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의 '황금알 거위 알(HBM)'을 부순 사건

서울대 경영대학 이경묵 교수 분석, 29일 유튜브로 공개"삼성전자의 쇠락은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가"패배의 근본 원인은 ‘제일주의’ 포기기술이 아니라 문화가 승부를 갈랐다하이닉스의 신뢰 문화, HBM 전쟁의 판을 바꿨다

※ 이 기사 서울대학교 경영대학 이경묵 교수의 유튜브 <신사임당> 채널 인터뷰를 바탕으로 구성했습니다. 더 깊이 있는 분석은 이 교수의 저서 『신뢰게임』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한때 산을 옮기듯 걸음을 옮기던 거인이 있다. 33년간 메모리 반도체 세계 1위. 삼성이 가는 길이 곧 시장의 방향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 거인의 발걸음이 휘청이고 있다.

더 이상 삼성전자는 기술의 선두주자가 아니다. 시장은 SK하이닉스에게 고부가가치 메모리(HBM)의 왕관을 넘겨주었다.

서울대학교 경영대학 이경묵 교수는 이를 ‘거인의 내부에서부터 시작된 느려짐’이라 진단한다. 외풍이 아닌, 체온이 식고 근육이 굳어버린 내부의 위기다.

하이닉스는 두려웠지만 개발진 신념 믿고 밀어붙였고 삼성전자는 계산기 두드리다 가능성까지 지워버렸다

HBM(High Bandwidth Memory)은 지금 반도체 업계의 황금알을 낳는 거위다. SK하이닉스는 이 HBM 시장에서 70% 이상을 장악하며 반도체 단일 품목으로만 9조 원의 영업이익을 냈다. 반면 삼성전자는 아직 엔비디아의 검증을 통과하지 못해 변방에 머물고 있다.

놀라운 건, 삼성도 HBM2까지는 개발을 선도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수익성이 낮다는 이유로 HBM3 개발을 포기했다. 개발팀의 인원은 50명. 삼성이라는 거대한 조직에 비하면 새끼손톱만 한 규모였다.

이경묵 교수는 이 순간을 '황금알 거위의 알을 스스로 부순 사건'이라 비유한다. 하이닉스는 두려워했지만, 개발진의 신념을 믿고 밀어붙였다. 반면 삼성은 계산기를 두드리다 가능성까지 지워버렸다.

제국의 몰락은 안에서 무너진다

삼성전자의 쇠락은 숫자보다 문화에서 시작되었다. 이 교수는 삼성전자의 조직을 “삼무원 조직”이라 칭한다. 공무원처럼 위험을 피하고, 상명하복을 따르며, 정해진 규칙 속에서 움직이는 시스템.

과거 ‘제일주의(반드시 1등)’로 상징되던 도전과 투지, 집요한 문제해결력은 사라졌다. 과거 삼성은 ‘월화수목금금금’으로 일했고, ‘안 되면 될 때까지’ 밀어붙였다. 하지만 지금은 "해봤자 위에서 안 된다는데…"라는 말이 먼저 나온다.

수직적 의사결정 구조는 하급자의 목소리를 차단한다. 위기의 신호가 전달되기 전에 필터링되어 사라진다. 이경묵 교수는 이를 ‘침묵의 제국’이라고 표현했다.

반면교사: 하이닉스가 일군 신뢰의 실험실

반면 SK하이닉스는 거꾸로 간다. 이 교수는 하이닉스의 조직 문화를 ‘신뢰 게임’이라 부른다. 최태원 회장과 임원은 매주 1:1로 ‘완언’을 주고받는다. 연구개발과 생산 부서는 서로 인력을 교류하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문화가 있다.

기술이관은 릴레이가 아닌 마라톤 완주 방식으로 바뀌었다. 신상필벌 대신 ‘협업’과 ‘책임공유’가 강조된다. 이는 곧 기업문화가 성과로 연결될 수 있다는 살아 있는 예시다. 하이닉스는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결정권자가 이를 존중하며, 함께 리스크를 감수했다. 그 결과가 9조 원짜리 시장 선점이다.

삼성의 위기는 한국경제의 그림자

이경묵 교수는 삼성이 무너진다면, 한국경제 전체가 흔들릴 수 있다고 경고한다. 삼성전자는 2015년 기준으로 국내 GDP의 약 2%, 법인세의 6%, 수출의 18%를 책임졌다. 삼성 같은 기업이 50개만 있으면 한국 전체 GDP가 완성될 정도다.

그런 삼성이 흔들릴 경우, 한국의 세금, 수출, 일자리까지 함께 흔들린다. 하이닉스가 잘하고 있는 것이 위안이 되지 않는 이유다.

거인을 다시 뛰게 하려면...

거인의 근육은 여전히 살아 있다. 하지만 두려움과 관성, 수직문화가 그 근육을 움츠리게 만든다. 이 교수는 말한다.

“이재용 회장이 ‘1등 아니면 안 된다’고 다시 외쳐야 한다.”

기술의 싸움이 아니라 문화의 싸움이다. 신뢰, 자율,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실험이 필요한 시점이다. 삼성은 세계 최고의 기술을 갖춘 회사다. 하지만 지금 필요한 건, 기술보다 다시 뛰려는 마음의 근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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