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청주 ‘다큐공작소’] 마지막 뜬공에 담긴 44년…세광고 야구를 기록하다

청룡기 첫 우승과 1982년 황금사자기 하나의 서사로 엮어 한 편의 드라마로 엮다 송진우·장종훈·방진호 감독·김낙수 후원회장의 육성으로 전통과 계승의 의미 되새기고 '세광고 야구의 어제와 오늘' 조명 [연출 최용찬, 글구성 이선이]

KBS 다큐멘터리 프로그램 '다큐공작소' 화면 캡쳐.
KBS 다큐멘터리 프로그램 '다큐공작소' 화면 캡쳐.

44년의 시간 뛰어넘어 하나의 이야기로 다큐 촬영

1982년 황금사자기 우승의 마지막 공과 2026년 청룡기 첫 우승의 마지막 뜬공. 44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두 장면을 하나의 이야기로 엮은 다큐멘터리가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고 있다. 7월 31일 방영.

(클릭하면 다큐 시청 가능)

https://vod.kbs.co.kr/index.html?source=episode&sname=vod&stype=vod&program_code=T2020-1695&program_id=PS-2026126591-01-000&broadcast_complete_yn=N&local_station_code=70&section_code=05

KBS청주방송총국 '다큐공작소'는 세광고 야구부의 영광과 좌절, 선배와 후배의 계승, 동문들의 헌신, 그리고 충북 고교야구의 흥망성쇠를 생생한 기록영상과 인터뷰로 되살리며 깊은 울림을 전했다.

청룡기 결승전 경북고에 6-2 승리

2026년 7월 12일 낮, 제81회 청룡기고교야구선수권 결승전 9회말. 경북고 선수의 타구가 외야 높이 떠올랐다. 세광고 외야수가 낙구 지점을 향해 달려갔다. 그라운드 위 선수들과 더그아웃의 코칭 스태프, 관중석의 응원단까지 모든 시선이 하얀 공 하나를 좇았다. 야수의 글러브가 열리고 공이 그 안으로 쏙~ 빨려 들어갔다.

경기 종료. 6대2. 세광고가 제81회 청룡기고교야구 정상에 올랐다. 전광판에 ‘세광고 우승’이란 대형 자막이 떴다.

선수들은 마운드로 달려 나와 서로를 끌어안았다. 두 팔을 치켜들었고, 동료의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44년 만의 전국대회 우승이자 세광고 야구부 창단 이후 첫 청룡기 우승이 확정되는 순간이었다.

KBS청주방송총국의 ‘다큐공작소’는 이 장면을 출발점으로 세광고 야구부가 걸어온 70여 년의 시간을 되짚었다. 주요 득점 장면과 선수·감독 인터뷰, 1982년 황금사자기 우승 기록영상, 충청 야구를 빛낸 스타들의 발자취, 포항 대통령배에 나선 현재 선수들의 모습이 한 편의 이야기로 이어졌다.

KBS 다큐멘터리 프로그램 '다큐공작소' 화면 캡쳐.
KBS 다큐멘터리 프로그램 '다큐공작소' 화면 캡쳐.

마지막 공까지 놓지 않은 집중력

청룡기 결승 상대는 대회 최다 우승을 노리던 경북고였다. 세광고는 1회 초 적시타로 먼저 점수를 냈다. 이어진 기회에서 희생플레이와 적시타를 보태며 4-0까지 달아났다. 경북고가 7회 추격에 나서자 잠시 긴장감이 감돌았지만, 세광고는 대주자와 대타 작전을 잇달아 성공시키며 다시 점수 차를 벌렸다. 최종 점수는 6-2였다. 선수들은 서로 웃고 끌어안았던 순간을 떠올렸다.

“말로 표현할 수 없이 그냥 기뻤습니다.”

표정에는 우승의 감격이 고스란히 묻어났다. 동문들도 환호했다. 송진우는 “동문들과 교류하고 있다”며 “우승 직후 문자 연락이 쏟아지고 모금도 활발하게 이뤄졌다”고 전했다. “대회 초반부터 큰 점수 차로 이기는 경기가 이어져 비교적 여유롭게 경기를 지켜봤다”는 송진우는 막상 우승이 확정되자 “후배들이 정말 큰일을 해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한 경기의 승리가 아니라 오랜 기다림을 끝낸 후배들의 성취였기 때문이다.

방진호 감독 “저학년에게 경험을 주려 했다”

방진호 감독에 따르면 이번 우승이 처음부터 계획표에 적어놓은 결과는 아니었다. 방 감독은 “저학년 선수들에게 경험을 쌓게 하려는 생각으로 3학년과 저학년을 고르게 기용했다”고 밝혔다. “경기를 거듭할수록 선수들이 하나의 분위기를 만들고 성장하는 모습을 보면서 4강 무렵부터 우승 가능성을 느끼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방 감독의 말에는 우승보다 성장이라는 단어가 먼저 놓여 있었다.

“사실 우승까지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선수들이 함께 분위기를 만들고 느는 모습을 보면서 4강부터는 가능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선수들의 생각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주장 황동민은 “처음부터 우승을 목표로 삼았다기보다 한 경기, 한 경기에 최선을 다했다”고 말했다. 쉴 틈 없이 이어진 경기와 훈련을 견디며 눈앞의 승부에 집중한 것이 예상 밖의 큰 결과로 이어졌다는 설명이었다.

대회 최우수선수 서정휘의 인터뷰는 우승 뒤에 가려진 개인의 고민을 보여줬다. “시즌 초반 부진으로 마음고생이 적지 않았지만, 후반기 들어 마음가짐을 바꾸고 타격 자세를 수정하면서 좋은 결과를 얻었다”고 했다. 방송은 서정휘가 대회에서 팀 공격의 중심 역할을 하며 MVP로 선정됐다고 소개했다.

우승은 어느 날 갑자기 떨어진 행운이 아니었다. 부진했던 선수가 자신의 자세를 고치고, 어린 선수들이 실전에서 성장하고, 선후배가 한 방향을 바라보면서 만들어낸 결과였다.

KBS 다큐멘터리 프로그램 '다큐공작소' 화면 캡쳐.
KBS 다큐멘터리 프로그램 '다큐공작소' 화면 캡쳐.

장종훈과 김낙수, 모교에서 마주한 ‘역사’

경기장을 떠난 카메라는 세광고 교정으로 향했다. 모교를 찾은 장종훈과 김낙수 야구후원회장이 청룡기 우승기와 1982년 황금사자기 우승기, 우승 트로피와 야구 유물들을 차례로 살펴봤다.

두 사람 모두 우승기를 가까이에서 직접 보는 것은 특별한 경험이었다. 김낙수 회장은 황금사자기 우승컵을 바라보며 “당시 송진우를 비롯한 선수들이 저 트로피를 차지하려 얼마나 많은 땀을 흘렸겠느냐”고 회상했다. 장종훈은 오래된 우승 유물을 바라보다 짧게 말했다.

“아, 이제 진짜 역사네.”

세광고 야구의 시간을 압축한 말이었다. 유물의 크기나 화려함보다 그 안에 담긴 선수들의 땀과 학교의 세월이 먼저 보인다는 뜻으로 들렸다.

1982년 황금사자기 우승 이후 세광고가 다시 전국대회 정상에 오르기까지는 44년이 걸렸다. 방송은 두 우승기와 두 개의 트로피를 한 화면 안에 담으며 그 긴 간격을 말없이 보여줬다.

1982년 잠실, 송진우가 던진 마지막 공

다큐의 시계는 1982년 여름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황금사자기 결승전이 열린 잠실야구장. 상대는 경남고였다. 세광고가 앞서갔지만 경남고의 추격으로 점수는 4-3, 단 한 점 차까지 좁혀졌다.

9회 초. 마운드에는 당시 2학년 투수 송진우가 서 있었다. 결과를 알고 보는 기록영상인데도 긴장감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장종훈은 김낙수 회장과 당시 경기 화면을 함께 지켜보다가 “긴장하지 마세요”라고 농담을 던졌다. 이미 44년 전에 끝난 경기지만 마지막 타자를 상대하는 송진우의 표정과 공 하나하나는 여전히 손에 땀을 쥐게 했다.

송진우가 마지막 공을 던졌다. 타자의 방망이가 돌아갔다. 타구가 외야로 높이 떴다. 야수가 공을 잡았다. 세광고 야구부 창단 이후 첫 전국대회 우승이었다. 기록영상의 화질은 세월만큼 흐렸지만, 그라운드로 뛰어나오는 선수들과 관중석의 환호는 생생했다.

송진우는 당시를 회상하며 전국대회에서 우승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이야기했다. 특히 “4-3으로 앞선 마지막 수비에서 세 번째 아웃카운트를 잡았을 때의 기쁨은 말로 설명하기 어려웠다”고 전했다.

1982년 황금사자기의 마지막 뜬공과 2026년 청룡기의 마지막 뜬공. 시대도, 선수도, 유니폼도 달랐지만 우승을 확정한 순간 선수들이 마운드로 달려가는 모습은 닮아 있었다.

KBS 다큐멘터리 프로그램 '다큐공작소' 화면 캡쳐.
KBS 다큐멘터리 프로그램 '다큐공작소' 화면 캡쳐.

김낙수 회장 “청주시 전체를 휩쓸고 다녔다”

1982년의 우승은 잠실야구장에서 끝나지 않았다. 화면에는 청주체육관 광장에서 열린 환영대회와 청주 시내 카퍼레이드 장면이 이어졌다. 선수들이 탄 차량이 도심을 지나고, 길가에 늘어선 시민들이 손을 흔들었다. 김낙수 회장은 당시 60여 대의 버스가 서울 원정 응원에 동원됐으며, 우승 뒤 선수단이 곧바로 돌아오지 않고 잠실 일대를 돌았던 기억을 떠올렸다.

“늦게 청주에 내려와서도 청주시 전체를 휩쓸고 다녔던 기억이 납니다.”

그의 말처럼 세광고의 우승은 학교 안의 행사가 아니었다. 청주시민과 충북도민이 함께 환호한 지역의 축제였다.

당시 고교야구는 지역의 자존심이었다. 지역 학교가 결승에 오르면 주민들과 공무원들이 단체로 서울까지 응원을 떠났고, 방송사들의 중계 경쟁도 치열했다. 경기 결과 하나에 지역 전체가 울고 웃던 시절이었다.

교련복을 맞춰 입고 응원하던 황금사자기 당시 세광고 응원단의 모습도 화면에 나왔다. 복장과 응원 방식은 달라졌지만, 학교 이름을 외치는 목소리와 선수들을 바라보는 간절함은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재국 해설위원 “고교야구가 국민을 해설가로 만들었다”

방송은 세광고의 역사에서 시선을 넓혀 1970년대와 1980년대 초 고교야구 전성기를 조명했다. 동대문야구장을 가득 채운 관중, 라디오와 텔레비전 중계에 귀를 기울이던 시민들, 지역 대표 학교를 응원하기 위해 서울로 올라온 원정 응원단의 모습이 이어졌다.

이재국 야구 해설위원은 당시 고교야구가 사람들을 흥분시키고 “전문가 뺨치는 해설가로 만들어놓을 정도로 큰 마력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동대문야구장에서 경기를 보는 것이 많은 야구팬의 낙이었다는 회고도 덧붙였다.

하지만 프로야구 출범 이후 고교야구에 대한 관심은 점차 줄어들었다. 방송은 그 흐름 속에서도 충청 야구가 배출한 스타들을 차례로 소환했다. 잠수함 투수의 역사를 쓴 한희민, KBO리그 최다승 기록을 세운 송진우, 연습생 신화를 만든 장종훈이 화면에 등장했다. 이재국 해설위원은 세 선수를 “한국 야구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슈퍼스타”라고 평가했다.

여기에 청주고 출신 이중화와 장정순, 천안북일고 출신 이상군 등 충청권을 대표한 선수들의 경기 장면도 이어졌다. 한 학교의 우승을 넘어 충청 지역 야구가 한국 야구에 남긴 족적을 보여주는 대목이었다.

전영훈 “모든 포지션을 바라보는 것이 포수의 매력”

방송은 현재 세광고에서 꿈을 키우는 선수들의 목소리도 놓치지 않았다. 2학년 포수 전영훈은 청소년 국가대표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대표팀 대부분이 3학년이고 2학년은 두 명뿐이라는 점에서 그의 선발은 더욱 눈에 띄었다. 방송은 전영훈이 세광고에서 쌓은 기량을 바탕으로 대만에서 열리는 아시아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에 참가할 예정이라고 소개했다. 전영훈은 포수를 선택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다른 포지션은 공이 가끔 오지만 포수는 계속 공을 받아야 합니다. 모든 포지션을 다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이 매력입니다.”

여름철 장비와 마스크를 착용해야 하는 어려움도 있지만, 경기 전체를 바라보고 이끄는 포수라는 자리에 자부심을 느끼고 있었다. 다른 선수들도 프로 지명, 부상 없이 시즌을 마치는 것, 프로팀에서 꼭 필요한 선수가 되는 것을 목표로 밝혔다. 거대한 구호보다는 지금 눈앞에 놓인 한 단계씩을 넘어가겠다는 현실적인 꿈이었다.

방진호 감독은 세광고를 “역사와 전통이 있고 전국대회에서 항상 상위권에 드는 팀”이라고 소개했다. 중학교 선수들이 진학을 선호하는 학교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일본 고시엔과 비교된 한국의 현실

다큐는 일본 고교야구의 상징인 고시엔으로 시선을 돌렸다. 전국 수천 개 학교가 지역 예선을 치르고, 그중 49개 팀만 본선에 오르는 대회. 전 경기가 방송되고 대회 기간에는 프로팀도 홈구장을 내줄 만큼 일본 사회 전체가 관심을 보이는 국민적 축제로 소개됐다. 이재국 해설위원은 “일본이 고교야구의 역사와 이야기를 끊임없이 이어온 점이 부럽다”고 했다.

“우리나라도 고교야구 전성기가 있었지만, 그 역사와 스토리를 시스템으로 이어가지 못한 부분이 아쉽습니다.”

김낙수 회장 역시 일본은 고교야구 운영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어 부럽다고 말했다. 실제로 한국의 현실은 달랐다. 대통령배가 포항에서 열리는 이유도 소개됐다. 목동야구장 인근 주민 민원으로 야간경기가 어려워 한여름의 무더위를 피할 수 있는 조명시설을 갖춘 포항으로 대회를 옮겼다는 설명이었다.

이재국 해설위원은 “어른 중심이 아니라 학생 중심으로 고교야구를 살릴 방안을 지속적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KBS 다큐멘터리 프로그램 '다큐공작소' 화면 캡쳐.
KBS 다큐멘터리 프로그램 '다큐공작소' 화면 캡쳐.

김낙수 회장 “우리 선수들을 믿었습니다”

화면은 다시 현재의 포항야구장으로 돌아왔다. 청룡기 우승 직후 세광고 선수들은 곧바로 대통령배에 출전했다. 우승의 여운을 누릴 틈도 없이 32강전을 앞두고 훈련에 들어갔다. 인천고와의 경기에서 세광고는 초반 0-2로 끌려갔다. 응원석의 분위기도 잠시 가라앉았다. 그때 김낙수 회장이 목청을 높였다.

“영광~, 영광~ 세광!”

이어 응원단을 향해 “우리 선수들은 역전 능력이 있다”고 후배들을 독려했다. 전국 어디든 따라가 응원하는 세광고 응원단은 선수들에게 또 하나의 전력이었다.

세광고는 후반 들어 추격을 시작했다. 8회 말에는 2루타와 볼넷으로 만든 기회를 놓치지 않고 3점을 뽑아 경기를 뒤집었다. 마지막 수비를 실점 없이 막으며 5-3 역전승을 거뒀다.

경기가 끝난 뒤 김낙수 회장은 “우리 선수들을 믿었습니다”라고 말했다. 응원은 관중석에서 사라지는 소리가 아니었다. 흔들리는 선수들에게 다시 힘을 불어넣는 세광고 야구의 오랜 자산이었다.

선수들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팀의 힘을 강조했다. “초반 연속 삼진으로 위축됐지만 마지막 타석에서 좋은 결과가 나와 기쁘다”고 했고 “후반에 찾아온 기회를 잘 살린 것이 승리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세광고는 다음 16강전에서 패하며 대통령배 도전을 마쳤다. 그러나 방송은 이를 실패로 끝맺지 않았다. 선수들은 다시 다음 경기를 향해 뛰고 있었다.

장종훈 “우승보다 아이들이 어떻게 성장하는지가 중요”

다큐의 마지막을 장식한 것은 또 다른 우승 장면이 아니었다. 장종훈은 우승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이 있다고 말했다.

“얼마나 좋은 선수들이 많이 나오는가, 아이들이 어떻게 성장하고 올바르게 졸업해 사회에서 무슨 일을 하는가. 그게 더 중요합니다.”

야구 선수로서의 성공뿐 아니라 한 사람의 성장과 삶까지 바라보는 선배의 조언이었다. 송진우 “역시 우승에 취해 머물러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우승은 축복받을 일이고 노력의 결실이지만, 우승한 것으로 끝났다고 봅니다.”

그는 선수들에게 “곧 프로 신인드래프트라는 더 큰 관문이 기다리고 있다”며, “프로에 들어가 선배들과 경쟁하고 살아남으려면 스윙 하나, 공 하나를 더 연마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지금의 만족보다 앞으로 갖춰야 할 실력이 더 중요하다는 뜻이었다.

교련복 차림으로 응원하던 옛 응원단

화면에는 다시 세광고의 함성과 선수들의 모습이 흘렀다. 1982년 황금사자기 우승을 완성한 송진우의 마지막 공. 2026년 청룡기 우승을 확정한 마지막 뜬공. 교련복 차림으로 응원하던 옛 응원단. 포항에서 “영광, 영광 세광”을 부르는 오늘의 응원단. 낡은 우승컵을 바라보며 “이거 역사네”라고 말한 장종훈. “우리 선수들을 믿었다”고 말한 김낙수 회장. 그 장면과 목소리들이 하나의 시간으로 연결됐다.

방송은 고교야구의 뜨거운 함성이 계속 이어질 수 있도록 지속적인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는 내레이션으로 막을 내렸다.

KBS청주 ‘다큐공작소’가 보여준 것은 한 차례의 우승이 아니었다. 1955년 창단 이후 수많은 선수와 지도자, 동문과 응원단이 함께 이어온 세광고 야구의 역사였다.

마지막 뜬공 하나가 글러브에 들어가기까지 44년이 걸렸다. 그러나 그 공이 만들어낸 이야기는 경기 종료와 함께 끝나지 않았다. 후배들이 다시 배트를 들고 마운드에 오르는 한, 세광고 야구의 역사는 여전히 다음 이닝을 향해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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