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획에 마음을 담고, 천년의 지혜를 펼치다” 정용남 서예가 인사동 개인전

내달 12~18일 백악미술관서 작품 40점 전시다양한 서체로 전통 서예와 사경, 추상 서예 선보여

연정(蓮汀) 정용남 서예가가 자신의 서예 작품 앞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정 서예가는 내달 12일부터 18일까지 서울 인사동 백악미술관에서 한글과 한문 서예, 사경 등 다양한 작품 50점을 선보이는 개인전을 연다.
연정(蓮汀) 정용남 서예가가 자신의 서예 작품 앞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정 서예가는 내달 12일부터 18일까지 서울 인사동 백악미술관에서 한글과 한문 서예, 사경 등 다양한 작품 50점을 선보이는 개인전을 연다.

한글의 궁체·판본체·민체와 한문의 전서·예서·해서·행서·초서 등

다양한 서체로 완성

가을이 깊어가는 11월, 서울 인사동에 묵향이 번진다. 오랜 세월 붓과 먹을 벗 삼아 전통 서예의 아름다움을 탐구해 온 연정(蓮汀) 정용남 서예가가 내달 12일부터 18일까지 서울 종로구 인사동 백악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연다. 한글의 궁체·판본체·민체와 한문의 전서·예서·해서·행서·초서 등 다양한 서체로 완성한 작품 50점을 선보이는 자리다.

이번 전시는 전통 서예의 깊이와 현대적 조형미를 함께 감상할 수 있도록 마련됐다. 반듯하고 정갈한 글씨부터 자유분방한 붓놀림이 돋보이는 작품까지 서로 다른 서체의 개성과 아름다움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다. 글씨를 읽는 즐거움에 더해 글씨를 그림처럼 감상하는 색다른 경험도 기대된다.

전통 서예의 깊이와 현대적 조형미 함께

출품작은 한글과 한문 서예를 폭넓게 아우른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한글 서체 가운데 궁체는 궁중에서 발달한 단아하고 유려한 필치가 특징이다. 판본체는 옛 한글 인쇄물에서 볼 수 있는 반듯하고 균형 잡힌 형태를 보여주며, 민체는 민간에서 발전한 소박하고 자유로운 조형미를 지니고 있다.

한문 서예에서는 다섯 가지 대표적인 서체의 특징을 비교하며 감상할 수 있다. 전서는 고풍스럽고 균형 잡힌 형태가, 예서는 가로획의 변화와 독특한 필세가 돋보인다. 해서는 획과 글자 구조가 분명하고 단정하며, 행서는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붓의 흐름을 보여준다. 초서는 획을 과감하게 줄이고 연결해 빠르고 역동적인 움직임을 드러낸다.

한글과 한문 서예 폭넓게 아울러

보현행원품게송
보현행원품게송

서로 다른 서체 비교도 관전 포인트

이처럼 서로 다른 서체를 비교하는 것도 이번 전시의 관전 포인트다. 같은 붓과 먹으로 쓰더라도 서체에 따라 전혀 다른 표정과 분위기가 만들어진다. 반듯한 해서가 절도 있는 걸음걸이라면, 자유로운 초서는 바람을 타고 춤추는 무용수의 몸짓에 비유할 수 있다.

불교 경전을 정성스럽게 옮겨 쓴 사경(寫經) 작품도 관람객들이 눈여겨볼 만하다. 사경은 불경을 베껴 쓰는 작업으로, 단순한 필사를 넘어 신앙적 수행과 예술적 표현이 결합된 전통문화다. 글자 하나하나를 흐트러짐 없이 써 내려가는 데에는 오랜 집중력과 인내가 요구된다.

대표적인 작품인 '법성게(法性偈)'는 짙은 남색 바탕에 금빛 글씨를 정연하게 배치해 밤하늘에 별을 수놓은 듯한 인상을 준다. 한문 원문과 한글 풀이가 나란히 어우러진 화면은 불교 경전의 가르침을 문자와 조형의 아름다움으로 전달한다. 법성게는 신라 의상대사가 화엄사상의 핵심을 210자로 압축한 게송으로, 모든 존재가 서로 관계를 맺고 있다는 불교적 세계관을 담고 있다.

'금강반야바라밀경(金剛般若波羅蜜經)'은 불교의 대표적인 경전인 금강경을 소재로 한 작품이다. 경전의 글귀를 촘촘하게 배열한 화면과 변상도가 어우러져 고전 경전 특유의 장엄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집착을 내려놓고 지혜를 깨닫는다는 금강경의 가르침을 떠올리며 감상하면 작품의 의미가 한층 깊어진다.

불교 경전 정성스레 옮겨 쓴 사경(寫經) 작품

법성게
법성게

짙은 남색 바탕에 금빛 글씨 정연하게 배치

'부모은중경(父母恩重經)'은 부모의 깊은 은혜와 효의 의미를 되새기게 하는 작품이다. 경전의 내용을 빼곡하게 담은 글씨와 함께 여러 장면을 묘사한 변상도가 배치돼 있어 문자와 그림을 함께 감상하는 재미가 있다. 부모의 사랑과 자식의 도리를 다룬 경전의 내용을 알고 보면 작품에 담긴 정성과 메시지가 더욱 가깝게 다가온다.

전통적인 사경과 대비되는 현대적 한글 조형 작품들도 주목할 만하다. '소리의 흔적'은 검은 화면 사이로 초록색과 파란색, 분홍색 계열의 한글이 드러나는 작품이다. 색색의 글자들이 굽이치는 물결이나 바람의 흐름처럼 이어지면서 소리가 지나간 자취를 눈으로 보는 듯한 인상을 준다. 문자가 의미를 전달하는 수단을 넘어 색채와 형태를 이루는 조형 요소로 확장된 모습이다.

전통적 사경과 대비되는 한글 조형 작품들 주목

'한글의 결 1'과 '한글의 결 2'는 수많은 작은 한글과 커다란 붓글씨를 한 화면에 결합한 작품이다. 깨알 같은 글자들이 촘촘하게 쌓여 바탕을 이루고, 그 위로 굵고 힘찬 획들이 자유롭게 펼쳐진다. 작은 글씨들이 합창단이라면 커다란 붓글씨는 무대 위 독창자처럼 느껴진다. 가까이에서는 개별 글자의 움직임을, 멀리에서는 글자들이 만들어 낸 전체적인 형상을 감상할 수 있다.

'월인천강(月印千江)'은 넓은 흰 여백에 굵고 힘찬 붓글씨를 배치한 작품이다. '하나의 달이 천 개의 강물에 비친다'는 뜻의 월인천강은 부처님의 가르침과 자비가 모든 중생에게 두루 미친다는 불교적 의미를 담고 있다. 간결하면서도 역동적인 붓놀림과 넓은 여백이 어우러져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앞선 작품들이 수많은 글자로 화면을 채웠다면, 이 작품은 절제된 획과 비움의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간결하면서도 역동적인 붓놀림

월인천강
월인천강

시련 속 희망 잃지 않는 삶의 메시지 전해

정호승 시인의 시 '산산조각'을 붓글씨로 옮긴 작품은 시련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삶의 메시지를 민체의 소박한 필치로 전하며, 문학과 서예가 어우러지는 감동을 선사한다. 불교 경전의 가르침을 담은 '보현행원품게송'은 정교한 변상도와 촘촘하게 이어지는 사경이 조화를 이뤄, 부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려는 서원의 의미와 전통 사경 예술의 장엄한 아름다움을 함께 보여준다.

서예에 익숙하지 않은 관람객이라도 글자의 뜻을 모두 알아야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획의 굵기와 방향, 먹의 농담, 글자 사이의 여백을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작품의 매력을 발견할 수 있다. 멀리서 전체 구도를 바라본 뒤 가까이 다가가 세밀한 붓의 흔적을 살펴보는 것도 좋은 감상 방법이다.

글씨 쓰지 않은 공간도 중요한 표현요소

특히 서예에서는 글씨를 쓰지 않은 공간도 중요한 표현 요소다. 음악에서 쉼표가 선율의 흐름을 살리듯, 서예의 여백은 글씨의 움직임과 호흡을 더욱 선명하게 드러낸다. 관람객이 작품 앞에서 잠시 걸음을 멈추고 붓끝의 흐름을 따라가 보는 것만으로도 서예 특유의 정취를 느낄 수 있다.

정용남 서예가는 용헌 이윤용 선생에게 서예를 사사했으며, 원광대학교 동양학대학원 서예문화학과를 졸업했다. 대한민국미술대전 서예부문과 충청북도서예대전, 단재서예대전 초대작가로 활동하며 작품 활동을 이어왔다.

용헌 이윤용 선생에게 서예 사사

정호승 선생 시 '산산조각'
정호승 선생 시 '산산조각'

"만추의 정취가 깊어지는 가을에…"

대한민국미술대전 서예부문 심사위원을 비롯해 충청북도학생서예대전 운영·심사위원, 단재서예대전 운영위원, 대한민국여성미술대전 심사위원, 정수서예대전 운영위원 등을 역임했다. 대전대학교 서예학과 강사로도 활동하며 후학 양성에 힘썼다.

현재 한국미술협회 충북지회 서예분과위원장을 맡고 있으며, 세종한글큰뜻모임 이사와 선광사경연구회 회원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한국미술협회와 예문회, 청주서예가총연합회, 한국서예단체총연합회에도 참여하고 있다.

정용남 서예가는 전시 초대의 글에서 "만추의 정취가 깊어지는 이즈음, 필묵과 함께해 온 시간의 결실을 모아 개인전을 열게 되었다"며 "작품을 살펴 주시고 귀한 가르침을 더해 주신다면 더없는 영광으로 간직하겠다"고 밝혔다.

개막식은 내달 12일 오후 4시에 인사동서

서울 전시는 인사동9길 16에 있는 백악미술관 1·2층에서 열리며, 개막식은 내달 12일 오후 4시에 진행된다. 이어 내달 20일부터 24일까지 충북 청주시 서원구 흥덕로 69에 있는 예술의전당에서 전시가 이어진다.

전통문화와 현대예술이 공존하는 인사동에서 시작해 작가의 활동 기반인 청주로 이어지는 이번 전시는 한글과 한문 서예의 다양한 아름다움은 물론, 사경에 담긴 정성과 정신세계까지 폭넓게 살펴볼 수 있는 기회다. 늦가을의 정취 속에서 글씨에 담긴 세월의 깊이와 붓끝에서 피어나는 예술적 감흥을 만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내달 20~24일, 청주 예술의전당서도 전시회

정용남 서예가
정용남 서예가
정용남 서예가
정용남 서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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