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달래꽃 한아름 소녀, '세살바기 아기 박동창'에게 '맨발걷기 이데아 영감'을 선사하다~

[글쓴이 주=세 살배가 아기는 박동창 회장]

"이야, 엄마! 저기 봐요!"

만 세 살배기였던 내 입에서 흘러나온 말이었는지, 아니면 단순한 탄성이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그 순간, 내 눈이 세상을 처음으로 온전히 바라봤다는 것이다.

트럭은 덜컹거렸다. 낡고 투박한 ‘쓰리쿼터’의 뒷칸, 우리 가족은 서로 부둥켜안고 흔들리는 철판 위에 앉아 있었다. 내 몸은 어머니의 무릎에 폭 안겨 있었다. 아버지는 우리를 감싸 안은 채 묵묵히 먼 산을 바라보았다. 경남 함양 소현마을로 가는 길이었다.

산자락을 감싸고 흐르는 신작로(新作路), 흙먼지 날리는 그 길을 따라 트럭이 구불구불 올라갈 때였다. 갑자기 산등성이가 붉게 타올랐다. 진달래였다.

아니, 불꽃 같았다. 산이 불타오르고 있었다. 꽃잎들이 바람에 날릴 때마다 작은 불씨들이 공중으로 흩어졌다. 트럭은 그 불꽃길을 따라 천천히 기어올랐다. 그리고 그 붉은 바다 속에서 한 소녀가 내려오고 있었다.

팔에 한아름 진달래를 안고, 머릿결은 산들바람에 가볍게 흔들리고 있었다. 신작로와 진달래 사이, 붉은 꽃과 붉은 볼을 가진 소녀가 한 폭의 그림처럼 그 자리에 있었다.

나는 숨을 삼켰다. 그 순간, 나는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보았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몰랐지만, 그건 분명 소중한 것이었다.

"엄마! 저 아이는 누구야?"

어머니는 웃으며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응? 그냥 시골에 사는 누나겠지."

"진달래를 저렇게 많이 안고 있어요."

"아마 꽃잎을 따서 화전을 부쳐 먹으려는 걸 거야."

그때는 몰랐다. 하지만 그날, 그 소녀는 내 기억에 영원히 각인되었다.

세월이 흘러, 여섯 살이 되던 해. 부산의 우리 집에 먼 친척 아저씨가 찾아왔다. 그는 아버지와 이야기를 나누었고, 대화 속에서 ‘함양’이라는 단어가 튀어나왔다.

그 순간, 세 살 때 보았던 붉은 산, 붉은 꽃, 그리고 붉은 볼을 가진 소녀가 다시 떠올랐다.

나는 결심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그곳으로 돌아가야 했다. 밤이 깊어지자, 아저씨는 친척 집에서 유숙하겠다고 했다. 나는 그의 손을 붙잡고 놓지 않았다.

"저도 데려가 주세요."

"뭐? 갑자기 왜?"

"그냥, 거기에 가야 해요."

어머니가 다급하게 달려왔다.

"이 녀석이 웬 고집이야! 얼른 집으로 돌아가자."

"싫어요. 난 꼭 가야 해요."

어머니의 표정이 당황스러움과 걱정으로 뒤섞였다. 하지만 나는 단호했다. 세 살 때 본 그 붉은 진달래와 소녀가 부르는 듯했다.

다음 날, 나는 홀연히 함양으로 떠났다. 그 후, 나는 다섯 해 동안 시골에서 살았다.

아침이면 뻐꾸기 소리에 눈을 떴고, 논두렁을 따라 개울가로 달려갔다. 비 오는 날이면 초가집 처마 밑에서 감자 껍질을 까며 할머니의 옛날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봄이면, 어김없이 진달래가 산을 붉게 물들였다.

하지만 그 붉은 꽃들 사이에서, 그 소녀를 다시 보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내 삶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점점 더 선명해졌다.

붉은 진달래를 안고 산길을 내려오던 소녀. 그녀는 나에게 단순한 기억이 아니라, 하나의 이데아가 되었다. 그녀는 내 삶의 모든 선택 앞에서 속삭였다.

"무엇을 좇을 것인가?"

나는 이 질문 앞에서 한 번도 망설인 적이 없었다. 세 살 때 보았던 그 장면처럼, 내 눈앞에 강렬하게 스며든 것은 반드시 좇아야 했다.

그것이 사랑이든, 꿈이든, 신념이든.

그래서 나는 오늘도 나만의 연분홍 진달래를 찾아 걷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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