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준 기자의 ‘내가 만난 스타’ 축구감독 거스 히딩크]2002년 월드컵 사령탑 맡고 숱한 화제병 주고 약 주면서 한국 기자들 길들여나쁜 경기 결과 나왔을 때 선수들 칭찬흡족한 결과 나오면 반대로 잘못된 점 가차없이 지적
[편집자 주] 체육기자로 활약한 중앙일보 이해준 기자의 ‘내가 만난 스타’를 연재합니다. 이 기자는 간결하고 반듯한 문장과 현장감 넘치는 표현으로 독자들에게 ‘글맛’을 느끼게 합니다. 단순 나열식 문장이 아니라 마치 영화의 한 장면을 떠오르게 하는 방식으로 묘사를 합니다. 독자 여러분도 이 기자처럼 자신의 경험담을 글로 진솔하게 표현해 보내 주시면 실어 드리겠습니다.
[글쓴이 주] 편집국 스포츠부를 떠난 지 어언 4년이 흘렀다. 한동안 글쓰기도 싫고, 운동 경기를 쳐다 보기도 싫었다. 일로 글을 쓰고, 스포츠를 본 세월이 너무 길어서다. 지난해부터 다시 축구를 보기 시작했다. 글을 쓰고 싶은 마음도 다시 생겼다. 내가 스포츠를 취재하며 만난 사람들, 겪은 사건, 들었던 이야기, 느꼈던 점을 편한 마음으로 쓰려한다. 이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한동안 고민했다. 그냥 나를 위해서 쓰기로 했다. 그 시절을 추억하는 건, 자신을 돌아보는 즐거운 일이다.

#1 거스 히딩크를 생각하면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이 떠오른다. 그는 살아 움직이는 ‘마키아벨리’다. ‘군주론’이다. 그는 어떻게 쥐어 짜면 인간을 자기 뜻대로 움직일 수 있는지 알고 있는 정치가다. 어떻게 말해야 대중의 마음을 살지 아는 웅변가다.
히딩크는 얄밉도록 유능하다. 그는 선수를, 코칭스태프를, 축구협회를, 팬들을 자기 뜻대로 움직였다. 2002년 우리는 히딩크의 품 속에서 모두 행복했다. 그는 2002년의 위대한 군주였다.
#2 그는 ‘작은 독재자’라고 불렸다. 다음날 어떤 일정일지 선수들은 예측할 수 없었다. 정해진 일정을 갑자기 바꾸기도 했다. 이 때문에 선수들은 늘 긴장해야 했다. 언제 틈을 내서 어떻게 놀아야겠다는 계획을 세우기도 힘들었을 것이다. 그는 선수들의 시간을 지배했다. 대신 훈련 중 파격적인 휴가를 줬다. 가족들을 훈련지로 불러와 만나는 시간을 준 것은 매우 파격적이고 이색적이었다. 조일 때와 풀어줄 때를 기막히게 포착했다.
#3 홍명보는 히딩크라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부상을 계기 삼아 한동안 대표팀에서 제외했고, 부상이 회복된 후에도 한동안 대표팀에 부르지 않았다. 월드컵이 열리기 몇 달 전, 후배들과 정당하게 경쟁하겠다는 다짐을 받아내고 대표팀에 다시 불러들였다. 후보 선수가 되더라도 묵묵히 팀 분위기를 해치지 않을 자신이 있느냐는 질문을 뒤집은 것이다.
#4 히딩크는 이천수를 불러 ‘홍명보에게 반말하라’라고 시켰다. 히딩크의 지시에 이천수는 “명보야, 밥 먹자”고 말했고, 뜻밖의 상황에 폭소가 터졌다.

#5 팀의 기둥이 되는 고참 선수와 감독 사이에는 미묘한 긴장감이 흐른다. 최고참 선수가 몽니를 부리면 팀은 곧바로 망가진다. 히딩크는 노련하게 홍명보를 제압했다.
#6 히딩크의 장점은 사람을 다룰 줄 알았다는 것이다. 그는 묘한 소통의 능력을 지니고 있다. 어떤 사람에게 부드럽게 대하고, 어떤 사람에게 강하게 맞서야 할지, 언제 당근을 주고, 언제 채찍을 휘둘러야 할지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 ‘제왕’이었다. 책으로는 도저히 배울 수 없는 능력이다. 사람과 조직을 단숨에 휘어잡는다.(내 보스가 아니라 참 다행이다.)
#7 그는 아주 나쁜 경기 결과가 나왔을 때 선수들을 칭찬하고, 기자나 팬들이 보기엔 흡족한 결과가 나온 뒤에는 반대로 잘못된 점을 가차없이 파헤쳤다. 이를 테면 5-0으로 졌을 때 ‘우리는 계속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우산을 폈고, 1-0이나 2-0으로 이긴 날에는 선수단의 문제점을 날카롭게 지적하며 채찍을 휘둘렀다. 기자와 팬은 물론 선수단이 예측하는 수를 두지 않았다. 바둑이나 장기의 고수처럼 늘 한발 앞서 나가며 선수(先手)를 쳤다.
#8 그는 젊었을 때 정신지체장애인에게 스포츠를 가르친 경험이 있다. 그 중 누군가 칼을 들고 히딩크에게 덤빈 일도 있었다고 한다. 충동적이고, 돌발적이고, 감정의 기복이 심한 사람을 다루고 교육하는 경험을 충분히 쌓았다. 이 때문인지 히딩크는 기가 세고 자존심이 강한 말썽꾸러기 축구 스타를 다룰 때 별로 당황하지 않았다. 어떻게 자극하면 어떻게 반응하는지 알고 있는 히딩크는 야생마 같은 선수를 능숙하게 다스렸다.
#9 그런데 개성이 강한 선수를 다루는 방식은 다 제각각이다. 고종수는 내쳤고, 이천수는 릴리(프랑스 릴이라는 팀에서 관심을 보인 리천수)라고 부르며 정서적으로 다독였다. 김병지에게는 엄한 징계를 내렸고, 홍명보는 한동안 대표팀에서 제외했다. 설기현은 후반 45분에 교체 투입하며 자극했고, 안정환에게는 기자 인터뷰를 통해 메시지를 전달했다. 부처님이 그랬던 것처럼 사람에 따라 설법을 달리했다.

#10 골키퍼 김용대는 2002년 월드컵 당시 이운재와 김병지의 뒤를 이을 차세대 선두 주자였다. 그러나 최은성에게 월드컵 대표팀 N0.3 골키퍼 자리를 내주고 최종 엔트리에서 탈락했다. 체중 문제에 대한 지적을 받았는데 식사 때 맛있게 아이스크림을 먹다가 히딩크와 눈이 마주쳤다. 돌이킬 수 없었다.
#11 히딩크는 F로 시작하는 욕을 입에 달고 살았다. 구두를 신고 훈련장 잔디를 밟는 기자에게는 “F***king”, “ass”, “kick”, “damn” 등의 단어가 뒤섞인 불호령이 떨어진 적도 있다.(나 아니다. 다른 기자다.) 대략 “X같은 궁둥이를 발로 까버리겠다”는 정도의 뜻이었다. 그런데 2002년 새해 초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전지훈련 중일 때, 히딩크의 연인 엘리자베스가 훈련장에 나타나, 무려 하이힐을 신고 잔디밭을 가로질러 히딩크에게 다가갔다. 히딩크는 엘리자베스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나도 앞으로 무조건 집사람 편을 들겠다.)
#12 그는 크리스마스를 전후한 연말 휴가 문제로 축구협회와 대립했다. 그 때 그의 별명은 ‘오대영’이었다.(프랑스, 체코에 0-5로 패한 뒤 붙었다) 축구협회는 팬들 분위기는 좋지 않았다. 스포츠신문에서는 그가 한국 감독에 부임한 이후 한국이 아니라 유럽에서 머문 날짜 등을 계산해 기사화하기도 했다. 하지만 히딩크는 너무도 당당하게 휴가를 관철시켰다.
#13 지금은 모두 영웅으로 추앙하지만, 2002년 초반까지 히딩크에 대한 비판은 매우 거셌다. 휴가 문제, 해외 전훈에 연인을 동반한 문제, 골드컵에서 성적 부진 등 악재가 겹쳤다. 언론에서는 연일 비판기사를 쏟아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수단 내부에서는 히딩크 감독의 리더십이 굳건했다. 2002년 초에 열린 골드컵에서 부진했을 때 히딩크는 “우리는 체력을 쌓고 있다. 우리의 시계는 월드컵에 맞춰져 있다”고 말했다. 놀랍게도 그의 말대로 됐다.
#14 히딩크가 감독에 부임한 직후 한국 대표팀에 대한 평가는 매우 충격적이다. 그 전까지 ‘한국은 투지와 체력은 좋은데 기술과 결정력이 부족하다’는 게 거의 모든 축구인이 말하는 일반적인 평가였다. 히딩크는 완전 반대였다. 그는 “한국 선수들은 기술이 매우 뛰어나다. 거의 모든 선수가 양발을 모두 잘 사용한다. 하지만 체력이 약하다”고 진단했다. 히딩크가 그런 말을 하기 전까지 그 누구도 우리가 기술이 뛰어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월드컵이 열리기 직전 그는 “이제 우리 대표팀의 체력은 세계 최정상급 팀과 비교해도 조금도 뒤지지 않는다”고 자신했다. 축구를 바라보는 눈과 관점이 완전히 달랐던 것이다. 그가 그런 이야기를 했을 때 난 ‘저게 무슨 개소라야’라고 생각했다. 내가 틀리고, 그가 옳았다.

#15 그는 소통의 달인이다. 청와대 대변인이 배워야 한다. 월드컵 개막을 50일 남겨두고 기자회견에서 16강 진출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이런 답을 했다.
“현재 가능성은 50%다. 앞으로 매일 1%씩 높여나가겠다.”
월드컵에서 16강에 진출한 뒤에는 “나는 아직도 배고프다”(I`m still hungry)며 결과에 만족하던 선수들을 자극했다.
#16 히딩크는 기자들도 차별대우했다. 아주 소수의 몇몇 기자들(주로 영어가 되는)과는 친하게 지내기도 했다. 언론을 차별적으로 대하는 건 매우 영리한 행동이다.(언론을 차별적으로 대하는 게 좋다는 건 홍보학 개론에도 나오는 이야기다. 히딩크는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 것 같다.)
#17 히딩크는 일하지 않았다. 대신 일하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훈련은 핌 베어벡 코치가 계획하고 주도했다. 전담 주치의가 없는 게 말이 되냐며 축구협회에 전담 주치의를 요구했다. 장비 담당도 히딩크 때 새로 생겼다. 언론 담당도 두세 명이나 됐다. 대표팀 감독과 미디어의 관계도 재설정됐다. 한국 축구의 시스템이 히딩크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 말해도 과장이 아닐 것이다. 히딩크는 쳇바퀴 밖에서 쳇바퀴가 잘 굴러가도록 조정했다. 그는 일하지 않지만 군림하는 제왕이다.
#18 히딩크는 한국 대표팀에 부임한 직후 울산으로 내려가 대표팀의 훈련을 지켜봤다. 그 자리에 내가 있었다. 첫 인터뷰를 막 시작할 때 내 휴대폰이 울렸다. 히딩크가 날 노려봤다. 그리고 공개된 자리에서 나를 비난하는 코멘트를 했다. 그 자리는 한국 기자와 히딩크가 만나는 첫 만남이었고, 그는 그런 방식으로 기자들과 기싸움을 시작했다. 아마 벨이 울린 후 내가 당황하는 모습을 보고 몰아붙인 것이라 생각한다. (히딩크는 언제 나아가고, 누구를 물어뜯어야 할지 귀신 같이 아는 사람이다) 인터뷰가 끝난 뒤 통역을 통해 히딩크가 나를 불러 인터뷰 자리에서 비난한 행동에 관해 양해를 구했다. 그는 병주고 약주며 한국 언론을 길들여나갔다.
#19 난 유로 2008을 취재했다. 그 때 히딩크는 러시아 대표팀 사령탑이었다. 러시아는 4강까지 올라갔다. 난 히딩크가 머무는 호텔로 인터뷰를 하러 갔다. 히딩크는 인터뷰에 응하지 않았다. 그는 샤일록처럼 냉정하다.
#20 히딩크의 고향인 네덜란드 파르세펠트로 취재를 간 적이 있다. 2002년 월드컵이 끝난 직후였다. 아주 고즈넉한 동네다. 마을 가운데 광장과 시청과 교회와 카페가 있다. 자전거를 탄 소년들은 놀랍게도 비더레즈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동양인을 보자 그들은 붉은악마의 응원리듬대로 ‘대~한민국’을 외쳤다.
#21 히딩크가 남긴 유산이 지금 한국 축구에 얼마나 남아있을까. 나에게 히딩크에 대한 추억과 기억이 이렇게 많은 줄은 꿈에도 몰랐다.
#22 벤투, 아자~~.




기사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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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11.23 13:36
그립네요 감독님..
정민철 2022.12.06 04:53
문장의 행간 행간마다, 협회와 구단들로부터 거마비 받아서 호사부리고 락커룸에 눌러앉아 우동 시켜먹던 시절 기자들의 오만함과 교만이 넘쳐납니다. 살 썩는 냄새로 진동 중^^ 추억하고 있는 게 히딩크호가 아니라 '그 시절의 나'인데요?? ㅋㅋㅋ 희동구 민쯩은 이해준씨가 만들었어요? 기자 출신이라는 양반이 출처로 자기 페북을 들입다 때려박아놓네 아이구 ㅉ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