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칠한 기자 선배들도 좀처럼 미워하지 않았던 ‘이회택’

[이해준 기자의 ‘내가 만난 스타’ 이회택(축구)]돌려 말할 줄 몰랐고, 기자들은 그의 말실수에 관대동네 형 혹은 동네 아저씨 같이 느껴지던 분요즘 뉴스에서 이 감독 소식 본 적이 없어 궁금

[편집자 주] 체육기자로 활약한 중앙일보 이해준 기자의 ‘내가 만난 스타’를 연재합니다. 이 기자는 간결하고 반듯한 문장과 현장감 넘치는 표현으로 독자들에게 ‘글맛’을 느끼게 합니다. 단순 나열식 문장이 아니라 마치 영화의 한 장면을 떠오르게 하는 방식으로 묘사를 합니다. 독자 여러분도 이 기자처럼 자신의 경험담을 글로 진솔하게 표현해 보내 주시면 실어 드리겠습니다.

[글쓴이 주] 편집국 스포츠부를 떠난 지 어언 4년이 흘렀다. 한동안 글쓰기도 싫고, 운동 경기를 쳐다 보기도 싫었다. 일로 글을 쓰고, 스포츠를 본 세월이 너무 길어서다. 지난해부터 다시 축구를 보기 시작했다. 글을 쓰고 싶은 마음도 다시 생겼다. 내가 스포츠를 취재하며 만난 사람들, 겪은 사건, 들었던 이야기, 느꼈던 점을 편한 마음으로 쓰려한다. 이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한동안 고민했다. 그냥 나를 위해서 쓰기로 했다. 그 시절을 추억하는 건, 자신을 돌아보는 즐거운 일이다.

축구인 이회택 선생.(사진=이해준 기자)
축구인 이회택 선생의 선수 시절.(사진=이해준 기자 페북)

# 카페에 앉아 있다. 도로가 내다보이는 창가 자리다. 가로수가 잡힐 듯 가깝다. 이런 각도에서 가로수를 보니 이색적이다. 봄비와 바람에 가로수 꼭대기 쪽 나뭇잎이 파르르 떤다.

# 이회택은 ‘아시아의 표범’, ‘그라운드의 풍운아’ 등으로 불렸다. 나에겐 이탈리아 월드컵 감독으로 3전 전패를 한 감독이라는 인상이 제일 강했다. 실제로 그가 표범처럼 그라운드를 누비는 모습은 한 번도 보지 못해서다. 내가 축구 기자를 했을 때 1990년대 후반, 그는 프로축구단 감독이었다. 이탈리아에서 크게 실패했지만 그 후에도 오랫동안 그는 축구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를테면 프로축구단 감독이나 축구협회 임원 같은 일이다.

# 그가 그럴 수 있는 이유는 축구 기자를 하면서 금세 알게 됐다. 그는 인간적인 매력이 있는 사람이다. 남자답고, 쩨쩨하지 않다. 호방하다와 껄렁껄렁하다의 중간 어딘가에 그가 자리잡고 있다. 풍운아라는 말은 그래서 생긴 말이다. 까칠한 기자 선배들도 좀처럼 그를 미워하지 않았다. 그는 돌려 말할 줄 몰랐고, 기자들은 그의 말실수에 대해서는 관대한 편이었다. 그래서 그는 내가 아는 축구인 가운데 가장 동네 형 혹은 동네 아저씨 같은 사람이다.

축구인 이회택 선생.(사진=이해준 기자)
축구인 이회택 선생.(사진=이해준 기자 페북)

# 언젠가 그에게 ‘자서전을 하나 남기시라’고 권했다. 그는 “난 젊을 때 못된 짓을 하도 많이 해서 자서전을 남길 수는 없다”고 했다. 한 두 번 더 권했지만 그는 손사래 치며 선을 딱 그었다.

“글쎄, 안된다니까.”

# 내가 축구 기자를 할 때, 흔히 쓰는 표현 중에 이런 게 있었다. ‘이회택-차범근-최순호로 이어지는 한국 스트라이커의 계보를 잇는 유망주가 등장했다.' 황선홍, 이동국, 안정환, 박주영…. 볼깨나 찬다는 스트라이커에겐 어김없이 따라붙던 클리셰다. 요즘엔 이런 표현은 잘 쓰지 않는 것 같다. 이회택은 점점 과거의 인물이 되어간다. 그게 섭섭해서 이렇게 이회택에 대해서 쓴다.

# 2016년 이회택 감독이 축구협회 기관지와 인터뷰했다. “젊어서 너무 방탕했다. 그때로 돌아간다면 열심히 하고 싶다”는 내용이다. 앞뒤를 재지 않고 저돌적으로 적진을 향해 뛰어드는 그는, 불나방 같은 선수가 아니었을까. 그가 성실해진다면, 그의 플레이도 조금은 소심해지지 않을까.

# 요즘 뉴스에서 통 이회택 감독 소식을 본 적이 없다. 뭘 하고 계시나 갑자기 궁금해진다. 이회택은 가로수 밑동처럼 강안한 사람처럼 보였다. 그러나 어쩌면 그는 가로수 꼭대기 나뭇잎처럼 봄비와 바람에도 파르르 떠는 사람은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왠지. 미친 봄날처럼 파란만장했던 그의 축구 인생, 이제 노을마저 사위어간다. 봄비에 벚꽃은 간 데 없고, 봄날이 이렇게 간다.

축구인 이회택 선생의 선수 시절.(사진=이해준 기자 페북)
축구인 이회택 선생의 선수 시절.(사진=이해준 기자 페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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