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는 또 하나의 신문...운전대 잡은 나는 여전히 편집자”

조선미디어그룹 스포츠조선 편집전문기자에서마을버스 운전기사(경기도 고양시 화정)로, '제2 인생새벽 첫차부터 자정 막차까지, 성실로 지켜낸 13년활자 대신 승객 배열..."버스는 또 하나의 신문, 승객은 독자"

김민수 씨는 "신문 편집과 버스 운전은 공통점이 있다"면서 "일찍 출근해 편집 준비를 했듯이, 지금도 일찍 출근해 버스를 청소한다"고 밝혔다.
김민수 씨는 "신문 편집과 버스 운전은 공통점이 있다"면서 "일찍 출근해 편집 준비를 했듯이, 지금도 일찍 출근해 버스를 청소한다"고 밝혔다.

천주교 성당 친구 추천으로 마을버스 운전 시작

"펜끝엔 번뜩이는 예지, 두눈엔 넘치는 열정, 가슴엔 뜨거운 사랑"

1993년 10월 31일 김민수 씨(65)가 받은 '10월의 편집상' 상패에 적힌 문구다.

조선미디어그룹 스포츠조선 등에서 오랜 세월 편집전문기자로 활약했던 김민수 씨는 은퇴 후 다시 일터로 향했다. 이번에는 신문사가 아닌 도로였다. 13년째 버스 운전대를 잡고 있는 그는 매일 새벽 어김없이 승객들을 태우며 하루를 연다.

지면을 완성하던 손길은 이제 사람들의 일상을 안전하게 목적지까지 실어 나르는 업무로 이어졌다. 기자에서 기사로, 직업은 달라졌지만 “성실히 일하는 삶이야말로 가장 숭고하다”는 그의 철학은 여전히 변함이 없다.

1993년 10월 31일 김민수 씨(65)가 받은 '10월의 편집상' 상패. 김 씨는 현역 기자 시절 베테랑 편집기자로 이름을 날렸다.
1993년 10월 31일 김민수 씨(65)가 받은 '10월의 편집상' 상패. 김 씨는 현역 기자 시절 베테랑 편집기자로 이름을 날렸다.

신문편집 마감에서 배차 간격 마감으로

“제 차는 회사 차가 아닙니다. 오늘 하루 제가 책임지고 운영하는 1억5천만 원짜리 움직이는 사무실이지요.”

김 씨는 20여 년간 편집전문기자로 활약했다. 국민일보사 스포츠투데이에서는 편집부 부장까지 맡았다.

신문사 퇴직 후 요양보호사를 거쳐, 천주교 성당 친구의 권유로, 마을버스 운전을 시작했다. 경기도 고양시 일산구 화정 등이 운행 구역이다.

그의 하루는 긴 호흡으로 이어진다. 근무일이면 새벽 3시 반에 눈을 뜬다. 차고지에서 새벽 5시에 첫차가 출발해 지하철 첫차와 호흡을 맞추고, 막차가 끝나는 밤 12시까지 운행은 계속된다. 한때 시내버스도 담당했다.

출퇴근길 직장인, 학교 가는 학생, 장을 본 어르신까지, 그의 버스에는 동네의 하루가 오롯이 실려 있다. 과거에는 마감을 위해 활자를 다듬었고, 이제는 배차 시각에 맞추기 위해 차량을 점검한다.

버스 운전은 단순한 생계 수단만은 아니었다. 그것은 그가 다시 사회와 이어지는 끈이 되었다. 자부심을 지탱하는 또 하나의 직업이 되었다.

“깨끗한 지면처럼, 버스도 매일 닦아야죠”

조선미디어그룹 스포츠조선 편집부에서 편집에 열중하던 김민수 씨.
조선미디어그룹 스포츠조선 편집부에서 편집에 열중하던 김민수 씨.

"신문 편집하듯 운전도 섬세함, 집중력 필요"

김 씨는 자신을 여전히 ‘편집자’라고 생각한다. 다만, 종이가 도로로 바뀌었을 뿐이다.

“신문은 오탈자 하나에도 독자의 신뢰가 흔들립니다. 버스도 마찬가지예요. 급정거, 급출발, 급회전 같은 작은 실수가 큰 사고로 이어지거든요. 결국 원칙은 같습니다. 섬세함과 집중력이 사람을 지킨다는 거죠.”

신문 편집실에서 지면을 다듬던 습관은 지금도 이어진다. 그는 매일 아침 차를 닦으며 하루를 시작한다. 먼지를 털고 유리창을 닦는 행위는 신문 레이아웃을 정리하던 손길과 닮아 있다.

“깨끗한 지면이 독자의 눈을 열듯, 깨끗한 차가 승객의 마음을 엽니다.”

"단골 어르신 승객 안 보이면 마음 무거워져"

버스를 운전 중인 김민수 씨.
버스를 운전 중인 김민수 씨.
1990년 1월 조선미디어그룹 스포츠조선 창간 기념 연수회 단체사진.
1990년 1월 조선미디어그룹 스포츠조선 창간 기념 연수회 단체사진.

"승객들은 지면 함께 완성하는 공동저자"

버스는 하루 수백, 수천 명의 삶을 실어 나른다. 노선은 마치 신문 섹션처럼 다양하고, 승객들은 기사마다 다른 독자처럼 다채롭다.

김 씨는 단골 승객들의 얼굴을 기억한다. 늘 타던 어르신이 어느 날 보이지 않으면 마음이 무겁다.

“예전엔 독자가 내가 편집한 지면을 어떻게 읽는지 알 수 없었는데, 지금은 반응이 바로 보입니다. 웃어주면 안심이고, 불편해 하면 제 잘못을 돌아보게 되죠.”

그는 승객을 단순한 손님이 아닌 ‘함께 지면을 완성하는 공동 저자’로 여긴다. 거동이 불편한 승객을 돕는 일도 자연스럽다. 요양보호사로 일했던 경험이 큰 도움이 됐다.

“언젠가 나도 저 자리에 앉을 거라는 생각을 하면 더 정성껏 하게 돼요. 결국 승객을 돕는 일은 제 노년을 준비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요양보호사 경험, 승객 배려로 이어지다

버스를 배경으로 외손주를 안고 있는 김민수 씨.
버스를 배경으로 외손주를 안고 있는 김민수 씨.

승객에 당부 "교통카드 미리 준비하셔요"

그는 승객들에게 거듭 당부했다.

“조금 늦더라도 안전하게 가는 게 최선입니다. 급하게 뛰어오르다 다치지 말고, 자리에서 일어나실 땐 미리 벨을 눌러 주세요.”

특히 꼭 지켜줬으면 하는 습관도 덧붙였다.

“버스에 올라탄 뒤에야 지갑을 뒤지거나 교통카드를 찾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 몇 초가 쌓이면 배차 간격이 흔들리고, 다른 승객들의 도착 시간이 늦어집니다. 타기 전에 미리 준비해 주시면 운행이 훨씬 원활해집니다.”

그의 목소리는 나무람보다 부탁에 가까웠다. 작은 배려가 모두의 시간을 지키고, 기사에게도 더 안전한 운행 여건을 만들어 준다는 뜻이다.

“버스 한 대의 지연은 곧 수십 명의 일정과 직결됩니다. 결국은 서로를 위한 일이지요.”

"버스 지연되면 수십 명 일정에 차질"

성당 성가대에서 기타를 연주하는 김민수 씨.
성당 성가대에서 기타를 연주하는 김민수 씨.
스포츠조선 편집부 기자 체육대회 겸 가족 나들이.
스포츠조선 편집부 기자 체육대회 겸 가족 나들이.

운전자에 당부 "너무 바짝 붙지 마셔요"

김 씨는 승용차 운전자들에게도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버스가 깜빡이를 켜면 양보해 주셔야 합니다. 수십 명의 안전이 걸려 있거든요. 승용차 한 대의 몇 초보다, 버스 한 대의 수십 생명이 훨씬 무겁습니다. 또 정류장에 서 있을 때 너무 바짝 붙지 마세요. 승객이 오르내리며 다칠 수 있습니다.”

그는 신문기자 시절 기사 제목처럼 짧고 단호하게 덧붙였다.

“버스는 사람을 싣고 달리는 사회의 심장입니다.”

"사람 싣고 달리는 사회의 심장"

스포츠조선 편집부 기자 임진강 고석정 야유회.
스포츠조선 편집부 기자 임진강 고석정 야유회.

"목적지까지 안전운행, 신문편집과 매한가지"

김 씨는 ‘노동의 성스러움’을 강조한다.

“기자 시절에도 밤을 새우며 교정지를 붙잡는 게 힘들었죠. 그런데 지금은 도로 위에서 사람들을 실어 나르며 똑같은 땀을 흘립니다. 남이 보기엔 다른 일이지만, 본질은 같습니다. 세상을 조금 더 안전하고 편안하게 만드는 일이라는 점에서요.”

그에게 버스는 삶의 또 다른 신문이다. 활자를 배열하던 손은 이제 핸들을 잡았고, 문장 대신 승객들을 한 줄로 태운다.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이끄는 일이 곧 기사 편집과 다르지 않다.

“기자와 버스기사 경력에 모두 자부심

김민수 씨가 운전하는 마을버스 운전석 단말기.
김민수 씨가 운전하는 마을버스 운전석 단말기.

"노동은 언제나 성스럽다는 생각 밀려와"

그는 여전히 기자 출신이라는 사실에 큰 자부심을 갖는다. 동시에 버스기사라는 직업에도 똑같은 자부심을 느낀다.

“신문으로 세상을 밝혔고, 지금은 버스로 사람들의 하루를 밝히고 있습니다. 활자로 쓰든, 핸들로 몰든, 결국은 사람 곁에서 무언가를 더하는 일이지요. 직업에 귀천이 없다는 걸, 제 삶이 증명하고 싶습니다.”

김민수 씨의 하루는 이른 새벽에 시작해 해가 저물 때까지 이어진다. 피곤할 법도 하지만 그는 미소를 잃지 않는다. “오늘도 내 사무실을 잘 운영했다”는 뿌듯함이 그의 어깨를 지탱한다.

“60대 중반을 넘어서는 시점에서, 노동이 언제나 성스럽다는 생각이 밀려옵니다. 열심히 일할 수 있어 기쁩니다. 앞으로 최소 10년은 더 일하고 싶습니다. 승객들을 독자라고 생각하고 말입니다.”

"최소 10년은 더 운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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