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을 빼야 오래 산다고요? 아닙니다”...어느 서울의대 교수의 문제제기

의학 데이터가 뒤집은 상식뚱뚱한 사람이 더 오래 사는 이유이승훈 교수, 국내외 의학 데이터 분석

“살 좀 빼셔야겠습니다.”

병원 진료실에서 이 말을 한 번도 안 들어본 사람은 드물다. 우리는 너무도 자연스럽게 체중 증가를 위험 신호로 받아들이고, 체중 감량을 건강 관리의 출발점으로 여긴다. 그런데 만약 의학 데이터가 정반대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면 어떨까. ‘조금 통통한 사람이 오히려 더 오래 산다’는 주장 말이다.

이 불편한 진실은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이승훈 교수가 지난달 유튜브 강의 「언더스탠딩: 세상의 모든 지식」에서 반복적으로 강조한 핵심 메시지다. 그는 “보기 좋은 몸과 오래 사는 몸은 다를 수 있다”며 우리가 체중에 대해 가지고 있는 상식 자체가 잘못 설정되어 있을 가능성을 제기한다.

의학계가 인정한 ‘비만의 역설’

2013년 미국 질병관리본부(CDC)의 캐서린 플레걸(Catherine Flegal) 박사 연구팀은 전 세계 97개 연구, 약 2,880만 명을 분석한 메타분석 결과를 발표했다. 결론은 명확했다. BMI 25~30, 즉 한국 기준으로는 비만 1단계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정상체중군보다 사망률이 약 6% 낮았다는 것이다(JAMA, 2013).

이 결과는 의학계에 큰 충격을 주었다. 이미 심부전, 심근경색, 뇌졸중 환자 연구에서는 “살찐 환자가 더 오래 산다”는 결과가 반복적으로 보고되고 있었기 때문이다(Circulation, American Journal of Cardiology). 이 현상은 이후 ‘비만의 역설(obesity paradox)’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암, 폐질환, 신부전, 중환자실 환자 등 다양한 질환 영역에서 확인됐다(The Lancet, NEJM, Stroke).

병은 몸을 ‘전쟁 상태’로 만들어

이승훈 교수는 질병 상태를 “아픈 몸은 평시가 아니라 전시 체제”로 비유한다. 중증 질환이 발생하면 몸은 엄청난 에너지를 소모한다. 염증 반응이 폭발하고, 면역계는 풀가동된다. 이때 지방과 근육은 연료 저장고다. 전쟁 중 보급 창고가 비어 있다면 군대는 오래 버틸 수 없다. 실제로 급성 질환을 겪은 환자들은 며칠 만에 수 kg의 체중이 빠진다. 이때 체내 에너지 비축이 없는 마른 사람은 급격히 무너질 가능성이 크다. 저체중이 거의 모든 질환에서 사망률이 가장 높은 이유다.

지방은 ‘쓸모없는 살’이 아니다

지방을 단순히 없애야 할 대상으로 보는 인식도 문제다. 지방세포는 렙틴, 아디포넥틴 등 다양한 호르몬을 분비하며 면역·염증·대사 조절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Nature Reviews Endocrinology).

적절한 지방은 감염과 스트레스 상황에서 몸을 보호하는 완충 장치다. 특히 노년기에는 지방과 근육이 회복력의 핵심 자산이 된다. 저체중 노인은 골다공증, 낙상, 감염, 조기 사망 위험이 뚜렷이 높다(The Journal of Gerontology).

‘마름 숭배’는 사회가 만든 착시

우리가 믿어온 정상체중은 과연 의학적 기준일까. 이 교수는 이를 “사회적 미적 기준이 만든 가스라이팅”에 가깝다고 표현한다. 과거 유럽에서도 영양 부족이 흔하던 시절에는 루벤스의 그림처럼 통통한 체형이 건강과 풍요의 상징이었다. 지금은 음식이 넘쳐나는 시대가 되면서 기준이 뒤집혔을 뿐이다.

특히 한국인은 유전적으로 서구인보다 근육량과 지방 저장 능력이 낮다. 서구 기준의 정상체중을 그대로 적용하면, 이미 영양과 회복력이 부족한 상태에 해당할 수 있다(대한비만학회 팩트시트).

그래서, 어떻게 먹고 살아야 할까

이승훈 교수는 한국인에게 가장 합리적인 BMI 범위를 23~27로 제시한다. 그러나 그는 체중보다 더 중요한 기준으로 대사 안정성을 강조한다. 그렇다면 식사 습관은 어떻게 가져가야 할까.

첫째, 굶는 다이어트는 피해야 한다. 끼니를 거르며 체중을 줄이는 방식은 근육과 면역력을 동시에 깎아 먹는다. 둘째, 단백질을 충분히 먹어야 한다. 근육은 노년기의 보험이다. 매 끼니 단백질이 포함된 식사가 필요하다. 셋째, 지방을 적으로 보지 말아야 한다. 극단적인 저지방 식단은 오히려 대사 균형을 깨뜨릴 수 있다. 좋은 지방을 적절히 섭취하는 것이 중요하다. 넷째, 혈당과 염증 지표를 관리하라. 당화혈색소가 6.0% 미만으로 유지된다면, 체형이 다소 통통해도 그것은 ‘위험 신호’가 아니다.

오늘부터 체중과의 전쟁을 멈춰라

체중계 숫자와 싸우느라 인생을 낭비할 필요는 없다. 몸은 장기전에서 이길 수 있도록 설계되어야 한다. 이승훈 교수의 주장에 따르면, “무작정 살을 빼는 삶에서 벗어나라”는 것이다. 잘 먹고, 잘 회복하고, 병에 맞설 수 있는 몸을 만드는 것. 그것이 의학이 말하는 진짜 건강이며, 오래 사는 전략이다.

(출처)

1.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이승훈 교수, 유튜브 「언더스탠딩: 세상의 모든 지식」

2. Flegal KM et al., Association of all-cause mortality with overweight and obesity, JAMA, 2013

3. Circulation, American Journal of Cardiology, Stroke

4. The Lancet, NEJM

5. Nature Reviews Endocrinology

6. 대한비만학회 팩트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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