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범구 주독일 대한민국 대사의 ‘대사관 이야기’(7)]우리 대사관과 훔볼트 대 공동으로 홈볼트대서'베를린 장벽 붕괴 30주년 기념 심포지움'독한친선협회 주최, 이미륵 상 수상식도 열려
[편집자 주] ‘글쓰기’ 신문은 주독일대한민국대사관 정범구 대사의 ‘대사관 이야기’를 연재합니다. 정 대사는 대사관 주변 이야기와 한독 관계 등을 사회관계망서비스 ‘페이스북’에 올리고 있습니다. 정확하고 간결하고 논리적인 문장으로, 외교관의 소소한 일상과 깊이 있는 사색, 강대국들과의 이해관계를 담고 있어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글쓰기’의 모범사례란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특히 다양한 현장 사진을 곁들여 국민들에게 외교관이 일하는 모습을 자연스럽게 전달하고 있습니다. 정범구 대사는 충북 음성 출신으로 16대, 18대 국회의원을 거쳐 지난해 1월 독일 대사로 부임했습니다.

* "철학자들은 세상을 이러쿵 저러쿵 해석해 왔다. 그러나 정말 중요한 건 (세상을) 변혁하는 것이다."
* 칼 맑스의 유명한 테제다. 아마 클린턴 식으로 말한다면, "바보야, 문제는 변혁이야!" 쯤 될까? 어쨌든 이제는 고전이 된 맑스의 이 문구가 훔볼트 대학 본관 현관에 딱 새겨져 있다. 새삼 이곳이 오랫동안 동베를린(동독)의 대표적 대학이었다는 것을 느끼게 한다.
* 독일의 수도인 베를린에는 모두 3개의 종합 대학이 있다. 2차대전 이후 설립된 자유베를린 대학 (FU)과 베를린 공대 (TU)가 더 있다. 그중 200년 이상의 역사를 갖는 훔볼트대(1809년 창립)는 2차대전 이후 소련군 점령지역으로 들어가 동독의 대학이 되었다. 1949년까지는 설립자였던 프로이센 황제 이름을 따서 프리드리히 빌헬름 대학으로 불렸는데 이후 지금의 이름으로 바뀌었다. 실제로 이 대학 설립과 운영에는 저명한 학자였던 빌헤름 폰 훔볼트와 알렉산더 폰 훔볼트 형제의 공이 컸다.

* 지난 1주일 사이 두 번이나 훔볼트 대학에 들어왔다. 지난 수요일에는 우리 대사관과 훔볼트 대가 공동으로 베를린 장벽 붕괴 30주년 기념 심포지움을 가졌다. 주제가 매우 도발적이었다.
"장벽은 정말 사라졌는가?(Ist die Mauer wirklich weg?)"
눈에 보이는 장벽은 무너졌지만 통일 후 30년이 지나서도 동서독 주민간에 존재하는 "마음 속" 장벽은 여전하다는 것이 문제의식의 출발이었다. 한-독 양국 전문가들의 토론이 의외로 재미있었다.

* 어제는 독한친선협회(Die Deutsch-koreanische Gesellschaft)가 주최하는 행사가 같은 장소에서 있었다. 우리 식으로 하면 대학 총장실 바로 옆에 있는 대회의실(Senatssaal)인데 두 주 연속 한국 관련 행사에 귀중한 장소를 빌려 준 훔볼트 대학 측 성의가 고맙다.
어제 행사는 "이미륵 상 시상식"이었다. 한-독 양국간 우호 증진에 기여한 인사들에게 독한협회가 주는 상인데 올해 수상자는 헬가 피히트 교수(Frau Prof. Dr. Helga Picht)이다. 그녀는 동독의 1세대 한국학자로 1980년대 중반 당시 김일성 주석이 동독을 방문했을 때 호네커 당 서기장과의 회담 통역을 맡아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녀가 키운 한국학 후예들이 지금 독일과 오스트리아 각 분야에서 한국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다. 오스트리아 비엔나 대학에서 한국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는 프랑크 교수(Prof Dr. R. Frank)도 그중 하나다. 어제 축하 연설에서 그는 한국학 연구로 자신의 인생에 새 길을 열어준 피히테 교수에게 깊은 감사를 표했다. 피히테 교수는 훔볼트 대에서 공부했고, 가르쳤고, 은퇴했다.
* 훔볼트 대는 베를린 중심가에 있어 그 앞은 늘 사람들로 넘쳐난다. 브란덴부르크 문으로 부터도 불과 700~800미터 정도 떨어져 있어 30년전 장벽 붕괴의 현장을 묵묵히 지켜봤을 것이다. 독일 지성의 심장일 뿐 아니라 독일 현대사의 증인인 훔볼트 대학과의 교류도 확대해 나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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