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삐···익”
사진을 찍는데 카메라에서 소리가 났다. 카메라 용량이 ‘꽉 찼음’을 알려주는 신호였다. 얼마 전 친구들과 간 유럽 여행을 준비하면서 산 카메라였다. 용량도 컸기 때문에 이렇게 빨리 파일들로 가득 찰 줄은 미처 몰랐다. 새로운 사진을 찍기 위해서 삭제할 사진들을 들여다봤다. 사진은 온통 여행 때 촬영한 사진이었다. 사진을 삭제하려는 생각은 잠시 미뤄둔 채 감상에 젖는다.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내심 이렇게 사진을 많이 찍은 것이 다행스러웠다. 결국에 여행에서 남는 것은 사진뿐이니깐.
며칠 뒤, 여행을 같이 간 친구와 카페에서 만났다. 대화의 화두는 ‘여행’이다. 친구가 내게 찍은 사진들을 보여달라고 했다. 사진 파일이 담긴 노트북을 켜 사진을 보여준다. 체코 프라하의 성당, 오스트리아 야경, 헝가리 부다페스트의 강 등 아름다운 사진들로 가득했다. 이외에도 여행하면서 만난 사람들, 음식까지 사진에는 없는 것이 없다. 사진을 보며 함께 웃다가 친구가 문득 묻는다.
“우리 폴란드에서 뭐했지?”
“…….”
폴란드 사진을 찾는데 어떤 사진이 그 곳에서 찍은 건지 찾기 어려웠다. 아무리 봐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렇게 많은 나라를 다닌 것도 아니었다. 짧게 있었던 나라도 최소한 하루 이상은 머물렀다. 그런데 찾을 수가 없다. 뒤이어 더 큰 혼란이 온다. 사진들 대부분이 어디서 찍었는지, 언제 찍었는지 헷갈리기 시작한다. 회상을 하지만 기억은 단편적이고 불분명하다. 오히려 선명히 기억나는 것은 사진 찍고 있는 나의 모습이다. 최근에 갔다가 왔음에도 불구하고 친구의 설명을 들어야만 어렴풋이 기억난다.
‘대체 여행을 왜 가는 거지?’
집에 와서 생각해 보았다. 아마도 사람마다 대답은 상이할 것이다. 누구는 휴식을 위해서, 누구는 즐기기 위해서, 누구는 배움의 기회를 위해서 가지각색일 것이다. 거창하든 소박하든 중요치 않다. 정답은 없다. 다만, 모두 ‘목적’이 있다는 것이다. 사진 찍는 것도 일종의 목적일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사진을 찍는 것이 아니라 여행 그 자체를 즐기기 위해서 간 것이다. 사진은 단지 수단일 뿐 나의 여행 목적은 여행 그 자체에서 느낄 수 있는 즐거움이다.

돌이켜보면 ‘여행은 사진밖에 안 남는다’는 강박관념이 나를 카메라의 직사각형 앵글 틀 안에 가둔 것 같다. 눈으로 세상을 보는 게 아니라 카메라의 앵글로만 세상을 본다. 정작 여행 때 느낀 감흥은 없었고 사진을 보며 감정을 느낀다. 하지만 그 감정은 깊지도 크지도 않다. 너무나 많은 것을 놓쳤다. 친구들, 여행에서 만난 사람들과 나누는 대화, 성당 옆에서 들려오는 사람들의 노래 소리, 야경 속에 비친 다양한 불빛, 강가를 바삐 움직이는 수많은 배들.
이후로 나의 여행 가방은 가벼워졌다. 카메라는 이제는 더 이상 필수품이 아니다. 아니, 굳이 사진이 필요하다며 핸드폰으로 찍는데 그마저도 일행이 찍는다. 카메라만 빠졌을 뿐인데 여행은 완전히 달라진다. 짧게만 느껴졌던 여행에 여유가 생긴다. 명소만 보이는 것이 아니라 그 곳 사람들이 살아가는 일상이 보인다. 노래 소리도 들린다. 역동성이 느껴진다. 카메라를 들어 아프던 손목대신 말을 많이 해서 목이 아프다. 사진 보다 글을 쓰며 당시의 감정을 기록한다. 여행에서 돌아와도 사진에서 느낄 수 없는 감흥은 오랫동안 마음에 자리한다. 영화의 한 장면처럼 여행의 하나하나가 새록새록 기억난다. 그리고 누군가 나에게 여행이 어땠냐고 물어보면 사진이 아니라 말로 설명한다.
“여행을 통해 남는 것은 사진이 아니라 추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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