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분 만에 국회로 달려가 맨몸으로 시민들과 함께 민주주의 지켰다"총 없이 싸운 밤, 김정현 보좌관(더불어민주당 김교흥 의원실)의 투혼24일 김어준 '뉴스공장' 방송...5명 함께 출연, 당시 긴박상황 생생히 증언추운 겨울 외투도 없이 맨몸 저항...계엄군에 밀려 넘어지는 모습 카메라에 담겨"계엄군 눈빛에 혼란과 망설임 비쳐...명령에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 것 같았다"
지난 24일 방송된 유튜브 <김어준의 뉴스공장>은 지난해 12월 3일 계엄 선포 당일, 국회를 지켜낸 국회 당직자들의 투혼을 조명했다.
이날 방송에는 김정현 보좌관(더불어민주당 김교흥 의원실), 박기일 보좌관(더불어민주당 채현일 의원실), 조호제 공보국장(조국혁신당), 천정길 원내행정국장(조국혁신당), 허선경 전 비서관(김영호 교육위원장실) 등 다섯 명이 출연해 긴박했던 현장 상황을 생생히 증언했다.
가장 돋보이게 활약한 김정현 보좌관은 집(서울 용산)에서 자녀들을 재우다 뉴스 속보를 보고 10분 만에 국회로 달려갔다. 추운 겨울이지만 그는 외투도 없이 흰색 티셔츠 차림으로 국회 본청 정문을 지키며 계엄군과 40분 간 몸싸움을 벌였다.
쇳덩이 군화 소리가 아스팔트를 울릴 때 김 보좌관은 맨몸으로 그 흐름을 막아섰다. 마치 거센 파도 앞에 선 방파제처럼. 출입문을 사이에 두고 계엄군과 대치하더니 몸싸움을 벌이다 점점 밀려 고꾸라지는 장면이 방송사 카메라에 고스란히 담겼다.
"자녀들 재우다 뉴스 속보 보고 국회로 달려가"

"추운 겨울 외투도 없이 티셔츠 한 장 입고..."
“컨트롤타워도, 명령도 없었습니다. 몸이 먼저 움직였습니다.”
그는 “우리는 명령이 아니라 신념으로 국회를 지켰다”고 말했다. 특히 김 보좌관은 한양대학교 학군장교(ROTC) 출신으로, 계엄군의 완전무장 상태를 보고 그 위협을 실감했다.
"전투화, 방탄헬멧, 기관단총.... 그들이 모든 가능성에 대비하고 있다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었습니다."
당시 대전광역시 본가 자택에서 뉴스를 지켜본 부모는 아들의 모습을 보고 가슴을 졸였다. 아버지 김동준 씨는 긴장 속에 이를 악물다 어금니에 금이 갈 정도였다고 전했다.
텔레비젼 채널을 여러 방송으로 돌리는 데마다 생방송 화면에 흰색 티셔츠를 입은 덩치 큰 아들의 모습이 포착되었기 때문이다.
김정현 보좌관은 “겁이 났지만 물러설 수 없었다”고 당시 상황을 회고했다.
"국회를 지키는 것은 곧 민주주의를 지키는 일이었으니까요. 국회 당직자들의 소중한 직장이기도 했고요."
그날 국회에는 지휘관도, 작전명령도 없었다. 의원 보좌관들과 당직자들은 스스로 '작은 의병'이 되어, 거대한 폭풍 앞에서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를 지켰다.
헌법재판소는 탄핵 인용 결정문에 이렇게 기록했다.
"군경의 소극적 대응과 시민들의 저항이 계엄 실행을 막았다."
김 보좌관은 담담히 말했다.
"우리는, 그저 국회를 지켰을 뿐입니다."
'뉴스공장'에 방송이 나간 지 3일 뒤인 27일, 김정현 보좌관을 전화로 인터뷰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속보 지켜보던 부친, 너무 긴장해 어금니에 금 가"

"용산서 승용차 몰고 10분만에 국회 도착"
- 계엄 소식을 어떻게 접했습니까?
"12월 3일 밤, 집에서 제 아이 둘을 재우던 중 뉴스를 통해 계엄 소식을 접했습니다. 10분 만에 차를 몰고 국회로 달려갔죠. 국회는 마치 태풍의 눈처럼 겉은 소란스러운데, 안은 고요했습니다."
- 현장 상황은 어땠습니까?
"정문에는 이미 차벽이 설치되고 있었고, 군병력이 막 도착하는 중이었습니다. 누구의 지시도, 컨트롤타워도 없었습니다. 그저 '국회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 하나로 몸이 저절로 움직였습니다."
- 계엄군과 직접 대치했나요?
"저는 당시 흰색 티셔츠를 입은 상태였습니다. 그 차림새로 국회 본청 정문을 지켰습니다. 계엄군과 40분 이상 몸싸움을 벌였고, 계엄군이 밀고 들어오려 했지만 우리는 맨몸으로 막아냈습니다. 마치 얇은 종이가 콘크리트 벽이 되기를 바라는 심정이었습니다."
- 위협은 느끼지 않았습니까?
"저는 학군장교(ROTC)로 복무한 경력이 있습니다. 그래서 계엄군의 무장 상태가 얼마나 위험한지 단번에 알 수 있었습니다. 전투화, 방탄헬멧, 기관단총 등 그들은 모든 상황에 대비하고 있었죠.
솔직히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물러서면 모든 것이 끝난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시민들 다치지 않게 하려고 총구를 아래로"
- 계엄군 태도는 어떻던가요?
"완전무장을 한 계엄군은 매우 위협적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우리를 향해 무기를 겨누지도 않았고, 강제로 진압하려 하지도 않았습니다.
계엄군은 시민들을 넘어뜨리거나 다치게 하지 않으려 손바닥으로 등을 미는 정도의 행동에 그쳤습니다. 총구는 땅을 향했고, 눈빛에는 혼란과 망설임이 비쳤습니다. 명령을 받았지만, 마음은 움직이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 당시 대치상황을 더 세밀하게 기억해 보셔요.
"계엄군들은 손이나 총기를 위협적으로 뻗거나 강하게 밀지 않았습니다. 가급적 손을 가슴 높이 아래로 내린 채 어깨와 몸을 사용했습니다. 본청 입구를 막는 우리를 와해시킬 때도 넘어뜨리지 않고 한명씩 본인들 쪽으로 당겨서 그 뒤로 밀어냈습니다.
결론적으로, 몸으로 밀어내긴 했지만, 힘을 주지는 않았어요. 잡아끌거나 넘어뜨리려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최소한의 접촉으로 물러서게 하려는 듯했습니다."
- 서로 다치지 않게 하려고 애쓴 면이 있군요.
"계엄군은 눈을 맞추려 하지 않았습니다. 명령을 따르는 기계처럼 움직였지만, 그 손끝에는 '강한 충돌을 피하려는' 억제된 움직임이 분명히 느껴졌습니다. 계엄군과 시민들이 서로 밀치면서도, 동시에 서로 다치게 하지 않으려 애쓰고 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시민들, 계엄군 모두 서로 다치지 않게 하려고 애써"

"'총 쏘면 어쩌나' 가족들 가슴 쓸어내려"
- 가족들도 많이 걱정했겠군요.
"대전에 계신 부모님은 뉴스를 통해 제가 계엄군과 대치하는 모습을 지켜보셨습니다. 아버지는 긴장한 나머지 이를 악물다 어금니에 금이 갈 정도였다고 합니다. '혹시 총이라도 쏘면 어쩌나' 걱정하며 가슴을 쓸어내리셨다고요.
계엄군을 태운 헬기가 착륙한 지점은 제 딸과 아들이 다니는 국회어린이집 바로 앞이었습니다. 평소에 아이들이 웃고 장난치며 뛰어노는 장소입니다."
- 그날의 의미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우리는 누가 시켜서 움직인 게 아닙니다. 그저 스스로 국회를 지켜야 한다는 마음 하나로 모였습니다. 저는 우리 보좌관들과 국회 당직자들을 '작은 의병'이라고 생각합니다. 촛불 하나가 모여 거대한 불꽃이 되는 것처럼,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시민들과 합세해 국회를 지켜냈다고 봅니다."
- 끝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민주주의는 거창한 선언으로 지켜지는 것이 아닙니다. 작은 몸짓 하나하나가 모여 지켜내는 것입니다."
김정현 보좌관은 마지막으로 헌법재판소 탄핵 결정문의 문구를 조용히 인용했다.
"군경의 소극적 대응과 시민들의 저항이 계엄 실행을 막았다."
그는 덧붙였다.
"우리는 그저, 국회를 지켰을 뿐입니다."
[사진으로 보는 김정현 보좌관 활약상]
<1> 국회 본관 정문으로 밀려드는 계엄군

<2> 출입구를 사이에 두고 계엄군과 대치 중인 김정현 보좌관

<3> 계엄군에게 점점 밀리다 넘어지는 김정현 보좌관<아래 사진 세 장 연속으로. 오른쪽 흰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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