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병호 지회장, 산티아고 순례 4일차 푸엔테 라 레이나 도착

날씨는 좋지 않았다. 21일 월요일, 팜플로나를 출발한 유병호 지회장의 발걸음 위로 잿빛 하늘과 질척한 땅이 쏟아졌다.
“오늘은 정말 쉽지 않았습니다. 발이 진흙에 빠지고, 다시 꺼내는 데도 힘이 들었습니다. 낭만적인 초원길은 아주 잠깐이더군요.”
이날 유 지회장은 총 24km를 맨발로 걸었다.목적지는 푸엔테 라 레이나(Puente la Reina).중세 여왕이 순례자를 위해 만든 다리가 있는 곳, 프랑스 루트와 아라곤 루트가 합쳐지는 순례길의 분수령이었다.

언덕을 넘다…목마 형상과 바람
팜플로나 외곽을 벗어난 길은 곧 오르막이었다. 부엔 까미노를 외치는 사람들의 목소리는 이내 사라지고, 진흙과 고요만이 남았다.
길 위엔 바람에 흔들리는 철제 목마 형상 조각이 순례자들을 맞았다. 산 정상, 고요한 언덕에서 말을 타고 지나간 순례자의 형상이 수백 년을 건너 지금도 말을 걸고 있었다.
“저 말들이 바람 속에서 묻더군요. ‘넌 왜 걷고 있니?’ 한참을 멈춰 섰습니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냥… 발로만 대답했습니다.”
한국의 맨발길과는 다른 길, 날것의 길
유 지회장은 말했다.
“여긴 한국의 맨발걷기길이 아니었습니다. 가꿔진 흙길도, 고운 잔디도 없었습니다. 그저 자연 그대로의 언덕과 구릉, 그리고 질퍽한 진흙뿐이었습니다.”
발바닥은 계속해서 눌리고, 미끄러지고, 빠지고, 다시 뺐다. 마치 땅이 “진짜 걷고 싶은가?” 묻기라도 하듯, 한 걸음 한 걸음이 투쟁이었고 기도였다.
오르막 언덕에서 내려오던 어느 순간, 미끄러진 발이 바닥을 강하게 쳤다 발가락 사이로 진흙이 파고들었고, 붕대는 흙물에 젖어 들었다. 하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다.

“이 길은 나를 거절하지 않는다”
푸엔테 라 레이나 입구에 도착한 건 오후 늦은 시각이었다. 비에 젖은 어깨, 발바닥엔 흙이 눌어붙어 있었다. 그러나 그의 얼굴엔 환한 미소가 남아 있었다.
“그래도요… 이 길은 저를 거절하지 않았습니다. 계속 걷게 해주었고, 결국 받아주었습니다.”
이곳 ‘여왕의 다리(Puente de la Reina)’는 중세 나바라 왕국의 여왕이 수많은 순례자들의 안전한 도보를 위해 직접 세웠다는 다리다.
유 지회장은 그 다리 위에 잠시 멈춰 섰다. 비에 젖은 돌바닥 위로 맨발을 얹고, 두 눈을 감았다.
“오늘처럼 힘든 날도, 이렇게 마무리되네요. 결국 길은 사람을 받아줍니다. 그게 참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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