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연숙 생애기록치유⑳] 남들은 10년 걸린다는데, 나는 밤 12시까지 썼다

남들은 오래 걸린다는 필사, 시작하자 정연숙 특유의 몰입 발동하루 일과를 끝낸 뒤에도 책상에 앉아 밤 12시까지 계속 써며칠 사이 예상보다 많은 분량 채우고 볼펜도 빠르게 닳아“노트 열 권 정도는 써보려고 해요”…스스로 또 높은 목표 세워야구·걷기·건강 공부까지, 한번 빠지면 끝까지 가는 성격의 힘

[편집자 주] 물치유 전도사로 알려진 ㈜물들임 정연숙 대표의 생애를 따라가는 연재입니다. 한 사람의 경험과 선택, 상처와 회복을 기록하며 그것이 어떻게 오늘의 삶과 치유 활동으로 이어졌는지를 차근히 풀어봅니다.

시작하면 적당히가 잘 안 된다

정연숙 대표에게는 자신도 인정하는 성격 하나가 있다. 무엇인가 시작하면 적당히 하다가 그만두는 것이 잘 안 된다는 것이다. 관심이 생기면 깊이 파고들고, 목표를 세우면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스스로 확인해봐야 직성이 풀린다.

법화경 필사에서도 그 성격이 그대로 나타났다. 필사를 시작한 이유와 의미는 앞선 연재에서 다뤘지만, 막상 시작한 뒤 정 대표가 보여준 모습은 또 다른 이야기다. 처음에는 긴 호흡으로 해야 하는 작업이라고 생각했다. 주변 이야기를 들어보니 완성하기까지 10년이 걸리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하루 세 장씩만 쓴다고 해도 상당한 시간이 필요한 일이었다. 그러나 막상 시작하자 정 대표 특유의 집중력이 발휘됐다.

“다른 사람들은 한 10년 걸리기도 한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저는 계속 앉아서 썼어요.”

오래 걸린다는 말을 듣고 포기하기보다 오히려 ‘나는 어디까지 할 수 있을까’ 하는 마음이 생겼다.

밤 12시, 아직 책상 앞에 있었다

낮에는 해야 할 일이 있었다. 하루 일과를 마치면 몸도 피곤했다. 하지만 필사를 시작한 뒤에는 일이 끝나도 하루가 끝난 것이 아니었다. 다시 책상 앞에 앉아 노트를 펼쳤다. 한 글자를 쓰고 그다음 글자를 이어갔다. 몇 줄이 한 페이지가 되고, 한 페이지가 다시 여러 장으로 늘어났다. 그렇게 집중하다 보면 어느새 밤 12시가 됐다.

“일 끝나고 난 다음에도 계속 노트에 썼거든요. 그러다 보니까 많이 썼어요.”

정 대표 스스로도 예상하지 못했던 속도였다. 처음에는 몇 년이 걸릴 수도 있다고 생각했지만, 하루도 빼놓지 않고 집중해서 쓰다 보니 며칠 사이 제법 많은 분량이 쌓였다. 그 과정에서 뜻밖에 체감한 것이 하나 있었다. 바로 볼펜이었다.

“길다 보니까 볼펜이 생각보다 너무 많이 들더라고요.”

볼펜 한 자루를 다 쓰고 새것을 꺼낸다. 또 쓰다 보면 그것도 닳는다. 별것 아닌 일처럼 보이지만 정 대표에게는 자신이 얼마나 많은 글자를 썼는지를 눈으로 확인하게 해주는 흔적이었다. 노트에 쌓이는 글자와 다 써버린 볼펜이 그가 책상 앞에서 보낸 시간을 대신 말해주고 있었다.

한 권도 끝나지 않았는데 목표는 ‘열 권’

더 흥미로운 것은 목표였다. 이제 막 시작했는데 정 대표는 벌써 앞으로 채워갈 노트까지 생각하고 있었다.

“노트를 한 열 권 정도 써보려고 해요.”

열 권이라는 숫자가 부담스럽기보다 오히려 도전해보고 싶은 목표가 된 것이다. 이런 모습은 정 대표의 삶에서 낯설지 않다. 무엇인가 시작하면 스스로 높은 목표를 세우고, 목표가 생기면 그것을 향해 밀고 나간다. 중간에 힘든 순간이 와도 ‘이 정도면 됐다’며 쉽게 멈추지 않는다.

하루 2만 보 걷기도 그랬다. 하루 이틀 많이 걷고 끝낸 것이 아니라 자신이 정한 숫자를 매일 채우는 쪽을 선택했다. 필사에서도 같은 성향이 나타난다. 몇 장 써보고 좋은 경험이었다며 끝내기보다 아예 노트 열 권이라는 긴 목표를 세웠다. 정 대표에게 목표는 자신을 계속 움직이게 하는 동력인 셈이다.

남들이 말려도 자신과의 약속은 지켜

그런 성격 때문에 주변에서 정 대표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하루 2만 보를 걷는다고 했을 때는 너무 무리하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도 들었다. 밤늦게까지 책상에 앉아 많은 분량을 필사하는 모습 역시 누군가에게는 ‘왜 굳이 저렇게까지 하나’라는 생각이 들게 할 수 있다. 그렇다고 남들이 말린다고 쉽게 접는 성격은 아니다.

“저는 그걸 내가 이겨냈을 때야 그만큼 성장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거든요.”

정 대표에게 ‘이겨낸다’는 것은 다른 사람을 이긴다는 의미가 아니다. 피곤해서 오늘은 쉬고 싶은 마음, 적당히 하고 싶어지는 마음, 굳이 끝까지 해야 하느냐는 자기 안의 목소리를 넘어서는 것이다. 결국 그의 경쟁 상대는 다른 사람이 아니라 자신이다.

좋아하면 깊이 들어가고, 관심이 생기면 파고든다. 시작하면 직접 해본다. 대상만 달라졌을 뿐이다. 여고 시절에는 야구였고 이후에는 운동과 건강에 관심을 쏟았다. 하루 2만 보 걷기에 도전했고, 이제는 밤 12시까지 노트를 채우는 필사로 이어졌다. 한때는 이런 성격이 지나친 몰입처럼 보였을 수도 있지만, 정 대표는 지금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그것이 자신을 움직여온 힘 가운데 하나였다고 생각한다.

다 써버린 볼펜이 보여주는 것

생애를 기록하다 보면 거창한 사건만 중요한 것은 아니다. 때로는 책상 위에 놓인 다 쓴 볼펜 한 자루가 한 사람의 성격을 더 선명하게 보여주기도 한다. 정 대표에게 그 볼펜은 단순한 필기구가 아니다. 피곤한 날에도 책상 앞에 앉았던 시간과 몇 줄만 쓰고 일어나고 싶은 순간에도 한 장을 더 채웠던 시간의 흔적이다.

앞으로 정말 노트 열 권을 모두 채울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몇 달이 걸릴지, 몇 년이 걸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정연숙을 보면 한 가지는 분명해 보인다. 무엇인가 마음먹으면 일단 시작하고, 시작하면 깊이 들어간다. 그리고 자신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스스로 확인해보려 한다.

세월이 흐르면서 몰입의 대상은 달라졌지만 ‘한번 시작하면 끝을 보고 싶어 하는 마음’은 달라지지 않았다. 어쩌면 정연숙 대표의 삶을 앞으로 밀어온 힘은 특별한 재능보다 바로 그런 성격에 있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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