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도 없었다…고속버스가 만평원고 싣고 서울로 달렸다

낮 11시면 가판 마감, 휴가지서 사건 터지면 다시 펜 들어이메일도 휴대전화 전송도 없던 시절버스로 원고 보내면 서울서 받아 신문 제작

미리 그려놓고 휴가 떠났어도 마음 놓을 수 없어

시계가 오전 10시를 넘긴다. 휴가지의 피서객들은 바다로, 계곡으로 몸을 담그기 시작한다. 그런데 유환석 화백의 귀는 라디오 뉴스에 가 있다. 밤사이, 아니면 아침에 큰 사건이라도 터지지 않았을까. 며칠 치 만평을 미리 그려놓고 휴가를 떠났어도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세상은 시사만화가의 휴가 일정에 맞춰 움직여주지 않는다. 예상치 못한 대형 사건이 터지는 순간 미리 그려놓은 만평은 쓸모가 없어지고, 휴가지의 방은 곧바로 임시 작업실이 됐다.

당시 스포츠조선의 제작 시간을 알아야 그 긴박감을 이해할 수 있다. 이름은 조간신문이었지만 다음 날 날짜를 단 가판이 전날 낮부터 나오는 시스템이었다. 그 때문에 1차 마감은 오전 11시 무렵으로 매우 빨랐다. 아침 편집회의가 끝나면 유 화백에게 남은 시간은 길지 않았다. 그날의 정치·경제·사회·스포츠 뉴스를 훑어 소재를 고르고, 풍자의 각도를 잡은 뒤 아이디어를 한 컷에 압축해 그림까지 완성해야 했다. 오전 몇 시간은 그에게 사실상 생방송과 다름없었다.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는다고 마감시간이 기다려주는 것도 아니었다.

큰 사건 땐 휴가지서 새로 그려 고속버스로...

평소에도 피 말리는 마감이었으니 휴가 때는 더 난감했다. 큰 사건이 터지면 “휴가 중입니다”라는 말이 통할 리 없었다. 시사만평은 그날의 세상을 그리는 장르다. 세상이 뒤집혔는데 며칠 전에 미리 그려둔 그림을 내보낼 수는 없었다. 결국 다시 펜을 들어야 했다. 가족들이 휴가를 즐기는 동안 한쪽에서는 종이를 펼쳐놓고 라디오와 뉴스를 확인하며 그림을 그렸다. 유 화백에게 휴가는 일을 멈추는 시간이 아니라 작업실의 주소가 잠시 바뀌는 것에 가까웠다.

그림을 완성한다고 일이 끝나는 것도 아니었다. 지금이라면 휴대전화로 찍어 보내거나 컴퓨터에서 파일 하나를 전송하면 몇 초면 끝날 일이다. 그러나 이메일도, 클라우드도 없던 시절이었다. 종이에 그린 원화가 서울까지 가려면 결국 사람과 교통수단의 힘을 빌려야 했다. 휴가지에서 급히 완성한 만평을 봉투에 넣어 춘천버스터미널로 달려갔다. 서울행 버스 기사에게 원고를 맡기면, 몇 시간 뒤 신문사 아르바이트 학생이 상봉터미널로 나가 봉투를 받아 편집국으로 가져왔다. 유 화백은 휴가지에 남아 있었지만 그의 만평은 먼저 고속버스를 타고 서울로 출근한 셈이다.

이메일도, 스마트폰도, 클라우드도 없던 시절

고속버스가 춘천을 떠나 서울을 향해 달린다. 차창 밖 풍경은 빠르게 뒤로 밀려나고 승객들의 짐 사이에는 얇은 원고 봉투 하나가 실려 있다. 그 안에는 다음 날 날짜를 달고 독자를 만날 만평이 들어 있다. 버스가 늦으면 원고도 늦는다. 상봉터미널에서는 아르바이트 학생이 도착 시간을 확인하며 기다리고, 편집국에서는 마감 시계가 돌아간다. 그 시절에는 사람만 버스를 탄 것이 아니다. 만평도 버스를 타고 마감시간을 향해 달렸다.

“매일매일 하는 게 힘들었지요. 휴가라고 누가 대신 그려줄 사람도 없잖아요.”

그렇게까지 해야 했던 이유는 ‘매일’이라는 시사만화의 숙명 때문이었다. 유 화백은 50년 시사만화가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일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거창한 사건을 꺼내지 않았다. 논설위원들은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분야를 나눠 맡거나 돌아가며 글을 쓸 수 있었지만, 시사만화가는 혼자 세상을 훑고 그날의 한 컷을 찾아내야 했다. 정치도 알아야 하고 경제도 읽어야 했다. 사회적 사건과 스포츠계의 흐름도 놓칠 수 없었다.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는 날이라고 만평 자리를 하얗게 비워둘 수도 없었다. 그래서 그는 시사만화를 “고독한 작업”이라고 기억한다.

'매일’이라는 시사만화의 숙명 힘겨웠다

그 고독은 퇴근한다고 끝나는 것도 아니었다. 동료들과 저녁을 먹고 술잔을 기울이면서도 머릿속 한편에서는 늘 같은 걱정이 맴돌았다. “내일은 또 뭘 그리지?” 유 화백은 그 심정을 가족의 끼니를 걱정하는 어머니의 마음에 빗댔다. 오늘 밥상을 잘 차렸다고 내일 밥상이 저절로 차려지는 것은 아니다. 오늘 기막힌 만평을 그렸다고 내일의 아이디어가 따라 나오는 것도 아니었다. 하루치 숙제를 끝내고 나면 다음 날 아침 또다시 빈 종이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 생활을 수십 년 이어갈 수 있었던 힘은 결국 직업에 대한 책임감이었다. 독자는 신문을 펼쳐 만평 한 컷을 몇 초 동안 보고 다음 면으로 넘겼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 몇 초짜리 그림 뒤에는 아침부터 시계와 싸운 시간이 있었고, 휴가지에서도 뉴스를 놓지 못했던 긴장이 있었다.

지금은 파일 하나가 눈 깜짝할 사이 서울을 넘어 지구 반대편까지 간다. 그러나 그때는 달랐다. 인터넷 대신 사람이 뛰었고, 와이파이 대신 고속버스 엔진이 원고를 날랐다. 그렇게 하루하루 달려 도착한 만평들이 모여 유환석 화백의 50년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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