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범구 대사의 대사관 이야기] 현안과 현안 사이
* 외교사절의 기본 임무는 주재국과의 친선 협력을 강화하고, 갈등이나 분쟁이 있다면 이를 국익의 관점에서 적절히 해결해 내는 것일 것이다.
그래서 주재국과의 사이가 좋으면 외교관들도 지내기가 편하지만 , 그렇지 않은 경우라면 많이 피곤하다. 다행히 한-독 관계는 전통적으로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해 오고 있다. 대사관 직원들의 업무 만족도도 높은 편이다.
* 그렇다고 해서 두 나라 사이의 문제가 전혀 없다는 것은 아니다. 한 집안 안에서도 갈등이 있는데, 나라와 나라 사이에 전혀 문제가 없을 수는 없다. 더구나 교류가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이해관계 충돌이 생길 여지도 많아진다. 이럴 때 대사나 외교관들 역할이 중요해 진다. 같은 말도 "어"와 "아"가 다르지 않는가? 문제가 발생했을 때 가능한 한 상대의 "오해"를 "이해"로 바꾸어 내는 것은 현지 외교관의 역할이다. 또 상대방이 "우리 입장"에서도 한번 생각해볼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도.

* 한-독 간에도 나름 이런저런 현안이 많다. 왜 아니겠는가? 수교 역사로 보면 1883년 조-덕 수호통상조약 체결 이래 교류 역사가 136년이 됐고, 1958년 대사급 외교관계로 격상된지도 61년이 지났다. 지난해 한독 교역은 300억불 규모로 독일은 우리의 8번째 교역국이다. 우리는 독일의 20번째 교역국(일본은 15번째)이지만 2위-10위권 국가들이 모두 EU 국가들인 점을 감안하면 무역 파트너로서 한국의 비중은 결코 작지 않다.
참고로 한독 교역량은 한-영, 한-불, 한-이탈리아 무역 총량과 같다. 독일은 EU 안에서 한국의 최대 무역국이다.
* "독일" 하면 아마 많은 분들이 BMW나 Benz, Audi같은 독일 자동차들을 떠올릴 것이다. 실제로 자동차는 독일 수입액 중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국내에 굴러다니는 외제차 중 60% 이상이 독일차다.
독일은 제조업 강국이니까 독일로 부터 수입되는 물건으로 당연히 공산품을 떠올린다.
그러나 독일은 세계 3위의 농식품 수출, 수입국이기도 하다. 지난 한해 우리나라가 독일에서 수입한 농식품만 10억불 가량 되고, 그중 4억불이 돼지고기 수입에 들어갔다. 한국은 김치, 간장, 고추장, 라면 등을 7천만불 어치 독일에 수출했다.
* 얼마 전, 아프리카 돼지열병(ASF)에 감염된 폴란드산 돼지고기 일부가 섞여 있었다는 이유로 필리핀 정부가 독일산 돼지고기 수입을 금지했다. 식품 안전과 방역에 관한 문제라 우리 대사관에서도 독일 당국에 문의하였다. 실상이 어떻고, 해당기업에 대한 독일 당국의 조치는 어땠는지? 이런 돼지고기가 한국에도 혹시 수출됐는지 등등.
실무 라인에서 문의했는데 독일 농식품부 차관실에서 전화가 왔다. 대사를 만나서 직접 설명하겠다고.

* 푸크텔(H-J. Fuchtel) 정무차관은 1987년에 연방의회에 들어온 9선 의원이다. 내각책임제를 채택하는 독일은 장관 뿐 아니라 차관도 정치인이 맡는다.
현안 설명을 위해 차관이 직접 대사를 만나 설명하겠다는 것을 보니 독일 정부가 이 문제를 얼마나 중요하게 보는지 알 수 있었다. 우리가 갖는 의문사항에 대한 차관의 설명은 진지했고 납득할 만 했다. 일부러 배석시킨 축산물 협회장은 나더러, 아무 때고 자기들 축산물 처리 현장을 불시에 방문해 현장 점검을 해도 좋다는 자신감을 보여줬다.
* 푸크텔 차관과의 면담은 1시간 동안 진지하면서도 화기애애하게 진행됐다. 청사 정문을 나오며 드는 생각 하나.
"이건 우리가 칼자루를 쥐고 있는 사안이니까 이렇게 느긋하게 나올 수 있었겠지?"
행여나 "글로벌 호구" 소리 들을 일 없도록 조심하자.[2019년 8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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