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회 서산해미읍성축제, 내달 9~11일610년 전 태종과 세종 이야기부터QR 호패·1,000대 드론까지듣다 보니 궁금해진 ‘HAEMI UNIVERSE 1421’

스무 살의 충녕대군이 함께한 1416년 2월
25년 만이다. 종이신문사를 떠난 뒤 기자 자격으로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것은 이번이 사실상 처음이다. 선배 기자의 끈질긴 참석 요청으로, 오랜만에 앉은 간담회라 조금은 낯설기도 했지만, 16일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제23회 서산해미읍성축제 기자간담회는 시작부터 여느 축제 설명회와는 분위기가 달랐다.
보통 축제 기자간담회라면 날짜와 장소, 출연 가수, 주요 프로그램을 먼저 소개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날 가장 먼저 귀를 붙잡은 것은 뜻밖에도 610년 전의 한 장면이었다. 축제의 이야기가 2026년이 아니라 1416년에서 시작됐다.
“1416년 2월, 태종의 강무 행렬에 스무 살의 충녕대군이 함께했습니다.”
태종은 왜구를 막고 군사를 다지기 위해 충청도로 내려와 도비산과 해미현 일대에서 대규모 강무를 지휘했고, 그 곁에 스무 살의 충녕대군(세종)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5년 뒤인 1421년 해미읍성이 완성됐다. 순간 기자간담회장이 역사책의 첫 장처럼 느껴졌다.
역사책의 첫 장처럼 느껴진 기자간담회

태종의 강무 장면을 축제로 묘사
올해 축제 주제는 「HAEMI UNIVERSE 1421, 시간의 문이 열리다」다. 1421년은 해미읍성이 완공된 해다. 축제는 그보다 5년 전인 1416년 태종의 강무와 충녕대군의 동행이라는 역사적 장면에서 출발한다.
이정민 총감독은 해미읍성을 단순한 행정 관아가 아니라 나라를 지키기 위해 쌓은 호국의 공간으로 설명했다. 올해 축제에서는 태종과 세종이 만난 역사적 서사를 축제 전체의 이야기로 확장한다는 구상이다. 특히 지난해까지 진행되던 태종대왕 강무행렬을 올해는 퍼포먼스를 더한 핵심 콘텐츠로 전면 개편한다.
여기서 기자들의 표정이 조금씩 달라지는 듯했다. 단순히 옛날 옷을 입은 사람들이 성 안을 지나가는 행렬을 보여주겠다는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610년 전의 장면을 어떻게 오늘의 관람객에게 체험시키느냐. 이번 축제의 궁금증은 여기서부터 시작됐다.
해미읍성은 나라 지키기 위한 호국의 공간

QR코드 찍으면 조선의 호패로 변신
두 번째로 눈길을 끈 것은 스마트폰이었다. 성문에서 QR코드를 인식하면 관람객의 휴대전화가 1421년 조선의 ‘호패’로 변환된다. 관람객은 그 순간부터 단순한 구경꾼이 아니라 조선의 백성이 된다. 활을 쏘고 과거시험에도 응시한다. 무과와 문과 체험을 거쳐 급제하면 홍패를 받고, 장원급제자에게는 ‘일일 해미현감’이라는 역할도 주어진다.
역사를 배우는 방법도 참 많이 달라졌다. 예전에는 문화유적 앞에서 해설을 듣고 설명문을 읽었다면, 이번에는 스마트폰을 들고 직접 역사 속으로 들어가라는 것이다. 어린이들에게는 게임처럼 보일 수 있고, 부모에게는 역사 체험이 될 수 있다.
그렇다면 할아버지·할머니 세대에게는 어떨까. 600년 된 성벽을 직접 걸으며 자신이 조선시대 백성이 됐다고 상상해보는 것만으로도 색다른 경험이 될 듯하다.
충청도 23개 고을을 빛으로 불러내
이번 간담회에서 또 하나 흥미로웠던 것은 각자성석이었다. 해미읍성 성벽에는 600여 년 전 성을 쌓는 데 동원된 충청도 각 고을의 이름이 새겨진 돌이 남아 있다. 축제는 이 역사적 흔적을 올해 개막식의 핵심 장면으로 끌어온다. 프로그램 이름도 ‘각자성석: 스물세 고을, 빛으로 성을 쌓다’다.
충청권 23개 시·군의 화합과 상생을 상징하는 23개의 대형 등롱에 불을 밝힌다. 600년 전에는 돌에 이름을 새겼다면, 2026년에는 빛으로 그 이름과 역사를 다시 불러내는 셈이다. 돌이 빛으로 바뀌는 순간이다. 이 대목에서 해미읍성이 단순히 축제가 열리는 장소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성벽 자체가 하나의 콘텐츠였다.
화합과 상생을 상징...23개 대형 등롱


밤이 되면 1,000대 드론이 역사책 펼쳐
그리고 밤 이야기. 이번에는 숫자가 눈에 들어왔다. 1,000대. 1,000대 드론이 사흘 동안 모두 다섯 차례 밤하늘을 수놓는다. 황금 매의 비상으로 시작해 1421년, 해미읍성 형상, 충청병마절도사영, 태종의 기와 의장, 강무행렬, 방패, ‘해뜨는 서산’ 등 10개의 장면이 이어진다고 한다. 여기에 진남문에서 동헌까지 아홉 갈래 빛의 길이 이어진다.
바닥과 눈높이, 머리 위 등 3층 구조로 빛을 배치하고 환영의 길, 각자성석의 길, 연등의 길, 별빛정원 등을 만든다. 불꽃을 사용하지 않고 빛과 영상, 드론으로 성 안의 밤을 채운다는 구상이다. 낮에는 조선의 백성이 되고 밤에는 하늘에 펼쳐지는 역사를 바라보는 것이다. 해미읍성이라는 오래된 성벽이 밤이 되면 거대한 스크린으로 변하는 셈이다.
지역 식재료 현대적 재해석한 ‘해미성찬 팔폭’
여기서 또 하나의 반전이 기다리고 있다. 10월 10일에는 동헌과 내아에서 60인 한정 유료 프로그램인 ‘해미성찬 팔폭’이 열린다. 태종의 강무부터 ‘금익환천’까지 해미의 600년 역사를 여덟 장면으로 나눠 여덟 접시에 담는다.
김성운·김지영 오너셰프가 참여해 서산 간척지 햅쌀, 서산 육쪽 마늘, 서산 한우 등 지역 식재료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다. 역사를 눈으로 보고, 걸어서 체험하고, 이번에는 맛으로도 만나는 것이다.
성 밖으로 나오면 또 다른 세계가 펼쳐진다. 동문 주차장에는 ‘해미 디펜스 로드’가 조성된다. 천궁과 신궁 1/3 스케일 모형과 공군 전술차량, 드론 시뮬레이터 등을 통해 조선시대의 호국정신과 현재의 첨단기술을 연결한다. 10월 10일 낮 1시에는 공군 특수비행팀 블랙이글스 에어쇼도 예정돼 있다.
공군 특수비행팀 블랙이글스 에어쇼도

프로그램 풍성...하루 관람으론 한계
9일에는 개막식 ‘각자성석’과 1,000대 군집 드론쇼에 이어 장윤정의 개막 축하공연이 열린다. 10일에는 현대차그룹 필하모닉(HPO)과 서산소년소녀합창단의 협연, 계명대 태권도 시범단의 ‘Tiger of Haemi’, 딘딘의 축하공연이 이어진다. 마지막 날인 11일에는 청허정 언덕을 배경으로 한 실경 뮤지컬 「달이 되어라」가 폐막 주제공연으로 펼쳐지고 파이널 드론 라이팅쇼로 막을 내린다.
간담회가 끝날 즈음에는 오히려 “이거 하루에 다 볼 수 있는 건가?” 이런 생각이 들었다. 축제의 프로그램을 하나씩 듣다 보니 처음 기자간담회장에 들어올 때 가졌던 생각과는 조금 달라져 있었다. 단순히 ‘올해 해미읍성축제에서는 무엇을 한다’는 설명을 듣는 자리가 아니었다. 600년 전의 성벽에 오늘의 기술과 체험을 덧입혀, 사람들이 직접 그 안으로 들어가게 하겠다는 이야기를 듣는 자리였다.
자녀나 부모님, 친구와 가도 좋은 축제
25년 만에 다시 기자 자격으로 참석한 기자간담회. 오랜만이라 낯설었던 자리가 끝날 때쯤에는 묘하게 기대가 생겼다. 정말 QR 호패를 찍고 성 안으로 들어가면 1421년 조선의 백성이 된 듯한 느낌이 들까. 밤이 되면 1,000대 드론이 그리는 해미의 역사는 어떤 모습일까. 그리고 600년 전 사람들이 쌓은 성벽을 오늘의 사람들이 다시 빛으로 쌓는다는 것은 어떤 장면일까.
아직 직접 보지는 못했다. 그래서 오히려 궁금하다. 자녀와 함께 가도 좋고, 부모님과 가도 좋고, 친구와 가도 좋을 것 같은 프로그램들이 한 성 안에 한꺼번에 들어 있다.
이번 가을 다른 곳으로 떠날 계획을 세우고 있다면, 해미읍성의 ‘시간의 문’을 먼저 열어보는 것은 어떨까. 600년 된 성벽이 이번에는 과거를 보여주는 벽이 아니라, 과거로 들어가는 문이 될지도 모르겠다.
다른 곳 여행 계획 있다면 해미읍성으로 바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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