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기다림'에 대하여한국의 택배기사 과로사했다는슬픈 소식 듣고 마음 짠해져우리는 왜 그토록 기다리는 걸힘들어할까요?멀리서 고인의 명복 빕니다

[편집자 주=김소연 대표(독일 NRW 경제개발공사 한국대표)]의 페이스북 글을 옮겨 싶습니다. 좋은 글을 실을 수 있도록 해 주신 김 대표에게 감사드립니다.]
독일 생활에서 가장 낯설었던 것은 ‘기다림’이었습니다. 기다림의 시작은, 자물쇠와 열쇠의 속도에 익숙해지는 일이었습니다. 집으로 들어가기 위해 열쇠를 자물쇠 구멍에 넣고 보안이 풀리기를 기다렸다고 체결 해제 사인이 오면 열쇠와 자물쇠가 찰칵 소리를 내며 사이좋게 맞물려 열리기까지 몇 초의 시간. 서울에서 디지털락에 길들여진 제겐 그 몇 초가 낯설고 긴 시간이었습니다.
다음으로, 일 때문에 가장 먼저 필요했던 인터넷을 주문했습니다. 1주일을 훌쩍 넘겨서야 설치가 되어 (그나마 초고속도 아닌) 느릿느릿 거북이 걸음으로 업무 환경을 꾸렸습니다. 그 일주일의 기다림은 또 얼마나 답답하게 느껴지던지요. 서울이면 늦어도 다음 날 완벽하게 총알설치됐을 텐데 말입니다.
세탁물을 맡겼더니 1주일 후 가지러 오라더군요. 1주일을 얌전히 기다렸다가 세탁소에 직접 가서 (집으로 배달이 아니고!) 세탁물을 가져왔습니다.
전기배선에 문제가 생겨 전기공을 예약했더니, 무려 2개월 뒤에 작업 스케쥴을 잡아 주더군요. (제 얼굴이 실제 뭉크의 절규 그대로 재현됐습니다.) 이유는 “휴가를 가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는 더 빨리 작업이 가능한 다른 전기공을 찾기보다는, 단골 전기공의 여름휴가를 기다려 전기배선을 고쳤습니다.

코로나가 시작된 올해 봄, 한국의 코로나 방역을 극찬하는 커버스토리에 한국 풍경이 실려서 프랑스 시사잡지 르뿌앵 Le Point을 주문했더랍니다. 추억으로 간직하고 싶어서요. 코로나로 촉발된 유럽의 배송대란 때문이었겠지만, 주문 후 무려 2개월이 지나서야 배송을 받았습니다.
NRW 경제개발공사 일로 출장을 자주 가는 아헨Aachen에는 그 지역에서만 자기 샵을 운영하는 구두장인이 있습니다. 가죽 구두가 마치 양말처럼 발에 착 감기는 착화감 때문에 즐겨 신는데, 당시 샵에 있는 구두 중에는 옆지기의 사이즈가 없더군요. 개별 주문은 가능한데, 좀 오래 걸릴 거라고, 기다려도 괜찮으냐고 묻더군요. 저는 흔쾌히 “얼마든지 기다릴 수 있으니 만들어만 달라”하고 하노버로 되돌아 왔습니다. 가을에 주문했던 구두는 다음 해 봄이 되어서야 마치 ‘서프라이즈’ 선물처럼 우리 집에 도착했습니다. 무려 6개월의 시간이 흐른 후였지요.
이제 조금은 독일식의 ‘기다림’에 익숙해진 것 같기도 하지만, 문득문득 한국식 총알배송이 그리워지는 것도 어쩔 수가 없습니다.
독일에서는 주문 후 배송까지 때로는 1주일도 넘게 걸린답니다. 그런데 아무도 불평불만하지 않는군요. 늑장 배송이 될 때마다 “한국이라면!”을 입버릇처럼 외치던 저도 이제는 그냥 뭐든 올 때까지 기다리게 되었고, 기다리는 일이 자연스러워졌습니다. 생각해 보면, 제가 주문한 어떤 물건도 촌각을 다투는 물건은 없었습니다.

독일의 소비자는 공급자와의 관계에서 ‘갑’이나 ‘을’이라는 이름표를 붙이지 않는 것 같습니다. 전기배선 서비스가 필요한 고객인 우리가 휴가를 가듯, 전기배선 서비스를 제공하는 그들이 휴가를 가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일 테니까요.
한국에서 택배 기사 분이 과로사했다는 슬픈 소식을 전해 듣고 마음이 짠해집니다. 우리는 왜 그토록 기다리는 것을 힘들어할까요? 멀리서 고인의 명복을 마음 깊이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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