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서를 세우지 않으면 도서관도 사라진다"

(사)한국도서관발전연구원 정기훈 원장 취임 심포지엄"인공지능 시대, 정보 홍수 속 길잃은 독서문화도서관 위기의 본질은 공간이 아니라 사람국가가 책임지는 사서 전문직 설계 필요독서지도·책읽기·토론이 지식 시민 육성도서관의 미래가 국가 경쟁력 좌우한다"

(사)한국도서관발전연구원의 정기훈 원장(문헌정보학 박사)이 27일  2026년도 정기총회 및 심포지엄에서 한국 도서관의 발전 과제를 제시했다.
(사)한국도서관발전연구원의 정기훈 원장(문헌정보학 박사)이 27일 2026년도 정기총회 및 심포지엄에서 한국 도서관의 발전 과제를 제시했다.

지하철에 책장이 열린 날, 도서관의 미래가 보였다

아침 출근길,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던 사람들이 갑자기 고개를 들었다. 폴란드 바르샤바의 한 지하철역에서 벌어진 일이다. 개찰구 옆에 책장이 생겼고, 커피를 들고 서서 책을 읽는 풍경이 펼쳐졌다. 이른바 ‘익스프레스 도서관’이다.

사람들은 이동 중에도 책을 고르고, 사서의 추천을 받아 읽을거리를 바꿨다. 이곳에서 도서관은 더 이상 조용한 건물이 아니었다. 일상의 한복판으로 걸어 들어온 지식의 광장이었다. 이 장면은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묻는다. 인공지능 시대, 우리의 도서관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

“사서를 바꾸지 않으면 도서관도 발전 없다”

이 질문에 대한 한국적 답변이 27일 열린 심포지엄에서 제시됐다. (사)한국도서관발전연구원은 이날 경기도 화성동탄 중앙도서관 3층 다목적실에서 2026년도 정기총회 및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이날 정기훈 한국도서관발전연구원장(문헌정보학박사)은 우리의 도서관은 어떤 모습을 갖춰야 할지 한국 도서관의 발전 과제를 제시했다.

정 원장의 발표 주제는 「한국도서관발전방향 연구 – 사서와 한국도서관발전연구원 발전을 중심으로」다. 도서관의 미래는 건물이 아니라 사서라는 사람에게 달려 있다는 게 핵심이다.

정 원장은 도서관의 위기를 예산이나 이용률의 문제가 아니라, 전문성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하는 구조의 문제로 진단했다. 그 해법으로 “사서를 국가가 책임지는 전문직으로 재설계해야 한다”는 분명한 방향을 제시했다.

사서를 ‘도우미’ 아닌 ‘지식 설계자’로 세우자

정 원장의 제안 중 핵심은 사서의 역할을 근본적으로 강화하는 데 있다. 그는 사서를 단순히 책을 대출·반납하는 인력이 아니라, 지식과 시민을 연결하는 전문 설계자로 재정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그는 사서자격증 제도를 국가고시로 전환해 전문성을 공적으로 검증하고, 1급·2급·준사서 등급을 명확히 나누어 자격에 맞는 업무와 도서관 배치를 제도화하자고 제안했다. 이는 사서 개인에게는 분명한 경력 사다리를 제공하고, 도서관에는 서비스 품질의 기준을 세우는 장치다.

정 원장은 특히 사서의 역량 강화를 위해 ‘계속교육 제도’의 혁신을 강조했다. 인공지능, 디지털 리터러시, 독서 상담, 정보 큐레이션 역량은 한 번의 교육으로 끝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는 「도서관법」에 근거한 법적 교육 체계를 마련하고, 자격 등급별 의무 교육시간을 설정해 사서가 현장 변화에 지속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는 사서를 관리 대상이 아니라 국가가 투자해야 할 인적 자산으로 바라본 시각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사서교육원과 온라인 평생교육, 역할 키워야

역할을 요구했다면, 그에 맞는 지원도 필요하다. 정 원장은 사서교육원 또는 사서교육센터 신설, 온라인 평생교육원 구축을 제안했다. 이를 통해 독서지도, 이용자 상담, 장애인·노인 서비스, 독서토론 운영 등 사서의 확장된 역할을 체계적으로 훈련할 수 있는 인프라를 갖추자는 것이다.

이는 해외 도서관들이 이미 실행 중인 방향과도 맞닿아 있다. 핀란드와 북유럽 국가들에서는 사서가 디지털 시민교육, 미디어 문해력 교육, 지역 커뮤니티 조정자 역할까지 수행한다. 그 중심에는 국가 차원의 교육 지원이 있다.

정 원장이 강조한 독서지도와 맞춤형 독서 상담은 사서의 전문성이 가장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영역이다. 이는 정보의 바다에서 방향을 잃은 시민에게 건네는 지식의 나침반이다. 장애인과 노인을 위한 책 읽어주기 서비스는 정보 접근 격차를 메우는 지식의 사다리다. 독서토론회와 트레바리 같은 독서모임은 사서가 촉진자가 되어 만드는 ‘생각의 운동장’이다. 이 모든 기능은 자동화로 대체될 수 없다. 사서의 전문성과 판단, 공감 능력이 핵심이기 때문이다.

독서지도·책읽어주기·독서토론…사서의 전문성서 시작

정기훈 원장의 발표가 설득력을 갖는 이유는 도서관을 문화의 주변부가 아니라 국가 발전의 지적 인프라로 바라보기 때문이다. 도서관이 미래를 잃으면, 국가는 생각하는 시민을 잃게 된다. 정보는 많지만 판단은 빈약한 사회가 되는 것이다. 사서를 제대로 세우는 일은 도서관을 살리는 일이며 도서관을 살리는 일은 국가의 사고력을 지키는 일이다.

도서관은 더 많은 책을 쌓아두는 공간이 아니다. 사람을 키우는 공간이다. 그 중심에 사서가 있다. 정기훈 원장이 던진 제안은 사서 개인을 위한 요구가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를 위한 투자 제안이다. 정책 결정자에게는 용기 있는 제도 개편이 필요하고, 사서에게는 전문직으로서의 자부심과 책임이 요구된다. 그리고 시민과 학생들에게는 도서관을 다시 찾고, 다시 사용하는 작은 선택이 필요하다.

도서관의 미래는 이미 와 있다. 우리가 그 문을 열 것인지가 남아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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