있는지, 굵은 획과 가는 획이 어떤 조화를 이루는지, 비어 있는 공간이 어떤 느낌을 주는지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감상의 즐거움이 생긴다.
불교 경전의 의미를 알고 나면 작품은 또 다른 모습으로 다가온다. '월인천강'에서는 차별 없는 자비를, '부모은중경'에서는 부모에 대한 감사를, '금강경'에서는 집착을 내려놓는 지혜를 생각해 볼 수 있다. '보현행원품게송'은 좋은 마음을 행동으로 옮기는 실천을, '법성게'와 '반야심경'은 서로 연결돼 있고 끊임없이 변화하는 세상의 이치를 일깨운다.
정용남 서예가는 이번 전시에서 한글의 판본체·궁체·민체와 한문의 전서·예서·해서·행서·초서 등 다양한 서체로 완성한 작품 40점을 선보인다. 전통적인 사경뿐 아니라 현대적 감각으로 한글의 조형미를 표현한 작품들도 함께 만날 수 있다.
전시는 내달 12일부터 18일까지 서울 종로구 인사동9길 16 백악미술관 1·2층에서 열리며, 개막식은 12일 오후 4시에 진행된다. 이어 내달 20일부터 24일까지 충북 청주시 서원구 흥덕로 69에 있는 예술의전당에서도 전시가 열린다.
가을이 저물어 가는 인사동에서 한 폭의 서예 작품 앞에 잠시 멈춰 서 보는 것은 어떨까. 아름다운 글씨를 바라보다가 그 안에 담긴 삶의 지혜까지 발견한다면, 전시장을 나서는 발걸음에는 묵향과 함께 오래도록 생각할 거리 하나가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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