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범구 주독일 대한민국 대사의 '대사관 이야기'(10)]'발키리 작전', 히틀러 암살 작전의 현장을 가다
[편집자 주] ‘글쓰기’ 신문은 주독일대한민국대사관 정범구 대사의 ‘대사관 이야기’를 연재합니다. 정 대사는 대사관 주변 이야기와 한독 관계 등을 사회관계망서비스 ‘페이스북’에 올리고 있습니다. 정확하고 간결하고 논리적인 문장으로, 외교관의 소소한 일상과 깊이 있는 사색, 강대국들과의 이해관계를 담고 있어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글쓰기’의 모범사례란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특히 다양한 현장 사진을 곁들여 국민들에게 외교관이 일하는 모습을 자연스럽게 전달하고 있습니다. 정범구 대사는 충북 음성 출신으로 16대, 18대 국회의원을 거쳐 지난해 1월 독일 대사로 부임했습니다.

* 한쪽 눈에 안대를 한 톰 크루즈가 나치 독일군 대령으로 나오는 영화가 있다. 이름하여 발키리 작전.
75년 전인 1944년 7월 20일 실제로 있었던 히틀러 암살작전이다. 실패로 끝났던 이 작전에는 민간인들도 참여하였지만 주력은 군 고급 장교들이었다. 톰 크루즈가 그 역할을 맡았던 폰 슈타우펜베르크 (Claus Schenk Graf von Stauffenberg) 대령을 비롯, 2명의 장군과 3명의 영관급 장교는 쿠데타가 실패로 돌아간 직후인 1944년 7월 21일 새벽 1시, 당시 독일 예비군사령부 안뜰에서 총살 당한다.
이후 약 200 여명의 가담자가 총살 당하는데 그중엔 육군 원수인 폰 비츠레벤 외 19명의 장군과 26명의 대령, 두 명의 대사와 장관 한 명이 포함돼 있다. 이후 5,000여명의 관련자가 체포되어 심문을 당하는, 히틀러 치하 최대의 저항운동이었다.

* 12년에 걸친 히틀러의 나치 지배(1933-45)는 유럽은 물론이고 독일에도 엄청난 재앙이었다. 주변국들에게 독일은 잔혹한 가해자였지만, 다른 한편 독일인들은 가해자이면서 또한 피해자이기도 하였다. 대다수 독일인들이 나치의 침략과 유태인 학살에 동조하였지만 일부 독일인들은 나치에 항거하며 목숨을 바치거나 오랜 강제수용소 생활을 감내해야 했다.
"백장미"로도 알려진 뮌헨의 숄 자매(Geschwister Scholl)는 자신들이 다니던 뮌헨대학에서 1943년 2월 18일 나치에 항거하는 유인물을 뿌리다 잡혀 나흘 후인 2월 22일 사형을 선고받고, 바로 당일에 사형이 집행된다. 그것도 길로틴에 의한 참수형을.
나치가 저지른 죄악을 독일인 전체의 죄악으로 쉽게 돌려 버리기 어려운 것은 이러한 독일인 내부의 저항이 있었기 때문이다.
* 오늘, 75년 전 5명의 장교가 즉결재판으로 총살됐던 바로 그 현장에서 연방정부 주최의 추모행사가 있었다. 그 현장은 독일 국방부 청사 (국방부 본 건물은 본에 있고, 베를린에는 별관이 있다) 바로 옆이다. 나치 군(die Wehrmacht)의 오명으로 부터 벗어나려는 독일 연방군(die Bundeswehr)은 자신들의 뿌리를 이들 저항군에서 찾고 있는지도 모른다.
* 메르켈 총리의 기념사 한 구절이 뇌리에 남는다.
"그들은 남들이 침묵할 때 행동했고, 남들이 외면할 때 책임지고 나섰다."(Sie hatten gehandelt, als andere schwiegen, sie übernahmen Verantwortung, als andere wegsah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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