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준 기자가 만난 스타] '실패한' 축구선수 아들 손흥민! 선수 성장 과정이 정말 독특

그가 물었다.“손흥민 앞으로 어떨 것 같아요?”난 답했다.“음. 에. 또. 그게. 저. 글쎄. 그러니까…”

편집국 스포츠부를 떠난 지 어언 4년이 흘렀다. 한동안 글쓰기도 싫고, 운동 경기를 쳐다 보기도 싫었다. 일로 글을 쓰고, 스포츠를 본 세월이 너무 길어서다. 지난해부터 다시 축구를 보기 시작했다. 글을 쓰고 싶은 마음도 다시 생겼다. 내가 스포츠를 취재하며 만난 사람들, 겪은 사건, 들었던 이야기, 느꼈던 점을 편한 마음으로 쓰려한다. 이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한동안 고민했다. 그냥 나를 위해서 쓰기로 했다. 그 시절을 추억하는 건, 자신을 돌아보는 즐거운 일이다. [글쓴이 주]

사진=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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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2012년 무렵이었던 것 같다. 손흥민이 막 스타로 발돋움하려던 참이었다. 아디다스 홍보 에이전시 관계자와 식사 자리였다. 손흥민 스폰을 결정한 직후 혹은 스폰을 고민하던 시기였던 것 같다.

그가 물었다.

“손흥민 앞으로 어떨 것 같아요?”

난 답했다.

“음. 에. 또. 그게. 저. 글쎄. 그러니까…”

어린 유망주가 등장했을 때 그의 미래를 예측하는 건 매우 어렵다.

그래도 그렇게만 말할 수는 없어서 아주 일반적인 이야기를 의문문으로 조심스레 덧붙였던 것 같다. “어릴 때 반짝해도, 잔뜩 겉멋 들으면 금세 엎어져요. 근데 손흥민이 그런 스타일은 아니잖아요?”

지금 막 손흥민 나이를 검색해봤다. 1992년생. 26세다.

축구 선수의 전성기는 (포지션 별로 다소 다르지만) 대체로 20대 후반부터 30대 중반까지로 본다. 뼈도 여물고, 경험도 쌓였고, 아직 체력은 떨어지지 않은 시기다.

손흥민의 전성기가 막 열리고 있다. 축구 성장판이 닫히지 않은 나이다. 그의 노력에 따라 더 성장할 수도 있고, 반대로 지지부진하거나 엎어질 수도 있다는 의미다.

손흥민__이해준 기자 페북 캡쳐
손흥민__이해준 기자 페북 캡쳐

지금 누군가 나에게 “손흥민 앞으로 어떨 것 같아요?”라고 물어본다면 난 어떻게 답할까.

“음. 에. 또. 그게. 저. 글쎄. 그러니까…”

솔직히 정말 모르겠다. 축구 현장 취재를 떠난 지 벌써 4년이 훌쩍 넘었다. 좀 더 솔직히 말하자면 “그는 분명 더 성장할 거예요”라고 자신있게 이야기하지는 못하겠다. 왠지 뭔가 불안하다.

병역과 관련된 이야기가 아니다. 과연 그에게 더 성장하고 싶은 동기 부여가 있는지 가장 궁금하다. 과연 손흥민은 스스로 더 앞으로 나가고 싶을까. 더 큰 선수가 되고자 하는 목표가 있을까. 그는 앞으로도 자신을 더 채찍질할 수 있을까.

손흥민은 선수로 성장한 과정이 매우 독특하다. 전형적인 영웅담 서사 구조도 띠고 있다.

사진=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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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아버지 손웅정씨는 실패한 축구 선수였다. 상무 축구단을 거쳐 프로에 입단했지만 아킬레스건 부상으로 28세에 은퇴했다. 사실 상무에 축구선수로 갔다는 건 축구 선수로 대단한 기량을 인정받았다는 의미다. 뛰어난 자질이 있었지만 불운하게 부상의 덫에 걸린 비운의 사내. 영웅의 아버지로 딱 좋은 캐릭터다.

그는 아들을 낳았고, 그 아들에게 직접 축구를 가르쳤다. 그는 학교 축구부에 맡기는 대신 춘천에서 자신의 이름을 딴 축구 아카데미를 운영하며 아들을 지도했다. 기초를 등한시하고, 눈앞의 승리에 급급한 학원 축구의 폐해를 잘 알기 때문이다.(손흥민의 아버님 손웅정씨는 "나는 측면공격수로 뛰는 프로선수 였지만 선수 한명 제낄 발기술이나 개인기가 없었다. 굉장히 부끄럽고 후회가 된다. 그렇기에 흥민이에게 기본적으로 공을 다룰 수 있을때까지 기본기만 가르쳤다"고 말씀하셨다.-나무 위키 발췌)

아버지의 헌신적인 홈스쿨링 덕분에 손흥민은 기본기가 탄탄하고 골문 앞에서도 조바심내지 않는 기술을 익혔다. 정확한 기억인지 모르겠지만 문전으로 쇄도하며 자연스럽게 슈팅을 때리는 훈련을 하루에 500개씩 했다는 이야기도 들었던 것 같다. 실패한 아버지는 그렇게 아들을 키웠고, 아들은 아버지를 능가하는 선수로 성장했다. 꼭 북유럽 신화 같은 이야기다.

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손흥민은 차범근과 자주 비교된다. 누가 더 훌륭한 선수인가에 대한 논쟁도 있다. 차범근은 이미 손흥민의 광팬이다.(차범근에게는 두 명의 아들이 있지만, 손흥민을 자신의 ‘축구 아들’로 생각하는 것 같은 느낌도 든다. 약 4~5년 전 차 감독에게 손흥민에 대한 평을 부탁했을 때 차 감독은 “흥민이가 문전에서 쇄도하는 걸 보면, 꼭 젊은 시절 나를 보는 것 같아. 정말이야”라며 두 눈을 진지하게 깜빡였다. ‘정말 그렇지 않아?’라고 동의를 구하는 눈빛이었다.) 차범근은 아들 차두리에 대해서는 “꼭 나를 보는 것 같다”는 말을 좀처럼 하지 않았다.(적어도 난 못들어봤다.)

과연 손흥민은 차범근보다 더 훌륭한 업적을 남길 수 있을까.

차 감독의 나이와 분데스리가 진출 시기를 검색해봤다. 1953년생 차 감독은 1978년 12월 독일에 진출했고, 1979년부터 뛰었다. 26세. 지금의 손흥민 나이 때 차 감독은 막 독일에서 커리어를 시작했다.

외국 진출이라는 걸 도저히 꿈꾸지 못했던 그 시절, 차 감독은 높은 비전을 세웠고 그 꿈을 이뤘다. 손흥민은 차범근, 박지성 등 선배들이 만든 길을 따라 그들이 도달한 곳까지 훨씬 더 편하게 도착했다.

손흥민은 아시안게임을 뛰고 있다. 금메달을 따면 병역 면제다. 너무 지나친 기대일 지 모르겠지만, 그가 병역 해결보다 더 큰 비전을 품길 바란다. 그의 비전이 병역 면제라면 그는 절대로 차범근을 넘어설 수 없다.

글을 마치려고 보니, 내가 너무 ‘꼰대’처럼 글을 쓴 것 같다. 기자질, 훈장질, 꼰대질. 과연 내가 손흥민에 대해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있을까. ‘친절한 금자씨’가 이렇게 이야기할 것 같다.

“너나 잘 하세요.”

솔직히 말하자면, 난 축구 대표선수들이 병역 면제를 위해서 이를 악물고 뛰는 걸 보면 왠지 비위가 뒤틀린다. 남 잘 되는 걸 잘 못 보는 이 놀부 심보는 과연 고쳐질 수 있을까.(김정남 감독처럼 내일은 교회 가서 회개 기도해야지.)

손흥민이 한 2년쯤 상무로 와서 뛰어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손흥민 뛰는 걸 좀 편하게 보고 싶다.) 나중에 손흥민이 은퇴 후 감독이나 축구 행정가가 됐을 때, 상무에서 보낸 2년이 전화위복의 값진 시간이 될 지 또 어찌 알겠는가. 진정한 영웅은 이런 난관을 거쳐 탄생하는 것 아닐까. (박주영은 우여곡절 끝에 군대 안 갔지만 논란 속에서 잃은 게 훨씬 더 많았던 것 같다.)[이해준 / 중앙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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