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어도 늙음의 속도가 느린 사람이 있다. 어떤 사람은 40대에 벌써 관절 통증을 호소하고, 어떤 사람은 80대에도 산을 오르며 일상을 즐긴다. 같은 시간을 살아도 몸의 나이는 사람마다 다르다. 서울대병원 노년내과 정희원 교수는 이런 차이의 원인을 ‘저속노화 관리’에서 찾는다.
정 교수는 노화가 서서히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특정 시점을 기점으로 급격하게 빨라지는 시기가 있다고 설명한다. 그는 이를 노화의 변곡점이라 부른다. 사람의 몸은 보통 34세, 60세, 78세에 세 번의 큰 전환점을 맞는다. 각각의 시점에서 몸의 기능은 빠르게 떨어지기 시작하며, 이 시기를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따라 이후의 삶의 질이 달라진다.
34세 전후에는 대사 기능이 떨어지고 체중이 쉽게 늘어난다. 이 시기에는 유산소 운동을 꾸준히 하고 식단을 조절하는 것이 필요하다.
60세 전후에는 심혈관과 뇌혈관 질환이 나타날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때는 적극적으로 만성질환을 관리하고, 필요하다면 약물 복용도 망설이지 말아야 한다.
78세 이후에는 근육량 감소와 인지기능 저하가 빠르게 진행된다. 이 시기에는 체중 감소를 막고 근력 유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식생활은 저속노화를 실천하는 데 있어 가장 기본적인 관리 방법이다. 정 교수는 ‘저속노화 밥’을 실천적인 대안으로 제시한다. 이는 콩, 귀리, 현미, 백미를 4:2:2:2 비율로 섞은 밥이다. 이 밥은 혈당을 천천히 올려 인슐린 분비를 억제하고, 포만감을 오래 유지해 체중 관리에도 도움이 된다. 반대로 라면, 과자, 흰쌀밥 같은 정제 탄수화물은 혈당을 빠르게 상승시켜 노화를 촉진할 수 있다.
30대와 40대는 미토콘드리아 기능이 저하되기 시작하는 시기다. 이때는 유산소 운동이 가장 효과적인 노화 방지 수단이 된다. 걷기나 자전거 타기처럼 비교적 부담이 적은 운동을 주당 150분 이상 실천하는 것이 좋다. 정 교수는 유산소 운동과 근력 운동의 비율을 각각 60~70%, 30~40% 정도로 권장한다. 이 시기의 운동은 마치 노후를 위한 체력 저축과 같다.
60대 이후에는 약물 복용에 대한 생각도 바뀌어야 한다. 정 교수는 약을 벌처럼 여기기보다 치료와 회복의 수단으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당화혈색소가 9.5 이상일 경우 혈관 손상이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고 판단할 수 있으며, 이를 방치하면 심근경색이나 뇌졸중 같은 합병증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럴 때는 생활습관 개선과 함께 약물 치료를 병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70대와 80대에는 체중 유지와 근육 보호가 건강의 핵심이 된다. 이 시기에는 오히려 약간의 체지방이 있는 것이 면역력과 회복력 유지에 도움이 된다. 노인의 경우 체중 1kg당 하루 1.2~1.5g의 단백질을 섭취해야 근육 손실을 막을 수 있다. 맨몸운동이나 의자에 앉았다 일어나는 간단한 동작만으로도 충분한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노년기의 운동은 외모를 위한 것이 아니라 삶의 독립성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투자다.
한편, 고령층에서는 다약제 복용이 문제가 되기도 한다. 우리나라 65세 이상 노인 중 세 명 중 한 명은 하루에 5가지 이상의 약을 복용하고 있으며, 그중 일부는 10가지가 넘는 경우도 있다. 이 중 일부 약물은 오히려 신장 기능을 저하시키거나 낙상 위험을 높이는 등 부작용을 유발할 수 있다. 진통제, 수면제, 항불안제, 항히스타민제 등이 대표적인 주의 대상이다.
약물 관리를 위해서는 복용 중인 약의 목록을 정리해 두고, 병원을 방문할 때마다 반드시 의료진에게 알려야 한다. 정기적으로 약물 점검을 받고, 가능하다면 단골 주치의를 정해 상담받는 것이 바람직하다.
노화를 완전히 막을 수는 없지만, 늦출 수는 있다. 나이에 맞는 관리법을 알고 실천한다면 누구나 건강하게 백세를 맞을 수 있다. 노화는 숙명이지만, 그 속도는 선택일 수 있다. 오늘부터 실천하는 생활습관 하나가 10년 후의 삶을 바꿀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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