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말을 공용어로 주장한 실학파...100년 뒤 일제강점기의 상관관계

이대로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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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세기인 1446년부터 우리 글자인 한글을 쓰기 시작했으나 조선시대 제대로 살려서 쓰지 않았다. 그냥 안 쓴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짓밟은 이가 있었다. 오늘날 많은 이들이 대단하게 여기는 18세기 실학자란 이들은 우리 글자인 한글을 쓰지 말고 아예 중국말을 우리 공용어로 하자고 나서기도 했다. 바로 정조(재위 1776년~1800년)때에 ‘북학의’란 중국 여행기를 쓴 박제가(1750~1805년)가 그랬고 북학자 홍대용, 이희경도 그와 같은 생각이었다. 열하일기란 중국 여행기를 쓴 박지원(1737~1805)과 정약용(1762~1836) 도 한글보다 한문을 더 좋아한 사람이었다. 정조는 이런 사람들을 알아주었고 나라는 기울어 100년 뒤엔 일본 식민지가 된다.

오른쪽은 박제가가 한자로 쓴 글, 왼쪽은 홍대용이 한자로 쓴 글(한국학중앙연구원 자료)
오른쪽은 박제가가 한자로 쓴 글, 왼쪽은 홍대용이 한자로 쓴 글(한국학중앙연구원 자료)

실학자라는 이들은 한문으로만 글을 썼다. 박제가는 ‘북학의’란 중국 여행기에서 “한글이 모욕스런 오랑캐 글이며, 중국과 대등해지기 위해 한글을 버리고 중국어를 공용어로 해도 중국과 국경이 맞닿아 있으니 괜찮다"면서 “중국어는 문자의 근본이다. 나라 사람이 본래 사용하는 말을 버린다고 해도 안 될 이치가 없다. 이런 연후에야 우리에게 붙은 ‘이(夷·오랑캐)’라는 한 글자를 면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오늘날 영어 공용어로 하자는 자와 똑같다.

‘북학의’ 안대희 국역 중국어 편 153쪽에 박제가가 중국어를 공용어로 하자고 한 말.
‘북학의’ 안대희 국역 중국어 편 153쪽에 박제가가 중국어를 공용어로 하자고 한 말.

실학자 홍대용(1731 ~ 1783)도 비슷한 말을 했다. 그는 중국에 파견되는 사신으로 연경(지금의 베이징)에 가다가 만난 청나라 유생 손유의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나라는 중국을 사모하고 존숭하며 의관문물이 중화를 방불케 하여 예로부터 중국에서 소중화라고 부르지만 언어만은 아직도 이풍(오랑캐 풍습)을 면치 못했으니 부끄럽기 짝이 없는 일입니다”라고 <담헌집>집에서 말하고 있다. 우리가 우리말을 쓰는 것을 부끄러워하고 있다. 박제가도 홍대용도 수 년 동안 중국에 유학을 간 것도 아니고 몇 달 사신으로 다녀오고서 그런 글을 쓰고 주장을 했다. 그런데 오늘날 그런 자들을 우러러보는 학자들이 있으니 답답하다.

북학자인 이희경(1745-1805 이후?)도 < 설수외사(雪岫外史) >에서 "글자는 말의 근본이다. 그런데 조선은 글자를 말로 쓰지 않고 따로 말을 만들었다. 예컨대 '天'을 그냥 '천'이라 하지 않고 굳이 '하늘 천'이라 한 것이다. 다른 글자도 마찬가지다.(故乎天 不曰天 而曰寒乙天)“라고 말하면서 한자를 우리 공용문자로 쓰자고 주장했는데 "중국과 대등해지기 위해"라고 했다. 박제가, 홍대용처럼 저는 한문을 많이 아니 괜찮다는 생각에서 나온 잘못된 말이다. 훈민정음해례본 세종어제에 있는 창조정신, 애민정신, 실용정신, 자주정신만 제대로 이해했어도 이런 헛소리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오늘날에도 이런 자들이 판치니 어찌한단 말인가!

박제가가 쓴 북학의 국역본 154쪽에 나와 있는 중국어를 공용어로 하자는 이희경 이야기.
박제가가 쓴 북학의 국역본 154쪽에 나와 있는 중국어를 공용어로 하자는 이희경 이야기.

그런데 실학자 박지원도 이렇게 말한다. “청나라의 장관(壯觀)은 깨진 기왓조각에도 있었고 냄새 나는 똥거름에도 있었다.”라면서 우리의 한복과 상투까지 바꿔야 한다고 『열하일기』)에서 주장을 하는 것이 오늘날 미국을 우러러보는 나마지 미군의 똥이 우리 국민이 눈 똥보다도 좋다는 이들을 떠오르게 한다. 또 오늘날 많은 이들이 우러러보는 실학자 정약용도 그의 형 정약전은 한글로 글을 썼고 한글로 성경을 쓰면서 한글이 많이 쓰이고 알려졌으나 그는 그렇지 않았다. 실학자들이 과학과 시장경제를 강조하는 글을 한문으로 썼지만 그 때에 그 한문을 읽을 수 있는 국민은 1%도 안 되었다니 그들의 주장이 널리 알려지고 나라 발전에 이바지 하지 못했을 것이다.

제 나라말을 제 글자인 한글로 적는 말글살이가 가장 편리한 실용이고 실학이다. 그런데 조선시대도 이 편리한 말글살이를 외면했고 18세기 정조 시대에는 이렇게 얼빠진 이들이 날뛰다가 개혁은 실패했고 그 100년 뒤 19세기에 일본 식민지가 된다. 그런데 오늘날도 공자 맹자가 무슨 대단한 사람인 것처럼 섬기면서 세종대왕과 한글은 우습게 여긴다.

한문 숭배자 정약용이 태어난 집은 벌써 멋있게 기와집으로 짓고 기념관까지 있으나 한글을 만든 세종대왕이 태어난 곳이 어딘지도 모르고 있으며 그 곳으로 짐작되는 근처 길가에 신문지만한 표지석만 덩그렇게 놓여있다. 다산이 못된 사람이고 그를 기리지 말자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일에는 차례가 있고 먼저 할 일을 해야 다음 일도 잘 풀리는데 먼저 잘 모셔야 할 세종대왕은 거들떠보지도 않아서 하는 말이다.

왼쪽 사진은 종로구 길가 쓰레기통 옆에 세종대왕이 나신 곳이라고 알리는 표지석이고, 오른쪽 사진은 경기도 양주군 정약용이 난 생가 옆에 번듯하게 지은 다산문화관 모습이다.
왼쪽 사진은 종로구 길가 쓰레기통 옆에 세종대왕이 나신 곳이라고 알리는 표지석이고, 오른쪽 사진은 경기도 양주군 정약용이 난 생가 옆에 번듯하게 지은 다산문화관 모습이다.

왼쪽 사진은 종로구 길가 쓰레기통 옆에 세종대왕이 나신 곳이라고 알리는 표지석이고, 오른쪽 사진은 경기도 양주군 정약용이 난 생가 옆에 번듯하게 지은 다산문화관 모습이다.

조선시대 우리 글자인 한글보다 중국 글자인 한자를 더 좋아하던 유교 교육기관인 성균관과 향교를 신봉하는 이들은 오늘날에도 한글을 업신여기고 있다. 유교와 유학에 길든 이들이 전통문화연구회(초대회장 안병주, 3대회장 이계황)란 것을 만들고 한글보다 한자를 더 섬기고, 일본 식민지 때에 일본식 한자혼용에 길든 이들이 한자교육추진총연합회(회장 진태하), 어문정책정화추진회(회장 이한동)란 모임까지 만들고 우리말을 한글로 쓰는 우리 말글 독립을 가로막고 있다. 그리고 이 나라 지도자라는 대통령, 장관, 국회의원, 신문사 사장, 대학총장이라는 이들이 이들을 밀어주고 있다. 그러니 자주통일, 자주문화강국 꿈은 언제 이루어질지 모른다.

왼쪽은 다산 생가 근처 한강공원에 정약용이 쓴 한문책이 훌륭하다고 선전하는 모습, 오른쪽은 다산 정약용 생각에 모여 제례를 거창하게 지내는 오늘날 정치인과 한문 숭배자들 이름.
왼쪽은 다산 생가 근처 한강공원에 정약용이 쓴 한문책이 훌륭하다고 선전하는 모습, 오른쪽은 다산 정약용 생각에 모여 제례를 거창하게 지내는 오늘날 정치인과 한문 숭배자들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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