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정무 축구감독이 이천수와 고종수를 한방에 배정한 사연

[이해준 기자의 ‘내가 만난 스타’ 이천수(축구)]모범적이어도 왠지 정이 가지 않는 사람온갖 말썽부려도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는 사람이천수가 바로 그런 ‘매력적인 말썽꾸러기’

[편집자 주] 체육기자로 활약한 중앙일보 이해준 기자의 ‘내가 만난 스타’를 연재합니다. 이 기자는 간결하고 반듯한 문장과 현장감 넘치는 표현으로 독자들에게 ‘글맛’을 느끼게 합니다. 단순 나열식 문장이 아니라 마치 영화의 한 장면을 떠오르게 하는 방식으로 묘사를 합니다. 독자 여러분도 이 기자처럼 자신의 경험담을 글로 진솔하게 표현해 보내 주시면 실어 드리겠습니다.

[글쓴이 주] 편집국 스포츠부를 떠난 지 어언 4년이 흘렀다. 한동안 글쓰기도 싫고, 운동 경기를 쳐다 보기도 싫었다. 일로 글을 쓰고, 스포츠를 본 세월이 너무 길어서다. 지난해부터 다시 축구를 보기 시작했다. 글을 쓰고 싶은 마음도 다시 생겼다. 내가 스포츠를 취재하며 만난 사람들, 겪은 사건, 들었던 이야기, 느꼈던 점을 편한 마음으로 쓰려한다. 이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한동안 고민했다. 그냥 나를 위해서 쓰기로 했다. 그 시절을 추억하는 건, 자신을 돌아보는 즐거운 일이다.

축구선수 이천수__박지성에게 이런 마크가 생겼다면 별 뉴스가 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 이해준 기자 페북
축구선수 이천수__박지성에게 이런 마크가 생겼다면 별 뉴스가 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 이해준 기자 페북

모범적이어도 왠지 정이 가지 않는 스타일이 있다. 반대로 온갖 말썽을 쉬지 않고 일으켜도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게 되는 사람도 있다. 이천수가 바로 그런 ‘매력적인 말썽꾸러기’다.

#1 나는 이천수를 생각하면 ‘테스토스테른’이란 단어가 떠오른다.

#2 이천수가 울산에서 뛰던 시절 인터뷰를 했다.

천수: “거, 왜 있잖아요. 테… 뭐더라. 테스… 남성 호르몬 있잖아요.”

기자: “응, 그거, 그거… 테스토스테른?”

천수: “아 맞아요. 그거. 경기에 이긴 날은 그게 막 분출되는 거 같아요. 경기에 진 날은 괜찮은데, 경기에 이긴 날은 흥분돼서 잠이 안와요. 내가 골을 넣고 이기면 뭐 말할 필요도 없죠. 피곤하지도 않아요. 그런 날은 도저히 그냥 잘 수가 없어요.”

그 다음에 이어진 말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숙소 밖으로도 빠져나가고, 술도 마시고, 여자도 만나고, 뭐 그런 이야기가 좀 더 이어졌던 것 같다.

이천수는 선수 시절 사과도 참 많이 했다ⓒ 이해준 기자 페북
이천수는 선수 시절 사과도 참 많이 했다ⓒ 이해준 기자 페북

#3 이천수는 욕망에 충실하다. 우리는 욕망에 솔직한 그에게 관대하다. 사실 우리도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4 위대한 시인과 음악은 여자 때문에 탄생한다는 말이 있다.(이런 말 분명히 있죠) 축구도 마찬가지다. 다큐멘터리 ‘동물의 세계’를 보면 짐승들은 목숨을 건다. 순해 빠진 사슴들도 한 해도 거르지 않고 뿔을 부딪히며 죽기살기로 싸운다. 우리는 사랑을 위해, 시를 쓰고, 노래를 부르고, 공을 찬다. 생각해보면 얼마나 멋진 일인가.

#5 이천수는 부평고 3학년 때 팀을 전국대회 3관왕으로 이끌었다. 고교 동기 최태욱, 박용호와 더불어 부평고 3인방으로 불리던 고교생치고는 꽤 유명한 선수였다. 하루는 그가 일간스포츠 방담에 등장했다. 이천수가 교교대회 결승에서 골을 기록한 뒤 유니폼을 벗고 여자 친구 이름이 새겨진 언더셔츠를 보여줘 옐로카드를 받았다는 내용이다. 이천수는 떡잎부터 달랐다.

#6 2006년 독일 월드컵 토고전에서 그는 골을 넣고 유니폼 상의를 벗었다. 그의 언더셔츠에는 그가 사귀던 연예인의 이니셜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땀이 이니셜 모양으로 모이도록 테이프로 언더셔츠에 골을 팠다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이 이야기의 진실에 대해서는 모호한 점이 있지만, 이천수였기에 논란이 됐던 해프닝이다.

이천수의 스페인 레알 소시에다드 시절ⓒ 이해준 기자 페북
이천수의 스페인 레알 소시에다드 시절ⓒ 이해준 기자 페북

#7 복잡한 여자 관계 때문에 이천수가 망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어쩌면 여자가 아니었다면 이천수는 애초에 유명한 선수가 되지도 못했을 것이다.

“사람들이 저보고 (축구 실력을) 타고 났다고 하는데 절대로 그렇지 않아요. 제가 계단 오르내리기를 얼마나 많이 했는지 아세요.”

잘하고 싶다. 이기고 싶다. 성공하고 쟁취하고 싶다. 그는 누구보다 욕망이 컸고, 누구보다 열심히 계단을 오르내리며 허벅지를 키웠다.

#8 이천수는 못생겼다. 그런데 실제로 만나서 몇 마디 말을 섞어보면, 이 선수, 생각보다 훨씬 매력적이다. 우선 자신만만한 태도가 호감을 준다. 말도 조리 있게 잘한다. 게다가 여자들에게는 저돌적으로 들이댄다. 여자들이 못생겨도 자신감 있는 남자한테 끌리는 이유를 이천수를 보며 조금 알 것도 같다. 실제로 모 걸그룹의 아이돌이 새벽에 이천수를 찾아 축구단 숙소에 온 일이 있었다고 한다.

#9 이천수가 대표팀에 뽑혔을 때, 허정무 감독은 그를 고종수와 같은 방에 배정했다. 두 말썽꾸러기를 한 방에 묶어놓았다. 난형난제. 둘은 배짱이 잘 맞았다. 의외로 잘 지냈다고 한다.

#10 이천수는 팀의 막내였을 때부터 기자들을 몰고 다녔다. 축구선수는 대체로 무뚝뚝한 편이라 묻는 말에도 잘 대답을 안 하기 마련인데, 이천수는 기사 거리가 될만한 내용을 술술 토해냈다. 어떤 말을 해야 내일 신문에 크게 나오는지 잘 알고 있는 영리한 선수였다.

#11 월드컵을 몇 달 앞두고 “불교에서 개종했다. 하나님을 믿게 됐다”고 말했다. 그 자리에서 이천수는 자신의 결심이 결코 가볍지 않다고 누차 강조했다. 월드컵 엔트리에 들기 위한 경쟁이 몹시 치열하게 펼쳐지던 시기였다. 지금은 아마도 더 이상 기독교도가 아닌 것 같다. 하나도 놀랍지 않다. 이천수는 명분, 이데올로기, 종교, 신념 따위에 구속받는 사람이 아니다. 하지만 이천수가 2002년 월드컵을 앞두고 두 손 모아 “월드컵에 꼭 주전으로 뛸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모습을 상상하면 좀 귀엽다.

#12 그는 스페인리그에 진출한 뒤 왼쪽 팔에 문신을 했다. 30이라는 숫자도 표시했다. 자신이 다음 시즌에 넣을 골과 어시스트 수라고 이야기했다.

#13 이천수의 고교 시절 지도자인 임종헌 감독의 증언이다.

“천수 걔 되게 웃겨. 숙소에서 아침만 되면 아무렇지도 않게 감독 방에 들어와서 척척 신문을 본다니까.”

축구선수 이천수와 차두리의 애기 시절ⓒ 이해준 기자 페북
축구선수 이천수와 차두리의 애기 시절ⓒ 이해준 기자 페북

그는 어른들도 별로 무서워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무례했던 건 아니다. 그는 자기가 잘 보여야 하는 사람에게 스스럼없으면서도 귀엽게 놀 줄 알았다. 바로 그런 태도로 미디어를 상대해 기자에게도 인기가 있었다.

#14 스페인에서 이천수가 큰 활약을 하지 못한 건, 그가 하고 싶은 말을 다 하지 못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가 스페인에 진출하자 ‘아시아의 베컴이 왔다’고 현지 언론에 나온 적이 있다. 몇몇 안티팬들은 아시아의 베컴이 아니라 ‘혀컴’이라고 놀리기도 했다. (혀만 살아있다는 의미)

#15 이천수가 술을 마시고 행패부린 일이 뉴스에 터졌다. 그의 축구 실력이 눈에 띄게 줄어들 무렵 혹은 은퇴한 직후였다. 그땐 ‘이천수의 뒤가 참 좋지 않구나’라고 생각했다.

#16 지금 이천수는 축구 해설도 하고, 예능프로에도 간간이 나온다. 사람들은 왜 어떤 사람들에게는 특별하게 관대한 것일까. 말썽을 일으켜봤자 혀 한 번 끌끌차고 넘어갈 만한 잡스러운 일이었기 때문 아닐까. 한심한 일이긴 하지만 누구를 등쳐먹거나, 죄를 뒤집어 씌우거나, 사법이나 국정을 농단한 건 아니니까. 인생은 길고, 이천수에게는 여전히 좋은 찬스가 많이 남아있다.

#17 유쾌하고, 자신만만하고, 사람들과 소통을 잘하는 이천수. 테스토스테른 수치가 점점 떨어지는 중년이 되면 그가 어떤 축구인이 돼 있을까. 자신의 장점을 잘 살리길. 멋진 중년으로 늙어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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