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를 읽던 소녀는 꽃(花)을 찍기 시작했다

세인트폴 분당캠퍼스 고3 김희연 양‘좋아하는 것’을 전공으로 선택한 용기내년 미국 대학서 사진 전공 예정부모도 “좋아하는 분야 택하라” 흔쾌히 수락

사진 촬영 중인 김희연 양.
사진 촬영 중인 김희연 양.

경기도 성남시의 국제학교인 세인트폴 분당캠퍼스 고교과정 3학년에 재학 중인 김희연 양의 하루는 시에서 시작해 이미지로 이어진다. 문학을 사랑하는 학생답게 그녀는 시를 감상하고, 직접 써 내려가며 언어의 결을 오래 붙잡아 왔다.

김 양의 시에는 계절과 감정, 청춘의 속도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빠르지 않고, 요란하지 않으며, 조심스럽게 익어가는 마음의 기록들이다. 김 양이 쓴 시 〈마음 편지〉에는 이런 문장이 있다.

“네가 기뻐했던 모든 것들이

봄에 활짝 피어난 꽃 같아서.

희망 사랑 행복을

다 띄고 있는 봄 같아서.”

이 문장은 김희연 양의 감수성을 단번에 보여준다. 그녀에게 꽃은 단순한 사물이 아니라, 마음의 상태를 대신 말해주는 상징이다. 시를 읽고 쓰다 보면, 꽃이 등장하는 대목에서 유독 오래 머물렀다는 김 양의 말처럼, 꽃은 언어의 끝자락에서 이미지로 번져 나갔다.

시에서 이미지로, 자연스러운 확장

어느 순간 김 양은 ‘읽는 꽃’에서 ‘보는 꽃’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시 속에서 상상하던 장면을 실제의 빛과 색으로 만나보고 싶어 카메라를 들었다. 처음부터 사진 전공을 염두에 둔 것은 아니었다. 다만 시를 쓰듯, 꽃을 바라보고 기록하고 싶었다.

김희연 양의 꽃 사진은 화려한 연출보다 순간의 감정에 가깝다. 바람에 흔들리는 꽃잎, 햇살이 스며드는 각도, 배경에 남겨진 여백까지 함께 담는다. 마치 시에서 행과 행 사이의 공백이 의미를 만드는 것처럼, 사진에서도 여백은 중요한 언어다. 김 양의 시 〈새콤달콤〉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이 작은 푸르던 열매도

곧 달큰한 향기를 내뿜으며

조심스레 익어간다.”

이 문장은 김 양의 사진 태도를 그대로 닮아 있다. 성급하지 않게, 피사체가 스스로 익을 때까지 기다리는 시선. 꽃을 찍는 시간은 그녀에게 집중의 시간이자, 자신을 단련하는 시간이 된다.

여름, 꽃, 그리고 청춘의 기록

김희연 양의 시에는 여름이 자주 등장한다. 여름은 그녀에게 가장 생생한 계절이자, 감정이 가장 짙어지는 시간이다. 〈복숭아빛 여름〉에서는 청춘의 한 장면이 이렇게 표현된다.

“이 여름이, 우리의 청춘이

너무 푹 익어버리지 않았으면 해.

그냥 지금 이대로.”

이 문장은 곧 사진으로 이어진다. 김 양은 여름의 꽃과 빛을 ‘완성된 결과’가 아니라 ‘지나가는 순간’으로 담아낸다. 완벽함보다 솔직함을 택하는 시선이다. 사진은 잘 찍히는 순간보다, 마음이 움직이는 순간에 셔터가 눌린다. 또 다른 시 〈너의 여름을〉에서 김 양은 이렇게 쓴다.

“오늘을 기록할 거야.

이 여름을 입안 가득 물고

천천히 녹여가며

오래도록 기억할 거야.”

‘기록’이라는 단어는 김 양의 사진 작업을 가장 정확히 설명한다. 김희연 양에게 사진은 성과물이 아니라, 삶을 기억하는 방식이다.

진로 앞에서, 자신에게 솔직해진 선택

고3이 되며 김 양도 여느 학생처럼 진로 앞에서 고민했다. 심리학, 인문학 등 다양한 가능성을 생각했지만, 결국 가장 오래 곁에 있던 것은 시였고, 시를 통해 만나게 된 꽃이었으며, 그 꽃을 담아내는 사진이었다. 그렇게 대학 진학의 방향은 사진 전공으로 자연스럽게 정리됐다.

이 선택에는 무엇보다 부모의 지지가 있었다. 김희연 양의 부모는 딸에게 “좋아하는 분야를 전공하라”고 흔쾌히 말했다. 불확실한 길일지라도, 스스로 선택한 길을 걸어가 보라는 믿음이었다. 그 신뢰는 김 양에게 큰 용기가 됐다.

잔잔하지만 단단한 태도

김희연 양의 시 〈다정함〉에는 이런 문장이 있다.

“그 잔잔함이

곧 너의 다정함이었다는 걸.”

이 문장은 김 양의 진로 선택을 설명하는 은유처럼 읽힌다. 요란하지 않지만, 쉽게 흔들리지 않는 태도. 남들의 기준보다 자신의 마음을 먼저 살피는 선택. 그것이 김 양의 가장 큰 강점이다.

시에서 꽃으로, 꽃에서 사진으로 이어진 이 여학생의 여정은 하나의 메시지를 전한다. 진로란 남들보다 앞서 가는 길이 아니라, 자신이 오래 바라보아 온 방향으로 한 걸음 내딛는 일이라는 것. 김희연 양의 선택은 그래서 더욱 아름답다. 그녀는 이미 알고 있었다. 좋아하는 것을 오래 사랑하는 사람이 결국 가장 멀리 간다는 사실을.

몸을 대하는 태도까지, 그녀답게

최근 김희연 양은 입시 스트레스로 소화불량과 변비로 불편을 겪고 있다. 입시와 준비 과정이 겹치며 몸이 먼저 신호를 보냈다. 병원을 찾았고 약물 처방을 받을 수도 있었지만, 그녀는 조금 다른 길을 택했다. 증상을 빠르게 눌러버리는 대신, 몸이 왜 그런 말을 하고 있는지를 먼저 듣고 싶었다.

김 양은 서울의 한 자연치유 힐링센터를 찾아 음식치유와 장 운동체조, 장기 힐링 프로그램을 병행하며 스스로의 몸을 돌보고 있다. 위장과 장을 ‘고쳐야 할 대상’이 아니라, 다시 대화해야 할 존재로 바라보는 선택이었다. 시를 쓸 때 감정을 억지로 밀어붙이지 않고, 천천히 단어를 고르듯이, 그녀는 몸에도 같은 태도를 적용했다. 그녀의 시 〈다정함〉 속 문장은 이 선택을 떠올리게 한다.

“너의 마음은 보이지 않는다

그치만

느껴진다.”

김희연 양에게 몸도 그렇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느껴지는 신호들. 더부룩함과 막힘은 고장이 아니라, 잠시 멈춰 달라는 몸의 언어라고 그녀는 믿는다. 그래서 약으로 덮기보다, 음식의 온도와 리듬을 바꾸고, 장이 스스로 움직일 수 있도록 시간을 준다.

떠나기 전, 몸을 단단히 만드는 시간

김 양은 내년 상반기 미국 유학을 앞두고 있다. 새로운 환경, 새로운 언어, 새로운 삶이 기다리고 있다. 그래서 지금 이 시간은 그녀에게 ‘준비의 계절’이다. 포트폴리오와 마음만 챙기는 것이 아니라, 그 모든 것을 담아낼 몸까지 함께 준비하고 있다.

김 양은 말한다. 멀리 가기 위해서는 먼저 몸이 편안해야 한다고. 꽃을 오래 바라보기 위해서는 숨이 고르고, 손이 떨리지 않아야 한다고. 사진도, 시도, 결국은 몸을 통해 세상으로 나가는 일이기 때문이다.

시에서 꽃으로, 꽃에서 사진으로, 그리고 다시 몸으로. 김희연 양의 선택들은 하나의 선으로 이어져 있다. 좋아하는 것을 대하는 태도, 진로를 결정하는 방식, 자신의 몸을 돌보는 방법까지 모두 닮아 있다. 빠르지 않지만 성실하고, 화려하지 않지만 깊다.

김 양은 지금도 천천히 익어가고 있다. 시 속의 열매처럼, 꽃 사진 속의 빛처럼, 그리고 곧 떠날 유학길을 버텨낼, 단단한 몸처럼. 이 모든 과정을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지는 모습이야말로, 김희연 양이 얼마나 ‘자기 자신에게 정직한 학생’인지를 조용히 증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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