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 전 취재한 국제 바칼로레아 공동수업, 한일 교실에서 현실이 되다

제주 4·3에서 시작된 IB 교육과정 평화교육한국-일본 역사 공동수업으로 전격 성사제주 표선고와 일본 요시다고교 화상수업비난 대신 질문과 토론이 오갔다교육과혁신연구소 이혜정 소장이 알려와

2019년 11월 27일자 오마이뉴스.
2019년 11월 27일자 오마이뉴스.

“그 기사가 한일 역사공동수업이 됐습니다”

2019년 11월 27일, 오마이뉴스에 국제 바칼로레아(IB) 교육과정을 다룬 기사(https://omn.kr/1lqje)를 기고한 적이 있다. 제주도교육청 국제심포지엄에 참석하기 위해 방한한 시바 쿠마리 국제바칼로레아기구(IBO) 회장이 제주 4·3항쟁 학살 현장인 섯알오름을 찾은 이야기를 중심으로, IB 교육과정 철학이 ‘평화교육’이라는 점을 취재한 기사였다.

당시만 해도 IB 교육과정은 국내에서 생소했고, 공교육 안에서 정착할 수 있을지 확신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로부터 6년이 흐른 2025년 11월 29일, 교육과혁신연구소 이혜정 소장에게서 카카오톡 메시지 한 통이 도착했다.

“기자님께서 2019년에 쓰셨던 이 기사가 현실화된 수업이었습니다.”

이 짧은 문장과 함께 최근 서울경제신문에 실린 칼럼이 첨부돼 있었다. 해당 칼럼에는 제주 IB 과정 학교인 표선고등학교와 일본 나가노 요시다고등학교 학생들이, 지난달 10일, 화상으로 연결돼 양국의 역사 교과서를 직접 비교·분석하는 한일 공동수업 사례가 소개돼 있었다.

2019년 취재와 2025년 교실이 만난 순간

한국 학생들은 일본 교과서가 태평양전쟁을 ‘전시 동원’ 중심으로 서술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일본 학생들은 한국 교과서에 히틀러·무솔리니·히로히토가 함께 등장하며, 위안부와 강제동원이 구체적인 증언과 사진으로 상세히 기술돼 있다는 사실에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학생들은 서로 비난하지 않고 “왜 이렇게 다르게 서술되었는가”, “무엇은 기록되고 무엇은 지워졌는가”를 질문했다. 역사를 기억과 망각, 서술과 침묵의 구조 속에서 해석하는 방식으로 토론을 이어갔다. 담당 교사(표선고 이유래, 요시다고 코미야마 준)들은 모든 발표 준비를 주도한 학생들의 생각지도 못한 분석적 시각과 통찰에 놀라워했다

국내 교육 당국 중 최초로 IB 한국어화 및 공교육 도입의 공개 선언을 세상에 처음으로 단독보도한 오마이뉴스의 2017년 12월 3일자 기사.
국내 교육 당국 중 최초로 IB 한국어화 및 공교육 도입의 공개 선언을 세상에 처음으로 단독보도한 오마이뉴스의 2017년 12월 3일자 기사.

한국·일본 교과서를 마주 놓은 학생들

2019년 섯알오름에서 일본군 비행기 격납고를 함께 둘러보며 “언젠가 한일 IB 교육과정 학생들이 역사 공동수업을 하면 좋겠다”는 말이 오갔던 장면을 오마이뉴스에 소개했던 것인데, 이것이 실제 교육 현장에서 구현되었다고 이혜정 소장이 알려왔다. 당시로서는 다소 이상처럼 들릴 수도 있었던 제안이 6년 만에 현실이 된 셈이다.우리 교육의 수업과 평가를 혁신하기 위한 전략으로 IB를 한국어화하여 공교육에 도입하자는 아이디어가 이혜정 소장의 저서 『대한민국의 시험』(2017)에서 최초로 제안된 이후, 몇몇 교육청이 이를 정책으로 검토하기 시작했다. 국내 교육당국 중 최초로 IB 한국어화 및 공교육 도입의 공개선언을 단독 보도한 것이 바로 오마이뉴스의 「제주도교육청, 국제 바칼로레아(IB) 논술형 교육과정 국내 첫 공교육 도입」 기사(2017년 12월 3일 자, https://omn.kr/or3s)다. 이후 각고의 노력 끝에 2019년 7월 대구교육청과 제주교육청이 동시에 IBO와 한국어화 협약각서에 서명하면서 국내 IB 공교육 도입이 공식화됐다.

초기 실험 단계 지나 국내 확산 국면

현재 국내 IB 교육과정 도입은 초기 실험 단계를 지나 확산 국면에 접어들었다. 올해 6월 기준 전국 12개 시도교육청 산하에 IB 인증학교 49개교, 후보학교 118개교, 관심학교 449개교, 총 616개교 이상의 IB 학교가 운영되고 있다(한국교육과정평가원 집계). 공립과 사립을 가리지 않고 전국 각지에서 IB 도입 또는 준비 단계에 있는 학교들도 빠르게 늘고 있다.

제주와 대구의 IB 졸업생들의 역대급 대입 실적도 나오면서 전국적으로 관심이 늘고 있고, IB 교사 양성과정(IBEC; IB Educator Certificate)을 공식 운영하는 대학도 12곳(경북대, 경인교대, 교원대, 남서울대, 대구교대, 부산교대, 서울교대, 인하대, 전주교대, 제주대, 한동대, IBEC 컨소시엄[충남대·공주대·공주교대])에 이르렀다. 현재 IBEC 인증 과정을 진행 중인 서울대학교까지 추가되면 13개 대학에 이르게 된다.

2019년 11월 22일 제주교육 국제심포지엄에서 기조 강연하는 쿠마리 IBO 회장. ⓒ 제주교육청
2019년 11월 22일 제주교육 국제심포지엄에서 기조 강연하는 쿠마리 IBO 회장. ⓒ 제주교육청

IB 학교 616개교 이상 운영 중

2024년에는 한국IB교육학회가 창립됐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 IB연구실이 설립되었으며, 내년부터는 서울대학교 사범대에 IB교육연구센터가 공식 설립될 예정이다. 2019년만 해도 ‘대안 교육’이나 ‘실험적 모델’로 취급받던 IB 교육이 공교육 체계 안에서 하나의 제도적 선택지로 자리 잡아가고 있는 것이다.

교육은 선언이나 담론만으로 바뀌지 않는다. 결국은 수업 현장에서 완성된다는 점을 한일 역사 공동수업의 사례에서 분명하게 보여준다. 지난 15일 서울대에서 열린 한국IB교육학회에서 한일 역사 공동수업 사례 발표에 함께 참여한 표선고 졸업생 신성빈 군(동국대)은 “대학에 가 보니 수십만 명의 수능 출신들에 비해 IB 졸업생은 너무나 극소수인데, 이들이 계속 소수자로만 묻히지 않도록 어른들이 보호해 달라”고 호소했다. 현장에 있던 교수, 교사, 교육청 관리 등 새로운 교육을 열망하는 교육자들 모두 울컥한 순간이었다.

“IB 졸업생 극소수…소수자 안 되게 보호해 달라”

이제 60대 초중반 인생을 돌아보는 시점에서, 당시 현역에서 은퇴한 프리랜서 기자 신분으로 취재했던 IB 교육과정은 주목을 받지도 못했다. 당시 2~3년에 걸쳐서 IB 교육과정을 취재했고, 일본에도 두 차례 자비로 다녀온 바 있다. 그 과정에서 오히려 일부 교육계 인사들에게 견제도 무척 많이 받았고, 심지어는 "사사로운 이익에 사로 잡혀서 취재한다"는 황당한 오해까지 받고 뒷조사를 당하는 일도 있었다.

그러나 6년 뒤 실제 교실에서 그 문제의식이 구체적인 수업으로 구현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니, 그 또한 내 인생에서 남길 수 있었던 작은 보람 중 하나로 보인다. 기록은 즉각적인 평가를 받지 못하더라도, 시간이 흐른 뒤 조용히 자기 역할을 수행하는 사례가 있다는 사실도 다시 확인하게 된다.

인생에 남기고픈 보람 ‘IB 교육과정 취재’

무엇보다 2019년 당시 구상 단계에 머물렀던 한일 IB 역사 공동수업을 실제로 성사시킨 이혜정 교육과혁신연구소장의 기획력과 지속적인 실천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중앙일간지들도 관심을 두지 않던 시절에 IB 교육과정 기사에 지면을 할애해 준 오마이뉴스도 큰 역할을 했다.

IB 교육과정이 앞으로도 한국 공교육 안에 안정적으로 뿌리내리고, 학생들이 단순한 지식 암기를 넘어 비판적 사고와 역사 인식의 깊이, 그리고 타 문화에 관한 이해와 존중을 함께 기를 수 있는 토대로 발전해 가기를 기대한다.

2019년의 작은 취재가 2025년의 교실로 이어진 만큼, 이 흐름이 한국 교육의 한 축으로 자리 잡을 수 있기를 조용히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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