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가 사람으로 걸어 나왔다…소년 유환석의 첫 신문 만화

강원중 3학년 때 숫자로 사람 그린 만평강원일보 독자만평에 실려 첫 신문 데뷔숫자 1부터 9까지, 사람 형상으로 묘사머리·안경·코·팔·다리 곳곳에 숫자의 비밀얼굴과 몸 이루는 숫자들이 생명력 얻고 움직여

1974년에 강원일보 독자만평에 실린 유환석 화백 작품.
1974년에 강원일보 독자만평에 실린 유환석 화백 작품.

예술과 상상력이 만난 독창적인 '숫자 인체'

"창의성은 특별한 재능보다 사물을 다르게 보는 눈에서 시작됩니다."

한 장의 그림이 있다. 언뜻 보면 안경을 쓰고 양복을 입은 선생님이 걸어가는 모습이다.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평범한 그림이 아니다. 머리는 숫자 3, 안경은 6, 코는 2, 팔은 7, 몸통에는 1, 다리와 발에도 숫자가 숨어 있다. 숫자 하나하나가 사람의 얼굴과 몸이 되어 살아 움직인다.

이 그림을 그린 사람은 1971년 당시 강원도 춘천시 강원중학교 3학년 유환석 군이었다. 그는 숫자를 단순한 기호로 보지 않았다. 숫자 속에서 사람의 얼굴을 발견했고, 선을 조금 더하고 방향을 바꾸자 하나의 캐릭터가 탄생했다. 작은 발상의 전환이 그림이 되었고, 그 작품은 강원일보 독자만평에 채택됐다. 그의 이름이 신문에 처음 실린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안경은 6, 코는 2, 팔은 7, 몸통은 1을 응용

훗날 17년 동안 스포츠조선에서 시사만화 《헹가래》 5,000여 회를 연재하고, 강원일보 《공수래》 2,000여 회를 그리며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시사만화가가 된 유환석 화백의 출발점은 바로 이 한 장의 그림이었다. 그는 데뷔 50주년 특별전(8월 14일~25일)을 춘천시 춘천예술마당에서 연다.

1971년 당시 '선생님'이란 제목의 이 작품은 단순한 낙서가 아니었다. 익숙한 숫자를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본 중학생의 창의력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남들이 숫자로만 보는 것을 그는 사람으로 읽어냈고, 상상력을 더해 이야기가 있는 그림으로 완성했다. 훗날 사회의 사건과 뉴스를 한 컷에 압축해 표현하는 시사만화가의 감각도 이미 이때 싹트고 있었던 셈이다.

다리와 발에도 숫자가 숨어 있어

그 배경에는 어머니의 남다른 교육철학도 있었다. 유 화백의 어머니는 공부만 강조하지 않았다. 음악부와 밴드부, 웅변부, 미술부, 연극부, 야구부, 서예부 등 다양한 예체능 활동을 적극 권했다. 하나만 잘하기보다 여러 분야를 경험하며 감성과 표현력을 키우도록 이끌었다.

음악은 리듬과 감성을, 웅변은 표현력과 자신감을, 연극은 관찰력과 이야기 구성을, 미술은 창의력을, 야구는 협동심을, 서예는 집중력과 인내심을 길러주었다. 서로 다른 경험들은 따로 흩어지지 않았다. 시간이 흐르면서 하나로 연결됐고, 결국 사회를 읽고 사람을 그리는 시사만화가라는 직업으로 꽃을 피웠다.

익숙한 숫자를 새로운 시각으로 구성

소년의 손끝에서 시작된 한 컷의 상상력은 세월을 건너 시대를 읽는 시사만화가의 통찰로 완성됐다. 왼쪽의 꿈꾸는 청년, 가운데 치열한 창작의 시간, 그리고 오른쪽 삶과 작품이 함께 무르익은 오늘의 유환석 화백.
소년의 손끝에서 시작된 한 컷의 상상력은 세월을 건너 시대를 읽는 시사만화가의 통찰로 완성됐다. 왼쪽의 꿈꾸는 청년, 가운데 치열한 창작의 시간, 그리고 오른쪽 삶과 작품이 함께 무르익은 오늘의 유환석 화백.

공부보다 경험 강조한 어머니의 교육철학

유환석 화백은 "창의성은 특별한 능력이 아니라 평범한 것을 다르게 바라보는 데서 시작된다"며 "어릴 때 여러 경험을 하며 상상력을 키운 시간이 지금의 작품 세계를 만드는 밑거름이 됐다"고 말한다.

오늘날 인공지능 시대는 정답을 빨리 찾는 사람보다 새로운 질문을 던지고, 서로 다른 것을 연결하는 사람을 필요로 한다. 그런 점에서 강원중학교 3학년 유환석 학생이 숫자를 사람으로 바꾸어 그려낸 이 작은 그림은 반세기가 지난 지금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예체능 활동으로 감성과 창의력 키워

어린이와 청소년들도 주변을 조금 다르게 바라보면 좋겠다. 숫자는 숫자로만, 글자는 글자로만, 나무는 나무로만 볼 필요는 없다. 평범한 일상 속에서도 새로운 이야기를 발견하는 눈, 남들이 보지 못한 연결고리를 찾아내는 상상력이 미래를 바꾼다.

신문에 처음 이름이 실린 중학생의 작은 창의력은 훗날 대한민국 현대사를 기록한 시사만화가의 출발점이 됐다. 창의성은 거창한 발명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숫자 하나를 사람으로 바라볼 수 있는 호기심과 상상력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유환석 화백의 첫 작품은 지금도 조용히 말해주고 있다.

시사 만평 '헹가래' 주인공.
시사 만평 '헹가래' 주인공.

기사 댓글 0

0 / 400

욕설, 타인 비방, 광고 등의 댓글은 예고 없이 삭제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