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평 '헹가래의 월드컵 엿보기'어떻게 탄생했나

"대~한민국!" 함성, 빌딩 숲 흔들어
2002년 6월, 광화문은 더 이상 서울의 한복판이 아니었다. 도심은 거대한 축구장이 됐고, 수십만 명의 시민은 모두 국가대표 응원단이 됐다. 붉은 티셔츠를 입은 사람들은 서로 이름도 모른 채 어깨를 걸었고, "대~한민국!"이라는 함성은 빌딩 숲을 흔들었다. 승리의 순간이면 낯선 사람끼리도 얼싸안고 울고 웃었다.
그 뜨거운 현장 속에 유환석 화백도 있었다. 하지만 그의 손에는 막대풍선 대신 스케치북이 있었다. 조선미디어그룹 스포츠조선 시사만화가였던 그는 응원을 하면서도 사람들의 표정과 몸짓을 놓치지 않았다. 어떤 아이디어가 독자의 마음을 움직일지를 끊임없이 관찰했다. 만평은 책상에서 짜내는 것이 아니라 현장에서 건져 올리는 것이라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거리응원 현장에서 만평 소재 건져 올려
한국이 승리한 날이면 광화문은 거대한 축제가 됐다. 온몸을 태극기로 감싼 청년이 거리 한복판을 뛰어다녔고, 얼굴에 태극기를 그린 아이들은 부모의 목말 위에서 손을 흔들었다. 붉은악마 응원단은 북을 치고 깃발을 흔들며 분위기를 이끌었고, 외국인 관광객들도 어느새 "대한민국"을 함께 외쳤다.
유 화백은 그 풍경을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거리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응원 복장과 익살스러운 표정, 환호하는 군중의 움직임을 머릿속에 차곡차곡 담아 두었다. 훗날 월드컵 연재에서 세계 각국 응원단의 독특한 분장과 개성을 유쾌하게 표현한 캐리커처도 그렇게 탄생했다. 경기장을 뛰는 선수들만큼이나 거리에서 뛰는 응원단 역시 또 하나의 주인공이었다.
응원 하면서도 사람들 표정과 몸짓 놓치지 않아

현장의 기억 식기 전에 펜 들어
경기가 끝나면 대부분의 시민은 집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유 화백의 하루는 그때부터 다시 시작됐다. 신문사로 돌아온 그는 현장에서 가져온 기억이 식기 전에 곧바로 펜을 들었다. 머릿속에는 광화문의 붉은 물결과 함성, 거리에서 만난 시민들의 표정이 영화 필름처럼 지나갔다. 그 장면들은 종이 위에서 새로운 이야기로 다시 태어났다.
그래서 그의 월드컵 만평은 단순한 경기 결과를 그리지 않았다. 한국의 4강 신화를 거대한 축구공 하나로 상징하기도 했고, FIFA 월드컵 트로피와 세계 각국의 국기를 한 화면에 담아 전 세계가 하나 된 축제를 표현했다. 부산 거리응원의 열기와 광화문의 붉은 함성은 도시의 상징물과 함께 살아 움직였고, "Reds!" 티셔츠를 입은 시민들과 태극기를 몸에 두른 응원단은 대한민국 응원 문화를 대표하는 아이콘이 됐다.
히딩크 감독의 익살스러운 캐리커처는 국민들의 통쾌한 마음을 대신했고, 얼굴마다 개성 넘치는 페이스페인팅을 한 응원단은 "응원하는 모습도 월드컵의 또 다른 볼거리"라는 메시지를 전했다. 한국의 4강 진출을 축구공 속 숫자 '4' 하나로 압축한 그림은 당시 국민 모두의 꿈과 자부심을 상징했다.
그는 경기장을 그린 것이 아니라 시대를 그렸다. 사진기자는 결정적인 한순간을 기록했지만, 시사만화가는 그 순간에 담긴 감정과 분위기를 한 컷에 응축했다. 그래서 그의 그림 속에는 골 장면보다 시민들의 환호가 많았고, 선수보다 응원하는 국민이 더 크게 자리했다.
응원 열기, 종이 위에서 새로운 이야기로 다시 태어나

약 3주 동안 매일 새로운 월드컵 만평 그려
그는 약 3주 동안 매일 새로운 월드컵 만평을 신문에 실었다. 매일 현장으로 나가고, 매일 새로운 시선을 찾고, 매일 다른 이야기로 독자를 만나야 했다. 같은 경기를 모두가 봤기에 더욱 새로운 발상과 상징이 필요했다. 그 치열한 고민 끝에 탄생한 연재가 바로 '행가래의 월드컵 엿보기'였다.
20여 년이 흐른 지금도 사람들은 2002년 월드컵을 떠올리면 광화문의 붉은 함성과 "대~한민국!"을 먼저 기억한다. 유환석 화백 역시 그 기억을 잊지 않았다. 그는 거리응원 현장에서 만평의 소재를 찾았고, 현장에서 만난 국민들의 웃음과 눈물, 희망과 열정을 한 장 한 장의 그림 속에 담아냈다.
그래서 그의 월드컵 만평은 스포츠 삽화가 아니다. 대한민국이 하나였던 그 여름을 가장 생생하게 기록한 또 하나의 역사다.
대한민국이 하나였던 그 여름을 가장 생생하게 기록한 또 하나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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