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약용은 조선시대 후기의 문인이다. 역사· 지리 등에 밝고, 합리주의적 과학 정신을 가진 학자다. 정약용은 정조임금으로부터 총애를 받아 암행어사로 민심을 살피고 수원성을 설계한다. 그러나 정조의 승하 후 정치적으로 밀려 전라남도 강진으로 유배된다.
그는 귀양생활을 하던 마흔 한 살 때 중인인 아전의 자제를 가르친다. 당시 유배를 당한 사람은 스스로 생계를 유지해야 했다. 정약용은 글을 가르치면서 생활을 유지한 것이다. 이 때 배운 제자 중 한 명이 황 상이다. 열다섯 살인 황 상은 문학과 역사를 가르치는 스승에게 질문했다.

"저는 잘 이해하지 못하고, 머리가 좋지 못하고, 또 어리석습니다. 그래서 어려운 공부를 할 능력이 없습니다." 한마디로 "저같이 머리 나쁜 아이도 공부할 수 있나요"라고 물은 것이다.
이에 대해 정약용은 "처음엔 이해하지 못해도 나중에는 알게 되고, 머리가 뛰어나지 않아도 한번 알게 되면 쉬 소통되고, 어리석어도 꾸준히 하면 알게 된다. 노력하고 노력하고 또 노력하면 된다"고 했다.
황 상은 열심히 공부를 해 스승과 시를 주고 받을 정도로 글 솜씨가 뛰어나게 됐다. 황 상은 스승과의 일화를 자신의 문집인 '치원유고'에 기록했다.
정약용은 열심히 공부하는 제자를 보고 넉넉한 마음이 돼 "너를 제자로 얻은 것이 행운이고 기쁨"아라고 말하기도 했다. 스승의 권유대로 노력하고 노력하고 또 노력한 황 상은 글솜씨를 정약용의 형인 정약전으로부터도 인정을 받는다.
정약전은 "월출산 밑에서 이런 훌륭한 글을 쓰는 사람이 나올 줄 몰랐다"며 감탄한다. 황 상은 중인의 신분에도 불구하고 노력하고 노력하고 또 노력하여 당대의 두 학자로부터 실력을 인정받은 것이다.

이상주 작가는 25년의 신문기자 생활을 거친 역사작가다. 서울시립대에서 조선왕실사를 강의하고, 현재는 서울자유시민대학에서 역사와 스토리텔링을 강의하고 있다. 전주이씨대동종약원 문화위원으로 세계문화유산인 종묘 사직 환구 왕릉제향 전수자다. 지은 책으로는 세종대왕 자녀교육법, 세종의 공부, 조선명문가 독서교육법 등 10여 종의 베스트셀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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