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댓스포츠 구동회 대표, ‘조용한 매니지먼트’의 힘을 말하다스타 뒤에 선 한 사람의 일, 산업을 바꾸는 보이지 않는 기술
김연아의 금메달 뒤에는 ‘보이지 않는 무대’를 설계한 사람이 있었다. 기자 출신에서 스포츠 매니지먼트의 중심으로 이동한 구동회 올댓스포츠 대표. 그는 선수의 역량과 생애 주기를 읽고 서사를 설계하는 방식으로 한국 스포츠 마케팅의 지형을 바꿔왔다. 7일 오후 올댓스포츠 본사(서울 강남 삼성동)에서 구 대표를 인터뷰했다.]

"고개 숙이고 눈 감은 채 복도서 소리로만 "
밴쿠버 동계올림픽이 열린 2010년 2월 밴쿠버 퍼시픽 콜리세움. 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 프리 프로그램이 시작되던 순간, 경기장 안은 한 줄의 긴장으로 팽팽하게 조여져 있었다.
그 역사적인 순간, 김연아 선수의 매니지먼트를 맡고 있던 구동회 올댓스포츠 대표는 관중석에 있지 않았다. 그는 얼음링크를 등지고 복도 난간에 서 있었다. 손을 모으고, 고개를 숙이고, 링크쪽을 보지 않은 채.
“너무 긴장하면요, 눈을 뜨고 있어도 아무것도 안 보입니다. 귀로만 경기를 들었습니다.”
김연아의 점프는 쇼트경기 때 3번과 프리경기 때 7번으로 총 열 번. 점프가 성공하면 관중석은 갈채와 함성이 터졌고, 실패하면 관중들의 한숨소리와 탄식이 쏟아졌다.
그는 눈을 감은 채, 오직 귀로만 경기의 모든 순간을 따라갔다. 메달이 결정되는 프리경기에서 7번 모두 환호. 막힘없이 치솟는 함성. 누구도 숨을 뱉지 못하는 정적과 폭발이 교차하는 공기. 그는 그 순간 눈물을 흘렸다.
“‘와~’ 하는 함성의 밀도만으로 알 수 있어요 프리경기 마지막 점프에서 큰 함성이 터졌을 때… 아~, 금메달이구나.”
"와~ 함성의 밀도만으로 금메달 직감"

기자에서 ‘서사를 만드는 사람’으로
구동회 대표는 본래 스포츠 기자였다. 선수의 움직임을 기록하고, 장면의 의미를 해석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는 어느 날 깨달았다.
“기록만으로는 전부를 담을 수 없다는 걸요. 선수의 삶에는 무대 밖의 이야기가 훨씬 많습니다.”
방향은 그 깨달음에서 갈라졌다. 그는 ‘쓰는 사람’에서 ‘만드는 사람’으로, 현장을 바라보는 사람에서 현장을 설계하는 사람으로 이동했다.
2003년 체육기자연맹 해외 연수자로 선발돼 영국 브라이튼대 대학원에서 Sport, Culture & Media 석사를 밟았다. 1년 뒤 귀국했을 때 국내 미디어 환경은 급변해 있었다. 지하철 무가지 신문들이 쏟아졌고, 그가 몸담았던 스포츠투데이는 구조조정 국면이었다.
에이블리라는 스포츠 마케팅사의 제안이 왔고, 그는 기자에서 마케터로 전환을 결심했다. 현대자동차 월드컵 마케팅 대행을 비롯한 현장 업무를 맡았다. 한편으로는 스포츠 미디어 분야에서의 학문적 경로를 고민하며 박사 과정까지 병행했다. 이후 IB스포츠에 합류한 그는 2007년 김연아 선수의 매니지먼트를 맡았다.
기자 시절과 달리 스포츠 마케팅은 ‘을’의 위치에서 선수와 기업을 향해 브랜드 가치와 이미지를 설계하는 일이다.
“엔터테인먼트 매니지먼트와 달리 스포츠 매니지먼트는 선수를 ‘육성’하기보다 이미 입증된 역량을 브랜딩하고 패키징하는 역할에 가깝습니다.”
체육기자연맹 해외연수자 선발 영국 유학

벤쿠버 올림픽 출전 불발 위기서 역할
밴쿠버올림픽을 한 달 앞둔 겨울, 토론토의 훈련장. 김연아는 호흡과 스케일, 속도, 시선의 초점까지 모든 것이 맞아 들어가는 ‘올림픽 직전의 고요한 상승 곡선’ 위에 올라 있었다.
바로 그때 균열이 생겼다. 한국 전주에서 열릴 4대륙선수권. 올림픽 시즌 4대륙은 대개 올림픽에 나서지 않는 선수들이나 4대륙선수권대회를 올림픽 전초전으로 삼아 컨디션을 끌어올리기 위해 출전하는 무대였다. 금메달을 노리는 선수에게는 불필요한 이동과 소모였다. 그래서 팀은 불출전을 택했다. 훈련 곡선을 지키겠다는 선택이었다.
그러나 2009년 12월, 국제빙상연맹(ISU)은 한국빙상연맹에 징계 검토 공문을 보낸다.
“4대륙 불참 시 1~3년 출전정지.”
올림픽 출전 자체가 불가능해질 수 있다는 뜻이었다. 세계가 기다리던 무대가 종잇장처럼 흔들리던 순간, ‘구동회 스포츠 마케터’는 싸워야 했다. 당시 대통령실 체육정책 자문위원이기도 했던 그는 직감했다.
“4대륙선수권대회 출전은 김연아가 금메달을 놓칠 수 있는 가장 큰 리스크다”
코치나 선수 개인의 설득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 연맹과 정부, IOC 라인, 후원사와 국제 관계가 얽힌 복합 장기전이었다. 그는 움직였다. 전화, 미팅, 중재, 조율. 하루에도 수십 번 문장을 다듬으며 메시지를 하나로 통일했다.
“선수를 보호해야 한다. 훈련 곡선을 지켜야 한다. 이 선수는 개인이 아니라 우리 시대의 유일한 기회다.”
IOC 위원 이건희 회장, 대한체육회 박용성 회장, 빙상연맹과 정부 라인이 하나의 결론을 향해 집결했다. 결과는 ISU의 징계 검토 철회. 김연아는 흔들림 없이 다시 얼음 위로 돌아갔다.
“스포츠 마케터는 후원을 따내는 사람이 아닙니다. 선수의 가장 중요한 순간을 지켜내는 사람입니다.”
연맹, 정부, IOC 라인, 후원사 총동원해 설득

‘선수’에서 ‘문화 아이콘’으로 우뚝
브랜딩은 성과의 파생물이 아니라 서사의 확장이다. 그 방향성이 선명히 드러난 사례가 김연아였다. ▲평창 동계올림픽 홍보대사, ▲국제 문화·외교 상징 활동, ▲사회 캠페인 참여, 경기력에서 이미지, ▲사회적 메시지, 그리고 ▲은퇴 이후의 삶까지 이어지는 장기 설계였다.
특히 2009년 삼성전자 하우젠 에어컨 ‘싱싱송’ 캠페인은 상징적 전환점이었다. 밝은 미소와 경쾌한 리듬, 건강한 이미지로 김연아의 모델 호감도와 브랜드 영향력이 폭발했다. 그해 삼성전자는 에어컨 시장 점유율에서 처음으로 LG를 역전했다. 이후 김연아는 삼성전자의 핵심 모델로 자리 잡았고, 후원사는 한때 15개까지 늘었다. 밴쿠버올림픽 이후 2년동안 여성 스포츠스타 중 수입 6~8위를 기록했다.
“한 해 광고 수익만 약 100억 원으로 평가되기도 했습니다.”
"삼성전자 핵심모델 우뚝...후원사 한때 15개"

"탁월한 가치를 적합한 브랜드와 연결"
구 대표는 자신의 역할을 이렇게 요약한다.
“이미 탁월한 원석인 김연아의 가치를 적합한 브랜드와 연결하고, 스토리와 이미지를 정제해 전달하는 일입니다.”
기자 경험은 그에게 강력한 도구였다. 체계적인 보도자료 생산으로 팬과 언론이 피겨라는 종목을 더 깊이 이해하도록 도왔다. 대회 현장에서 선수에게 과도한 부담을 주던 1:1 인터뷰 관행을 공동 인터뷰 방식과 시점 체계로 정리했다.
그러나 화려함의 뒤편에는 늘 ‘부상과 두려움을 함께 버티는 사람들’이 있다. 2008년 고관절 부상, 약물 규정 속에서 진통제 하나도 절차를 밟아야 했던 시간. 재활치료와 재활훈련을 살얼음걷듯 지켜본 시간들.
“부상을 보면 속이 무너집니다. 선수는 아픔을 숨기고 스케이트를 신어요. 하지만 매니지먼트는 그 아픔을 봅니다. 그게 제일 힘든 일입니다.”
그에게 매니지먼트의 본질은 명확하다.
“스포츠 매니저는 선수가 잘 나갈 때보다 어려움에 처해 있을 때 그 어려움을 함께 짊어질 줄 아는 사람.”
"기자 경험 선수 관리에 큰 도움"

"한국 스포츠, 지금은 경기장 밖을 키울 때"
그가 인터뷰 내내 반복해 입에 올린 단어는 ‘구조’였다.
“한국은 여전히 운동을 ‘국위선양’의 틀로 바라봅니다. 그러나 이제 스포츠는 경쟁이 아니라 삶의 기술입니다.”
그가 지적한 현실은 간단하면서도 깊다. 선수는 너무 이르게 선발되고 너무 빨리 소모된다. 합숙 중심 시스템은 사회성과 학력, 진로를 단절시키며, 은퇴 후 전환 시스템은 빈약하다. 생활체육 인프라도 얇다. 스포츠 산업 종사자 수는 선진국 대비 현저히 적다.
국가별 비교는 분명하다. 유럽은 스포츠 베팅과 데이터 산업이 리그의 성장을 견인했고, 미국은 100여 년에 걸쳐 스포츠를 민간(방송, 구단, 스폰서)과 지역-교육기반의 국가가 자본시장의 초거대 콘덴츠 플랫폼으로 만들었다. 일본은 기업이 지역 스포츠 생태계를 후원하는 구조를 촘촘히 깔았다. 반면 한국은 훈련·재활·장비·데이터·기록분석·팬미디어 등 경기장 밖의 산업 두께가 아직 얇다.
한국 스포츠 산업 두께 얇아

기자 출신들 스포츠산업 강점 많아
구동회 대표는 자신이 걸어온 경로가 흔치 않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기자에서 스포츠 마케터로의 전환은 단순한 직무 이동이 아니라 시각과 역할의 변화였다. 그는 후배 기자들에게 “관찰은 강점이지만, 판단은 내려놓으라”고 말한다.
“기자는 팩트를 정리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스포츠 매니지먼트는 사람과 시간을 설계하는 일입니다. 선수의 상태, 심리, 경기력 주기, 사회적 이미지, 부상 리스크, 은퇴 이후 진로까지 모두 연결되어 있습니다. 여기에는 ‘무엇이 옳은가’보다 ‘지금 이 사람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가 더 중요합니다.”
그는 기자 출신이 스포츠 산업에서 발휘할 수 있는 강점이 분명하다고 말한다.
첫째는 정보 구조를 보는 능력, 둘째는 서사를 만드는 문장력, 셋째는 사람을 관찰하는 감각이다. 그렇지만, 이 강점이 오히려 무기가 아닌 방해가 될 때가 있다고 지적했다.
“기자는 ‘판단’이 빠릅니다. 그러나 스포츠 마케터는 선수보다 앞서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선수의 시간, 선수의 속도, 선수의 두려움을 읽어야 합니다. 판단보다 감각이 먼저여야 합니다.”
"지금 선수에게 필요한 게 무언지 찾아야"

"기자 자존심은 버리고 뛰어들라"
그는 후배 기자들에게 스포츠 산업 진입을 적극 권한다. 다만 조건이 있다. 기자라는 직업의 자존심을 그대로 가져오면 스포츠 마케팅에서는 오래 버티기 어렵다는 점이다. 기자는 무대 밖에서 서술하는 사람이고, 마케터는 무대를 존재하게 만드는 사람으로 중심이 다르다는 것이다.
구 대표는 후배 기자들이 흔히 간과하는 것 하나를 특히 강조했다.
“선수의 생애는 직선이 아닙니다. 오르막과 내리막, 준비기와 정점기, 두려움과 자신감이 반복됩니다. 이 곡선을 이해해야 합니다. 이걸 이해하지 못하면, 선수를 ‘상징’으로만 보게 되고, 결국 사람을 잃습니다.”
그는 ‘스포츠 마케터는 결국 사람을 지키는 직업’이라고 다시 한 번 강조했다. 스포츠는 기록으로 판단받지만, 선수는 감정으로 살아간다는 점이다. 기록만 보고 사람을 움직일 수는 없고 선수에게 필요한 것은 결국 함께 버티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그는 후배 기자들에게 조용히, 그러나 단단하게 한 문장을 남겼다.
“기록은 시간이 지나면 사라집니다. 그러나 기억은 남습니다. 여러분이 만드는 문장과 선택이, 누군가의 인생에서 기억으로 남을 수 있다는 것을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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