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연숙 생애기록④] 하수도 속으로 들어간 반장...더러움을 피하지 않은 마음

강경여고 반장 시절흐름을 열며 친구들을 움직이다

[편집자 주] 물치유 전도사로 알려진 (주)물들임 정연숙 대표의 생애를 따라가는 연재 기록을 시작합니다. 단순한 성공담이 아니라, 한 어린이의 호기심이 어떻게 소명이 되었는지, 상처를 보던 시선이 어떻게 치유의 길로 발전했는지, 그리고 물을 통한 몸의 회복이 어떻게 마음의 회복과 연결되는지를 차근히 풀어봅니다. 독자에게도 잊고 있던 자신의 ‘마음의 씨앗’을 다시 떠올리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더러운 하수구...누구도 관심 안 기울여

비가 그친 다음 날이었다. 충남 논산시 강경여고 교정은 여기저기 물이 고여 있었다. 운동장 가장자리와 골목 입구에는 흙탕물이 엉켜 있었다. 학생들은 신발이 더러워질까 피해 다녔다. 불쾌한 표정으로 발걸음을 재촉하기에 바빴다.

낙엽과 흙, 쓰레기가 뒤엉켜 하수구를 막고 있었다. 물은 빠져나가지 못한 채 고여 있었고, 주변은 점점 더 지저분해지고 있었다. 누구나 보고는 있었지만, 아무도 손을 대지 않았다. 더럽고 냄새 나는 일은 피하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때 학급 반장인 정연숙 양의 시선이 멈췄다. 그는 잠시 서서 그 장면을 바라보다가 조용히 움직였다. 주변에 있던 나뭇가지를 집어 들고 하수구 쪽으로 다가갔다. 망설임은 길지 않았다. 나뭇가지로 막힌 틈을 건드리기 시작했고, 흙과 물이 튀었지만 손길은 점점 깊어졌다.

"눈앞의 막힌 것 지나칠 수 없었다"

불쾌한 감촉이 전해졌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다. 반장이라는 이름이 그를 움직인 것이 아니라, 눈앞의 막힌 것을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그의 성향이 먼저 반응한 것이었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깨끗한 것을 향하고 더러운 것을 피하려 한다. 그러나 그는 그 반대 방향으로 움직였다. 불편함을 외면하지 않고 그 안으로 들어갔다. 그것은 단순한 청소가 아니라, 문제를 대하는 방식이었다. 치유란 결국 막힌 것을 풀어 흐르게 하는 일인데, 그는 이미 어린 시절부터 그것을 몸으로 실천하고 있었던 셈이다.

잠시 후, 막혀 있던 하수구가 조금씩 풀리기 시작했다. 고여 있던 물이 한순간에 ‘쏴아’ 하고 흘러내렸다. 그 순간, 눈에 보이는 변화와 함께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이 올라왔다. 답답함이 풀리는 느낌, 막혀 있던 것이 뚫리는 시원함이었다. 그는 나중에 그 장면을 떠올리며 “그게 그렇게 속이 시원했다”고 말했다. 물길이 열리는 순간은 단순한 환경의 변화가 아니라, 마음의 흐름까지 함께 열리는 경험이었다.

물길 열리자 마음의 흐름까지 열려

처음에는 친구들이 그를 놀라운 눈으로 바라봤다. “왜 저걸 하지?”라는 시선도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분위기는 달라졌다. 한 사람이 먼저 움직이면, 그 행동은 생각보다 빠르게 주변으로 번진다. 한 친구가 다가와 옆에서 흙을 밀어냈고, 또 다른 친구가 물길을 정리했다. 어느새 몇몇 친구들이 함께 하수구 주변을 정리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외면하던 일에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는 그 과정을 통해 중요한 사실을 배웠다. 말로 설득하기보다 먼저 움직이는 것이 사람을 더 크게 움직인다는 사실이었다. 반장은 앞에서 지시하는 사람이 아니라, 먼저 몸을 움직이는 사람이라는 것을 그는 몸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그날 이후로 아이들은 더 이상 하수구를 외면하지 않았다. 필요하면 함께 정리했고, 더러움 앞에서 뒤로 물러서지 않았다.

친구들 동참...솔선수범 효과

사람은 불편한 것을 피할수록 마음이 막히고, 마주할수록 흐름이 생긴다. 감정도 마찬가지다. 화, 상처, 두려움 같은 감정을 외면하면 쌓여서 막히지만, 그것을 인정하고 풀어내면 다시 흐르기 시작한다. 그는 어린 시절 하수구 앞에서 이미 그것을 배운 셈이었다. 더러움을 피하지 않고 손을 대는 순간, 흐름은 다시 열린다는 사실을.

그날의 작은 행동은 교실의 분위기를 바꾸었다. 친구들은 함께 움직이는 법을 배웠고, 불편함을 나누는 법을 배웠다. 무엇보다 ‘같이 하면 된다’는 감각이 생겼다. 혼자였다면 꺼려졌을 일이, 함께하니 자연스럽게 넘어갈 수 있는 일이 되었다. 그것은 단순한 청소의 성공이 아니라, 공동체의 성장이었다.

"문제를 외면하지 말고 흐름 만들어내야"

훗날 정연숙 대표는 막힌 걸 보면 그냥 못 지나가는 사람이었다. 그 말에는 삶의 방향이 담겨 있다. 문제를 외면하지 않고, 불편함을 감수하고, 결국 흐름을 만들어내는 사람. 그 태도는 이후 사람들의 건강과 삶을 돌보는 일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그날 강경여고 교정에서 시작된 작은 변화는 결국 큰 울림으로 남았다. 하수도는 깨끗해졌고, 교정은 다시 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친구들의 마음에도 새로운 흐름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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