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친 경찰의 마음을 살린 것은 ‘맨발’이었다

경기 연천경찰서 백학파출소 박경운 경감교대근무·트라우마·고립감…힘듦·어려움·억울함 해소책동료들에게 맨발걷기 보급...자살예방 강사로도 활약

경찰은 늘 누군가의 가장 힘든 순간을 가장 먼저 마주하는 사람들이다. 폭력 사건, 아동 학대, 가정 붕괴, 절망적인 극단 선택 현장까지. 사람들이 애써 외면하거나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장면의 마지막에 경찰이 서 있다. 우리 사회는 경찰을 ‘국민의 안전을 지키는 존재’라고 말하지만, 정작 그들의 마음을 지켜줄 사람은 묻힌 채 남겨져 있다.

경기 연천경찰서 백학파출소 박경운 경감(56)은 올해로 32년째 현장을 지키고 있다. 그는 동료 경찰들을 대상으로 자살 예방 교육을 진행하는 강사이기도 하다. 하지만 강의를 시작하기 훨씬 전, 그는 스스로도 한 발만 더 내디디면 벼랑 아래로 떨어질 것 같은 시기를 겪었다고 고백한다.

교대근무는 밤낮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사건 현장의 긴장감은 몸에서 천천히 빠져나갈 틈이 없었다. 사고 현장에서 맡은 냄새, 비명, 울부짖음, 바닥에 흩어진 물건 하나까지 그대로 기억에 남아 머릿속에서 되감을 때가 많았다.

“경찰은 흔들려서는 안 된다”는 사명감은, 오히려 감정을 말할 수 없게 만드는 굳은 틀로 변해 있었다. 그의 몸과 마음은 그렇게 조용히, 그러나 확실하게 무너지기 시작했다.

무너짐은 먼저 잠에서 시작됐다. 잠은 얕아졌고, 잠들어도 쉬지 못한 몸은 더 피로해졌다. 잠이 무너지자, 다음으로는 호흡이 무너졌다. 숨이 가빠지고, 이유 없는 불안이 가슴을 조여왔다.

“이제는 그만둘까.”

그는 실제로 그렇게 생각하기까지 했다고 말한다. 그 시기는 길지 않았지만, 사람이 무너지는 데는 길이가 중요하지 않다고 그는 설명한다. 무너짐은 언제나 조용하게, 그리고 빠르게 찾아오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2023년 3월. 피로를 달래기 위해 파주 운정호수공원을 천천히 걷던 중 맨발로 흙길을 걷고 있는 어르신 몇 명이 눈에 들어왔다. 잔잔한 풍경 속에서 그들의 걸음은 이상할 정도로 편안해 보였다. 그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맨발로 걸으면 좋습니까?”

어르신은 길게 설명하지 않았다.

“해보면 압니다. 잠이 옵니다.”

인공지능으로 생성한 이미지.
인공지능으로 생성한 이미지.

그는 신발을 벗었다. 그리고 그날, 야간근무 전에 깊은 잠이 찾아왔다. 20년 가까이 경험하지 못했던 한 시간의 온전한 휴식이었다. 그는 그 순간을 “내 삶이 다시 방향을 얻은 날”이라고 표현한다.

그날 이후 그는 걸었다. 비가 오면 젖은 흙 위를, 눈이 오면 차갑게 덮인 나뭇잎과 땅 위를, 바람이 부는 날에는 바람의 온도와 결을 발바닥으로 느끼며 걸었다. 그는 자연을 다시 피부로 맞는 방식으로 자신을 단단히 묶어냈다. 그리고 지금, 그는 970일 넘게 단 하루도 쉬지 않았다. 이달 말이면 1000일이 된다.

수년간 자살 예방 강의를 이어온 박 경감은 사람이 극단으로 향하게 되는 이유를 명확히 정리하고 있다.

“사람이 스스로를 포기하게 되는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힘들고, 어렵고, 그리고 억울할 때. 이 세 가지가 동시에 밀려오면 마음은 자신을 지키지 못합니다.”

그는 특히 “억울함”을 강조한다. 억울함은 설명되지 않고, 위로되지 않고, 마무리되지 않을 때 마음의 중심을 무너뜨린다. 그래서 그는 말한다.

“동료가 힘들어 보이면 그냥 지나가면 안 됩니다.”

말 한마디, 손 한번 얹는 터치, 그 작고 짧은 연결이 누군가의 삶을 붙잡는 마지막 끈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가 회복의 과정에서 깨달은 핵심은 ‘의지’가 아니라 ‘신경계’였다. 의지는 무너진 마음을 붙잡을 수 없지만, 몸이 진정되면 마음은 서서히 돌아온다.

맨발로 흙을 밟아 걸을 때, 과도하게 활성화된 교감신경이 진정되고 체내 스트레스 전하가 접지(Earthing)를 통해 자연스럽게 해소된다.

발바닥은 온몸과 연결된 말초신경들의 집합체이므로 그 자극은 전신 혈류 흐름과 자율신경 균형을 되돌리는 신호로 작용한다. 그 과정에서 수면을 조절하는 멜라토닌, 감정을 안정시키는 도파민 분비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우울감과 불면은 바로 이 지점에서 서서히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다.

지금 박 경감은 누군가의 손을 붙잡는 사람으로 남아 있다. 자살 예방 교육을 진행하는 강사로도 활약 중이다. 강의 중에도, 파출소에서도, 그는 동료 경찰들과 시민에게 조용히 권한다.

“신발을 벗고 맨발로 흙길을 걸어보십시오. 가장 먼저 돌아오는 건, 마음입니다.”

기사 댓글 0

0 / 400

욕설, 타인 비방, 광고 등의 댓글은 예고 없이 삭제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