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민용 ‘우리 말글 산책’] 주차위반으로 벌금 내지는 않는다

[편집자 주] ‘글쓰기’ 신문은 ‘엄민용 기자의 우리 말글 산책’을 주 1회 연재합니다. 경향신문의 엄민용 기자(부국장)는 정확한 우리 말글 사용을 연구하고 교육하는 전문가입니다. 대학과 기업체, 관공서 등에서 글쓰기 바로쓰기 특강 강사로 명성을 얻고 있습니다.

청포도가 익어가는 7월에는 제헌절(制憲節)이 있습니다. 예전에는 국경일이자 공휴일이 었는데, 요즘은 그렇지 않아 조금 섭섭한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제헌절은 말 그대로 우리나라 헌법이 제정된 날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대한민국 최초의 헌법은 그날 만들어지지 않았습니다.

1948년 5월 10일의 총선거로 구성된 후 5월 31일 첫 국회를 열어 이승만을 초대 의장으로 선출한 제헌국회는 가장 먼저 헌법을 만드는 작업에 들어갑니다. 광복 후의 혼란을 추스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법’이 필요했기 때문이지요.

사진=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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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 8월 15일까지 국내외에 독립을 선포해야 할 필요성에 쫓긴 국회는 헌법 제정을 서둘렀고, 일본의 헌법과 바이마르 헌법을 모방해 만든 우리나라 첫 헌법이 7월 12일 국회를 통과합니다. 이승만 의장이 밝힌 공포문에도 ‘단기 4281년 7월 12일에 헌법을 제정한다’는 문구가 들어 있습니다. 하지만 이 법이 서명·공포된 날은 그로부터 닷새 뒤인 7월 17일입니다.

7월 12일에 만들어진 헌법을 닷새 뒤에 공포한 것과 관련해 ‘조선이 건국된 날과 때를 맞추기 위해서’라는 주장이 있습니다. 실제로 <태조실록> 등을 보면 1392년 7월 16일 배극렴과 정도전 등이 고려 왕의 옥새를 받들어 이성계의 집에 몰려가고, 다음날 이성계가 수창궁에서 새 왕으로 등극하는 얘기가 나옵니다.

그러나 실록 등에 나오는 날짜는 음력입니다. 우리가 양력을 쓴 세월은 100년 조금 넘습니다. 사료 속의 1392년 7월 17일을 양력으로 따지면 그해 8월 5일입니다. 조선 건국일과 날짜를 맞추기 위해 7월 17일에 헌법을 공포한 것이 사실이라면, 참 부질없는 일을 한 셈이죠.

그건 그렇고요. 사람들이 일상생활에서 법과 관련해 아주 엉뚱하게 쓰는 말이 몇 가지 있습니다. “어제 주차위반으로 ‘벌금 딱지’를 떼었다” 따위로 쓰는 ‘벌금’도 그중 하나입니다.

벌금(罰金)은 “범죄에 대한 처벌로 부과하는 돈”으로, 일종의 재산형입니다. 이를 내지 못했을 때는 노역으로 대신하기도 합니다. 즉 형법이 규정하는 형의 일종인 것이죠.

그러나 “공법상의 의무 이행을 태만히 한 사람이나 질서를 위반한 자에게 국가나 공공단체가 부과하는 금전상의 벌”은 ‘과태료(過怠料) 부과’입니다. 전입신고를 늦게 하거나 주차위반을 했을 때 ‘돈’을 징수하는 곳은 법원이 아니라 지자체입니다. 이런 돈은 ‘벌금’이 아니라 ‘과태료’입니다. 즉 ‘과태료’는 형벌이 아니라 행정 처분으로 국가나 지자체 등이 부과하며, ‘벌금’은 형의 일종으로 법원이 그 정도를 정하게 됩니다.

사진=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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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운전을 하다가 중앙선을 침범하거나 과속을 하는 경우, 노상방뇨를 하거나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는 행위, 공공장소에서의 흡연 등도 절대 벌금을 내지는 않습니다. 이들 행위는 범칙금 부과 대상입니다.

범칙금은 ‘형사 처벌’의 대상이지만 금액을 완전히 납부할 경우 처벌을 받지 않게 되는 것으로, 전과자가 양산되는 일을 막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제헌절이 있는 7월이 되면, 우리 국민 모두 법과 질서를 잘 지켜 과태료·범칙금·벌금 따위를 내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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