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로콜리의 초록심장, 파킨슨 환자의 뇌와 세포를 깨우다”

설포라판, 파킨슨과 자폐는 물론 암·치매까지…세계 임상 연구서 잇단 성과

초록 채소 속에 숨겨진 '치유의 분자'가 전 세계 의학자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브로콜리, 케일, 콜리플라워처럼 평범해 보이는 채소에 들어 있는 설포라판(Sulforaphane)이라는 성분이 파킨슨과 자폐 증상의 개선부터 암 예방, 당뇨, 심지어 치매까지 다양한 영역에서 효과를 보였다는 임상 결과가 잇달아 발표되고 있다.

이 성분은 마치 몸속 청소부처럼 세포 깊은 곳의 녹슨 기계장치를 닦고, 염증의 불씨를 끄며, 신경망의 전선을 다시 연결해 주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아이 눈빛 달라졌다" 자폐증상 완화 보고

2023년 슬로바키아와 체코의 공동 연구팀은 국제학술지 『Nutrients』에 발표한 논문을 통해, 설포라판이 자폐 스펙트럼 장애(ASD) 아동의 행동을 개선하는 효과가 있었다고 밝혔다.

연구팀은 3세에서 12세 사이의 자폐 아동 45명을 두 그룹으로 나누어, 한쪽에는 설포라판을, 다른 쪽에는 위약(가짜 약)을 36주간 복용하게 했다. 실험이 끝난 뒤, 부모와 임상가들이 평가한 행동 척도에서 설포라판을 복용한 아이들이 공격성, 자극 반응성, 과잉행동 등에서 유의한 개선을 보였다는 결과가 나왔다.

이전에도 미국 매사추세츠 종합병원(MGH)의 싱(Singh) 박사팀은 2014년 『PNAS』에 발표한 연구에서, 성인 자폐 남성 29명을 대상으로 한 18주간의 실험에서 설포라판 복용자의 65% 이상이 의사와 보호자의 평가에서 사회적 행동이 좋아졌다는 결과를 보고한 바 있다.

이 연구들은 모두 “브로콜리에서 나온 분자가 아이의 눈빛과 움직임을 바꿨다”는 임상적 가능성을 보여준 사례다.

폐 속 ‘세포증식 불꽃’ 잠재우다

2025년 미국 피츠버그대 종양내과 연구진은 금연자 43명을 대상으로 한 임상시험을 통해, 설포라판이 폐 세포의 비정상적인 증식을 억제하는 효과를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 연구는 학술지 『Cancer Prevention Research』에 게재됐다.

폐암의 초기 지표로 알려진 Ki‑67 단백질 수치는, 설포라판을 1년간 복용한 그룹에서는 평균 20% 감소한 반면, 위약군에서는 65%나 증가했다. 특히 세포 내 고밀도 증식 부위에서는 44% 감소 대 71% 증가로 극적인 차이를 보였다.

이는 마치 불이 붙은 폐 조직에 미세한 소화기를 뿌려, 암으로 번지기 전 싹을 자른 것과 같은 결과라고 연구진은 분석했다.

기억력·인지력…‘노년의 시계’도 되감는다?

파킨슨과 알츠하이머 같은 퇴행성 뇌질환에도 설포라판이 효과를 보일 수 있다는 보고도 나왔다. 일본과 미국 연구팀은 소규모 임상시험에서 고령자에게 12주간 설포라판을 투여한 결과, 정보 처리 속도와 작업 기억력의 개선, 그리고 기분 상태의 안정이 나타났다고 밝혔다.

또, 동물실험에서는, 알츠하이머 유발 생쥐에게 설포라판을 투여했을 때 뇌 속의 아밀로이드-베타 단백질 축적이 60~80% 줄어들고, 기억력도 유지되었다는 보고가 나왔다. 이는 노화로 녹슨 시계바늘에 기름을 치듯, 신경 회로의 움직임을 부드럽게 만든 결과로 해석된다.

당뇨와 면역에도 ‘녹색 청소부’ 역할

스웨덴 룬드대학교는 2형 당뇨병 전단계 환자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설포라판이 혈당과 인슐린 저항성을 낮추는 효과가 있었다고 밝혔다. 간의 당 생성 유전자 발현을 억제하며, 혈당 스파이크를 줄이는 작용이 관찰됐다.

한편 면역과 해독 기능에서는 ‘Nrf2’라는 경로가 핵심이다. 설포라판은 Nrf2 경로를 활성화시켜 해독 효소를 증가시키고, 염증 유발 유전자(NF-κB)를 억제함으로써 몸속 쓰레기를 처리하는 유전자 스위치를 켜는 작용을 한다.

과학계는 ‘조심스러운 낙관’, 소비자는 ‘기대 반’

전문가들은 설포라판의 효과에 대해 “가능성은 충분하나, 아직은 임상 확대가 필요한 단계”라고 평가한다. 대부분의 연구가 소규모 단기 임상에 그쳐 있고, 다양한 인종과 연령을 대상으로 한 대규모 연구가 요구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작용이 거의 없고, 식이로 섭취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대중적 관심은 높아지고 있다. 연구자들은 “브로콜리를 삶기보다 살짝 데쳐 먹거나, 브로콜리 새싹을 그대로 먹는 것이 설포라판 흡수에 효과적”이라고 조언한다.

- 자폐 스펙트럼: 슬로바키아·체코 공동연구, 『Nutrients』(2023) – 행동지표 유의 개선

- 폐암 예방: 피츠버그대 연구, 『Cancer Prevention Research』(2025) – Ki-67 수치 감소

- 치매·인지 개선: 전임상·예비임상 – 기억력·처리속도 향상 보고

- 당뇨·면역 조절: 룬드대 임상연구 및 다수 리뷰 – 혈당 조절, 항산화·해독 기전

설포라판은 아직 ‘기적의 물질’이라 단정할 수는 없지만, 확실히 과학자들의 시선을 사로잡고 있다. 초록빛 채소의 작고 평범한 분자가, 인류의 건강을 바꾸는 조용한 혁명이 될 수 있을지, 앞으로의 임상 결과가 기다려진다.

<출처>

1. Magner et al., Nutrients(2023), [https://www.mdpi.com/2072-6643/15/3/718](https://www.mdpi.com/2072-6643/15/3/718)

2. Singh et al., PNAS(2014), [https://www.pnas.org/content/111/43/15550](https://www.pnas.org/content/111/43/15550)

3. Pittsburgh Univ., Cancer Prev. Res.(2025), [https://pubmed.ncbi.nlm.nih.gov/40041932]

4. Lund Univ., Diabetes Research, ClinicalTrials.gov(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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