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연숙 생애기록⑩] “혼자 남는 것이 두려워도, 침묵할 수는 없었다”

직장 내 불합리함 외면하지 못했던 여직원 대표모두 '바뀌어야 한다' 말했지만 동참하는 사람은 적어조직의 압박과 냉대 속 양심 따라 걸어외로운 싸움은 결국 인생의 가장 큰 공부

[편집자 주] 물치유 전도사로 알려진 (주)물들임 정연숙 대표의 생애를 따라가는 연재를 합니다. 단순한 성공담이 아니라, 한 어린이의 호기심이 어떻게 소명이 되었는지, 상처를 보던 시선이 어떻게 치유의 길로 발전했는지, 그리고 물을 통한 몸의 회복이 어떻게 마음의 회복과 연결되는지를 차근히 풀어봅니다. 독자에게도 잊고 있던 자신의 ‘마음의 씨앗’을 다시 떠올리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학창시절 기질 직장생활서도 이어져

정연숙 씨는 20대에 모 대기업 기획실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사회생활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그는 늘 주변을 유심히 살피는 사람이었다. 회사의 시스템은 어떻게 움직이는지, 사람들이 무엇을 불편해하는지, 어떤 문제가 반복되는지 자연스럽게 눈에 들어왔다. 어린 시절 재활용품을 모아 학급비를 마련하고, 하수구를 청소하며 문제를 외면하지 않았던 기질은 직장생활에서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었다.

당시 회사에는 여직원들이 적지 않았지만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창구는 많지 않았다. 겉으로는 모두가 같은 직원이었지만 실제로는 여러 가지 차별이 존재했다. 남성과 여성의 승진 기회가 달랐고, 임금 수준에도 차이가 있었다. 무엇보다 결혼을 하면 회사를 그만두어야 한다는 분위기가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던 시절이었다. 많은 여직원들이 불합리하다고 생각했지만 공개적으로 말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여직원 권익 제시할 창구 많지 않아

그러던 어느 날 여직원 대표를 선출하는 자리가 열렸다. 주변 사람들은 정연숙 씨를 추천했다.

"정연숙 씨가 해야 할 것 같아요."

"누군가는 이야기해야 하지 않겠어요?"

결국 그는 여직원 대표를 맡게 되었다. 처음에는 단순한 역할이라고 생각했다. 동료들의 의견을 모아 회사에 전달하는 정도로 여겼다. 그러나 막상 대표가 되어 이야기를 듣기 시작하자 생각보다 문제는 깊었다. 많은 사람들이 불만을 이야기했고,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그 의견들을 정리해 회사에 건의하기 시작했다.

사람은 종종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크기보다 큰 문제 앞에 서게 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문제의 크기가 아니라 그것을 대하는 태도다. 정연숙 씨는 늘 그랬듯이 문제를 외면하지 않았다. 누군가는 이야기해야 한다면 자신이 하겠다고 생각했다.

의견 모아 개선요구안 만들어

그는 여직원들의 의견을 모아 개선안을 만들었다. 승진 기회의 형평성, 임금 차별 문제, 결혼퇴직 관행에 대한 개선 요구 등이 담겨 있었다. 처음에는 많은 사람들이 박수를 보냈다.

"맞아요."

"꼭 이야기해 주세요."

"우리가 뒤에서 도울게요."

그 말을 들으며 그는 혼자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함께 바꿔나갈 수 있으리라 믿었다. 그러나 회사와의 논의가 시작되자 분위기는 달라졌다. 문제가 커질수록 사람들은 조심스러워졌다. 거리를 두기 시작했고, 침묵하기도 했다. 공개적인 자리에 서야 하는 순간이 오자 함께하겠다던 사람들은 하나둘 뒤로 물러났다.

함께하겠다던 사람들 하나둘 뒤로 물러나

결국 남은 사람은 정연숙 씨 한 명뿐이었다. 그는 그때 처음으로 조직 속에서 느끼는 외로움을 경험했다. 모두가 옳다고 말했던 일이었지만 정작 책임을 져야 하는 순간에는 혼자가 되어 있었다. 회의실에 들어갈 때도, 건의서를 제출할 때도, 회사 관계자들과 마주 앉을 때도 늘 혼자였다.

하지만 그는 물러서지 않았다. 어린 시절 무장공비를 잡겠다고 산으로 올라가던 여고생처럼, 배추파동 속에서 농민들을 돕기 위해 트럭 위에 올라가던 젊은 직장인처럼, 그는 자신이 옳다고 믿는 일을 끝까지 해보기로 했다.

회사의 반응은 예상보다 냉담했다.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은 조직에서 불편한 존재가 되기 쉽다. 얼마 후 그는 지방 발령을 통보받았다. 책상이 치워졌고, 사실상 회사를 떠나라는 압박이 시작되었다. 주변 사람들은 안타까워했지만 선뜻 나서지는 못했다.

결국 혼자만 남아...얼마 뒤 지방발령 통보

그 시절을 떠올리며 정연숙 씨는 "그때는 많이 외로웠다"고 말한다. 그 한마디에는 수많은 감정이 담겨 있다. 억울함도 있었고, 서운함도 있었고, 두려움도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른 뒤 그는 또 다른 사실을 깨닫게 된다. 외로움은 자신이 틀렸다는 증거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사람들은 종종 혼자가 되면 자신이 잘못된 길을 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때로는 반대다. 새로운 길을 걷는 사람은 처음에는 늘 소수일 수밖에 없다. 신념은 박수갈채 속에서 증명되는 것이 아니라, 홀로 서 있는 시간 속에서 단단해진다. 사람들의 눈치를 보기보다 자신의 양심을 따르는 법을 배웠고, 다수가 침묵할 때도 옳다고 믿는 일을 말하는 용기를 배웠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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