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대통령의 다른 손길...결국 지도자 유형 선택은 유권자 몫
정치인은 한 손에 이상을, 다른 한 손에 망치를 들어야 한다. 문재인 전 대통령과 이재명 현 대통령을 보면, 이 두 손의 사용법이 얼마나 다른지 선명하게 드러난다.
문재인은 화가였다. 그는 ‘정의’와 ‘공정’이라는 단어를 진한 물감으로 섞어, 국민 앞에 한 폭의 이상향을 그려냈다. 그림 속에는 평화로운 한반도, 집 걱정 없는 청년, 품격 있는 복지가 담겨 있었다. 그러나 현실 정치라는 비바람이 몰아치자, 그 아름다운 색감은 번지고 희미해졌다. 캔버스는 남았지만, 그림의 윤곽은 흐릿해졌다.
반면 이재명은 목수다. 그는 오래된 집의 낡은 벽지를 보고 “이 색깔이 마음에 드십니까?” 묻지 않는다. 대신 곰팡이 난 벽을 뜯고, 삐걱거리는 문고리를 갈아낀다. 벽지는 나중 문제다. 손님이 집 안 공기가 달라졌다고 느끼는 순간, 이미 일의 절반은 끝난 셈이다.
부동산 정책에서 차이는 더 뚜렷하다. 문재인은 부동산 시장이라는 난폭한 말을 설득하려 했다. “이제는 천천히 걸읍시다.” 그러나 고삐는 풀렸고, 말은 더 거칠게 달렸다. 이재명은 말이 날뛰면 고삐를 당기고, 필요하면 채찍도 든다. 말에게 이상을 가르치기보다, 길을 바로잡는 데 집중한다.

인사 스타일도 극과 극이다. 문재인은 아는 연못에서 낚시했다. 물속 고기들의 성격은 잘 알았지만, 잡히는 종은 한정적이었다. 이재명은 바다에 그물을 던진다. 좋은 고기든 나쁜 고기든, 쓸모 있으면 살리고 필요 없으면 놔준다. 사람과의 ‘정’보다 결과를 중시한다.
대중과의 관계에서도 두 사람은 다른 언어를 쓴다. 문재인은 시인처럼 아름다운 문장을 읊었다. 사람들은 감동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시집을 덮었다. 이재명은 시장 상인처럼 거래를 한다. 말이 거칠어도 거래가 성사되면 손님은 돌아온다.
결국 문재인은 높은 산을 가리키며 “저기 오릅시다”라고 했지만, 산밑의 길은 깔지 못했다. 이재명은 “정상은 나중에 생각합시다. 우선 오늘 건널 다리부터 놓겠습니다”라고 말한다.
정치가 예술이라면 문재인은 서정시인, 이재명은 실용주의 공예가다. 국민이 원하는 건 지금 당장 눈앞에서 변하는 풍경인지, 아니면 먼 하늘의 청사진인지.... 앞으로 지도자 유형 선택은 유권자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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