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연숙 생애기록치유⑰] 내 인생에도 지우고 싶은 페이지가 있었다

잘한 일보다 잘못된 선택 기록할 때 삶의 패턴이 더 잘 보여결과만 후회하지 않고 ‘나는 왜 그때 그렇게 선택했나’ 성찰과거를 바꿀 수 없어도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을 수는 있다생애기록은 지나온 삶을 돌아보며 다음 선택 준비하는 일

[편집자 주] 물치유 전도사로 알려진 ㈜물들임 정연숙 대표의 생애를 따라가는 연재입니다. 단순한 성공담이 아니라 한 사람의 경험과 선택, 상처와 회복을 기록하며 그것이 어떻게 오늘의 삶과 치유로 이어졌는지를 차근히 풀어봅니다.

잘한 일만 적어서는 내 삶을 알 수 없어

정연숙 대표에게 기록은 지나간 일을 추억하기 위한 것만은 아니다. 자신이 어떤 선택을 했고 그 선택이 어떤 결과로 이어졌는지를 되짚어보는 작업이다. 잘했던 일은 왜 좋은 결과로 이어졌는지 살펴보고, 잘못된 선택은 어디서부터 어긋났는지를 찾아본다.

인생을 돌아보면 누구에게나 다시 선택할 수 있다면 다르게 하고 싶은 일이 있다. 당시에는 옳다고 생각했지만 지나고 보니 그렇지 않았던 선택도 있다. 정 대표는 그런 경험을 단순히 ‘실패했다’거나 ‘운이 없었다’는 말로 넘기기보다 그 원인을 기록해 보려고 했다.

“그냥 지나가 버리면 같은 실수를 또 할 수 있어요. 무엇 때문에 좋았고, 무엇 때문에 잘못된 길을 선택했는지를 기록해 놓으면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게 되더라고요.”

결국 그가 기록을 통해 던지는 질문은 하나였다. ‘나는 왜 그때 그런 선택을 했을까.’

결과에서 멈추지 않고 원인 찾아

정 대표는 좋은 결과든 좋지 않은 결과든 그 앞에는 선택과 과정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결과만 적는 것이 아니라 그 일이 있기 전에 자신이 무엇을 생각했고 어떤 판단을 했는지를 함께 돌아본다.

어떤 일이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았다면 결과에서 멈추지 않고 한 단계씩 앞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왜 그렇게 판단했는지, 무엇을 보고 선택했는지, 그 과정에서 놓친 것은 없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다.

이렇게 기록하다 보면 당시에는 보이지 않았던 자신의 모습이 드러난다. 비슷한 상황에서 반복했던 판단이나 행동도 발견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과거의 자신을 책망하는 것이 아니라 다음번에는 조금 더 나은 선택을 하는 것이다. 이미 지나간 선택은 바꿀 수 없다. 그러나 그 선택을 제대로 들여다보면 다음 선택은 달라질 수 있다.

실패 경험도 삶의 자료로 활용

사람들은 대개 잘된 일을 오래 기억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정 대표는 오히려 잘되지 않았던 일을 기록하는 데도 의미가 있다고 본다. 좋은 결과가 나왔다면 무엇을 잘했는지 찾아 다시 활용하면 된다. 반대로 좋지 않은 결과가 나왔다면 원인을 찾아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하면 된다. 그렇게 보면 실패한 경험 역시 버려야 할 기억만은 아니다. 제대로 들여다보기 전까지는 후회일 수 있지만, 원인을 찾아낸 뒤에는 다음 삶을 위한 자료가 된다.

그래서 ‘지우고 싶은 페이지’일수록 다시 한번 펼쳐볼 이유가 생긴다. 없었던 일로 만드는 것보다 그 안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는지를 찾아보는 것이다.

야구에서 배운 ‘복기’와도 닮아

이러한 기록 방식은 정 대표가 젊은 시절부터 좋아했던 스포츠와도 닮아 있다. 운동선수는 경기가 끝났다고 승패만 기억하지 않는다. 잘된 장면과 실수한 장면을 다시 살펴보고, 무엇이 승패를 갈랐는지 찾아 다음 경기를 준비한다. 정 대표 역시 고교야구 선수들을 보면서 노력과 기본기의 중요성을 배웠다고 했다.

삶의 기록도 일종의 ‘인생 복기’였다. 잘된 결과만 바라보지 않고 과정으로 돌아가 보는 것, 잘못됐다면 어느 지점에서 방향이 달라졌는지를 찾아보는 것, 그리고 다음에는 같은 실수를 줄이는 것이다.

지워버리는 대신 하나를 배워 남겨

정 대표는 앞서 마음에 남아 있는 스트레스를 글이나 그림으로 표현하고, 충분히 꺼내놓은 뒤에는 종이를 태우는 소각 작업도 한다고 했다. 16회에서 살펴봤듯 기록은 마음속에 있는 것을 밖으로 꺼내놓는 과정이기도 했다. 그러나 지우고 싶은 기억을 무조건 없애는 것과 그 경험에서 하나라도 배운 뒤 내려놓는 것은 다르다. 정 대표가 자신의 선택을 기록하는 이유도 과거에 계속 머물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 경험에서 필요한 것을 얻고 다음으로 넘어가기 위해서다.

생애를 기록한다는 것은 잘 살아온 순간만 골라 적는 일이 아니다. 때로는 ‘왜 나는 그때 그렇게 했을까’라고 묻기 불편한 순간까지 돌아보는 일이다. 과거의 한 페이지를 다시 쓸 수는 없다. 그러나 그 페이지에서 무엇을 배웠느냐에 따라 다음 페이지는 달라질 수 있다.

정연숙 대표에게 생애기록치유는 그래서 과거를 지우는 작업이 아니다. 지우고 싶었던 페이지까지 삶의 자료로 삼아, 앞으로의 페이지를 조금 더 잘 써 내려가기 위한 작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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