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발러’라는 외래어에 가려진 우리말의 온기'늘벗근린공원'서 맨발 걸으며 떠올린 '맨발벗'젊은이들 맨발모임 '영발러'는 '풋발벗'이 어떨까'태권도', ‘아리랑’이 그랬고, 방탄소년단의 노랫말도 그랬다한글단어 ‘맨발벗’ 세계인 입에도 오르내린다면

칼럼 작성 때마다 마땅한 호칭 없어 고민
언제부터인가 맨발걷기를 즐기는 사람들을 ‘맨발러’라 부르는 이들이 늘고 있다. 젊은 세대의 맨발걷기 모임 ‘영발러’는 ‘영(young)’은 젊음을, ‘발’은 맨발을, ‘러(er)’는 사람을 뜻하는 것으로 보인다. 어감이 신선하고, 기억하기 쉬운 조어이기에 자연스럽게 퍼져나가고 있는 모양이다.
그런데 나는 이 표현이 어딘가 아쉽다. ‘맨발러’, ‘영발러’라는 말은 한국인의 걷기 문화와 자연친화적 정신, 그리고 한글 고유의 아름다움을 담아내지 못한다. 굳이 외래어에 의존한 조어가 필요한가. 우리말에도 충분히 따뜻하고 정감 있는 이름이 있다. 그래서 나는 ‘맨발러’ 대신 ‘맨발벗’이라는 명칭을 조심스럽게 제안한다.
사실 맨발걷기와 관련한 칼럼이나 기사를 쓸 때마다 가장 곤란했던 순간은 이들을 무엇이라 불러야 할지 망설이는 일이었다. ‘참가자’, ‘시민’, ‘걷는 이들’, ‘맨발 회원’ 같은 표현을 떠올려보았지만 하나같이 거리감이 있거나 온기가 부족했다.
맨발모임장소인 '늘벗근린공원'서 착안
그러던 어느 날,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늘벗근린공원'에서 맨발걷기를 하면서 문득 떠오른 이름이 있었다. ‘맨발벗’-. 그러잖아도 고등학교를 같이 다녔던 '벗'들과 올해만해도 벌써 세 번이나 '늘벗근린공원'에서 맨발걷기 번개모임을 열었고 조만간 또 소집할 예정이다.
'맨발벗'이 괜찮은 이유를 사색해 보았다. 우선, 이 명칭은 단순한 조어가 아니다. ‘신을 벗은 발’, 그리고 ‘마음을 열고 자연과 친구가 된 사람’이라는 이중의 의미가 겹쳐진다. 장갑을 벗고 손을 잡아야 온기가 전해지듯, 신발을 벗고 흙을 딛는 순간, 생명의 감각은 되살아난다. 그 행위를 함께하는 이는 단순한 ‘참가자’가 아니라 ‘벗’이 된다.
‘벗’은 친구이자 동행이며, 마음을 나누는 사람이다. ‘맨발벗’이란, 흙과 바람과 햇살과 나무와 친구가 된 사람을 뜻한다. 그 속에는 함께 걷고, 함께 호흡하고, 함께 느끼는 공동체적 감각이 자연스럽게 배어 있다.

흙과 바람, 햇살, 나무와 친구된 사람 '맨발벗'
이 명칭에는 문학적 상징도 담겨 있다. 맨발은 펜촉이고, 흙은 노트다. 우리는 발로 시를 쓰고, 흙 위에 마음을 새긴다. 그 시를 함께 읽는 이가 바로 또 다른 ‘맨발벗’이다. 맨발벗은 길 위의 시인이자, 흙길 위의 철학자이며, 자연에 기대는 나그네다.
무엇보다 ‘맨발벗’이라는 말은 한글의 조어 정신에 부합한다. ‘맨발’과 ‘벗’은 모두 순우리말이다. 외래어나 한자어에 의존하지 않고도 이처럼 감성적이고 정감 있는 단어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점에서, 한글의 창의성과 문화적 자존감이 빛난다.
예컨대 영어 표현인 ‘barefooter’는 설명적이고 건조하다. 반면, ‘맨발벗’은 감성적이고 따뜻하다. ‘벗’이라는 단어 하나에 ‘동행’, ‘공감’, ‘사귐’, ‘상대를 받아들이는 태도’까지 함께 담겨 있기 때문이다.
'맨발벗'은 흙길 위의 시인이자 철학자
나는 이 명칭이 더 많은 사람들의 입에서 불리며, 삶 속에서 쓰이길 바란다. 언어는 입에서 입으로 전해질 때 살아난다. 단어는 쓰일수록 깊어진다.
한 예로, 비 온 뒤 흙길을 피하지 않고 웃으며 밟는 사람이 있다면, 그를 우리는 ‘맨발벗’이라 부를 수 있다. 초록이 우거진 숲길에서 누가 앞이고 뒤인지 모른 채 나란히 걷는 이들도 ‘맨발벗’이다. 신발을 벗는 순간, 사람은 자연의 일부가 되고, 존재의 속살을 마주하게 된다.
‘맨발벗’은 단지 맨발로 걷는 사람을 뜻하지 않는다. 특정 연령도, 성별도, 신분도 가리지 않는다. 그것은 삶을 대하는 태도이며, 자연을 향한 예절이고, 나와 세상의 경계를 허무는 감각의 언어다.

더 좋은 이름 있다면 당연히 지지
나는 이 이름이 한글학자나 한글학회 연구원이 아닌, 흙을 직접 밟는 시민들에 의해 자발적으로 쓰였으면 좋겠다. 더 좋은 이름이 있다면 마땅히 지지하겠지만, 지금 이 순간 가장 따뜻하고, 우리말답고, 삶을 닮은 이름은 단연 ‘맨발벗’이다.
맨발걷기가 전 세계로 확산하여, 다양한 나라의 사람들이 이 한국어 단어를 자연스럽게 부르는 상상을 해본다. 태권도가 그랬고, ‘아리랑’이 그랬고, 방탄소년단의 노랫말도 그랬다. ‘맨발벗’이라는 한글 단어가 세계인의 입에도 오르내리게 되지 말란 법은 없다.
한편, 젊은이들의 맨발걷기모임인 '영발러'란 명칭의 대안으로 '풋발벗'을 제안한다. '풋풋한 맨발 벗'으로, 젊음+맨발걷기+감성+한글 조어 — 이 4요소를 한꺼번에 잡혔다. 듣자마자 맨발, 자유, 걷기, 젊은 느낌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맨발로 걷는 젊은이들이 모임 명칭을 좀 더 사색해 보면 좋겠다)
나는 오늘도 ‘맨발벗’으로서 걷는다. 땅과 가까운 마음으로, 사람과 가까운 발걸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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