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 '권석천 칼럼' 기자 지망생들에 모범글이지만 논거 보충하면 어떨까 [신향식 '글 비평']

[신향식 발행인 / '글 비평'(3)]중앙일보 6월 4일 발행 [권석천의 시시각각] '나는 그들의 감정이 싫다'

[편집자 주] 글쓰기 전문매체 ‘글쓰기’의 신향식 발행인이 작성하는 ‘글 비평’을 연재합니다. 잘못된 문장을 지적하기보다는 글 구성과 단락 처리, 논거에 초점을 맞추려고 합니다. 분석 대상은 주로 언론인들과 교수들, 정치인들의 글입니다. 때로는 칭찬할 수도 있고, 때로는 매섭게 지적할 수도 있습니다. 특정 대상을 칭찬하거나 모욕을 주려는 게 아닙니다. 독자들이 참고하게 하여 대한민국의 글쓰기 수준을 한단계 끌어올리는 데 작게라도 이바지하려는 것입니다.

신향식 발행인은 일간지 기자 출신으로, 대학에서 교양과목 ‘글쓰기’를 강의하고 있습니다. 그는 연세대 석사 논문으로 제출한 ‘신문 글의 구성과 단락 전개에 관한 연구’로 대학원 자체 우수논문상을 받았습니다. 그 요약본이 서울대 1학년들이 기초필수로 배우는 과목의 교재 ‘글읽기와 글쓰기’에 모범예문으로 실린 적도 있습니다. 그는 미국과 독일의 글쓰기교육을 현장 취재하고, 토론논술형 교육과정인 국제 바칼로레아(IB)의 국내 공교육 도입을 촉구하는 기획보도를 하였습니다.

한국 언론에서 처음 시도하는 ‘글 비평’ 연재에 독자들의 관심과 격려를 부탁드립니다. 반론과 토론도 언제든지 환영합니다. 글 비평을 한다고 해서 '글쓰기' 신문에 완벽한 글만 실리지는 않을 것입니다. 신향식 발행인의 글에도 허점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함께 토론해 가면서 글쓰기 문화 발전에 힘을 모아보자는 취지로, 겸손한 마음으로, 연재를 합니다.

권석천 논설위원 글.(사진=중앙일보 지면 촬영)
권석천 논설위원 글.(사진=중앙일보 지면 촬영)

정확하고 간결한 문장에 단락원리 지켜

☞ 언론사 입사 준비생들이 본보기로 삼는 신문 글은 누구 작품일까. 이들은 한결 같이 권석천 중앙일보 논설위원이라고 이야기한다. 언론사 입사 공부모임에서도 권 위원의 글을 오려 두고, 분석하고, 베껴 써보기도 한다. 정확하고도 간결한 문장은 기본이다. 단락 원리에 맞춰 전개한다. 핵심을 꿰뜷는 송곳 같은 논리로 정평이 났다. 그는 제28회 안종필자유언론상 특별상(2016년)과 제25회 고운문화상 고운언론인상(2014년)을 수상했다.

☞ 중앙일보 연재 글 ‘권석천의 시시각각’을 분석해 보았다. 6월 4일에 실린 ‘나는 그들의 감정이 싫다’란 제목으로 작성한 글이다. 별표 다섯 개 만점에 다섯 개(★★★★★)를 부여하고자 한다. 그는 명성에 맞게 수준 높은 글을 작성했다. 하지만 몇 가지 의견을 밝히고자 한다. 우선 글의 흐름을 살펴보자.

☞ 첫 단락에서 정치인들이 감정적으로 내뱉는 발언에 문제제기를 했다. 그 논의를 할 필요성을 제시한 것이다.

☞ 둘째 단락인 [단락2]부터 여섯째 단락인 [단락2-5]까지는 문제제기에 관련한 사례를 세 가지 들었다. ①민경욱 자유한국당 대변인, ②한선교 자유한국당 사무총장, ③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감정적으로 발언한 장본인이다. 이 단락들은 한 단락으로 묶어도 상관 없다. 신문 편집 상 가로폭이 좁다보니 독자들이 읽기 편하도록 줄을 자주 나눴다.

논거로 분류할 수 있는 문장은 두 개뿐...주장 뒷받침하는 이유 근거 보충하면 어떨까

☞ [단락3]부터 [단락3-3]까지는 ‘한국 사회에서 개인감정과 공적 활동의 경계는 모호하다’를 소주제로 내걸고 사례를 제시했다. 뒷받침문장들로 판사와 검사, 기자의 사례를 각각 들었다. 이 역시 모두 한 단락으로 합할 수 있다. 그런데 (일부 독자들이 보기엔) 지루할 정도로 문장들을 늘어놓은 측면이 있다. 자신이 심판하는 것처럼 이야기했다. 그러다가 미안했는지 자신도 그랬다고 얼떨결에 자백한다. 물론 각 분야 위치에서 갑질 사례를 폭로한 글이라면 이 글은 충분히 가치가 있다.

☞ [단락4]와 [단락5], [단락6]에서는 당부를 했다. 역시 한 단락으로 처리할 수 있다. ‘당신은 어떤 말, 어떤 행동을 하기 전에 스스로 물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두 문장에 걸쳐 논거를 제시했다. 논거는 ‘그런 것들이 공적 영역을 오염시키지 않으려면’과 ‘지저분한 짓인가와 자기감정을 만족시키려는 것은 아닌가’다. 그 외에는 직접적으로 논거로 분류할 수 있는 문장은 없다.

☞ (글 분량으로 볼 때) 이 글은 논거가 부족해 보인다. 상황 설명과 주장이 대부분이다. 논거로 분류할 수 있는 문장을 아무리 찾아봐도 두 개밖에 없다. 물론 권 위원은 굳이 논거를 자세히 제시할 필요까지는 없다고 보았는지도 모른다. 그 이유를 세세하게 열거하지 않아도 정치인들이 자신들의 발언에 주의해야 한다는 점은 당연하다고 보았을 것이다. 부모에게 효도를 하는 게 이치인데 굳이 그 논거를 장황하게 늘어놓을 필요가 없다고 본 것과 마찬가지다.

☞ 그런데 여기서 논거와 관련하여 살펴볼 게 있다. 독일 청년인 방송인 다니엘 린데만 씨는 “한국인들 글을 보면 주장만 잔뜩 있고 이상하게도 논거(WHY)가 없다”고 지적한 바 있다.(글쓰기 신문 5월 9일자 보도) 그는 한국인들이 글에서 논거를 습관적으로, 묵시적으로 생략하는 문화를 갖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 시각으로 보면 권석천 위원의 글도 논거를 좀 더 보충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물론 이 글이 절대적으로 잘못되었다고 지적할 수는 없다. (하지만 대학에서 글쓰기 교양과목을 지도하는 내 처지에서는) 논거를 한두 문장이라도 더 보충하라고 학생들에게 말했을 것이다. 너무도 당연한 주장에 설득력을 더해 줄 수 있는 논거를 곁들이는 게 쉽지는 않다. 하지만 그렇게 해야 깊이 있는 글이 된다.

(물론, 논거란 단지 논리적 서술에만 국한하지 않는다고 볼 수도 있다. 사례를 제시하면서 비교, 비유, 설명, 묘사 등을 하는 것도 설득력 있는 논거의 범위에 들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결국 최종 판단은 글쓴이가 해야 한다. 논거를 어느 정도 범위에서 제시해야 글 전체의 주제를 효율적으로 전달하고, 독자를 설득할 수 있겠는지 고민하면 될 것이다.)

사진=픽사베이
산토리니 해안가.(사진=김동욱 기자)

☞ 권 위원 글을 다시 구성해 보자. 글 전체의 맥락은 다음과 같다.

(서론) 한국 사회에서 개인감정과 공적 활동의 경계는 모호하다

(본론) 거리를 두지 않을 때 ‘갑질’이 튀어나온다[모호할 때의 문제점]

(결론) 개인 감정이 공적 영역을 오염시키지 않으려면 차단벽이 있어야 한다

☞ 권석천 위원의 글은 ‘①너는 이래, ②너도 이래, ③너도 나빠, ④너는 그랬어야 했어’와 같은 식으로 펼쳐졌다. 구체적 사례를 알려줄테니 문제점, 부작용은 각자 알아서 파악하라는 식이다. 그렇다면 글 구성을 다음과 같이 수정하면 어떨까. 본론을 크게 둘로 나누어 ①앞 부분은 ‘왜 두 영역이 분명해야 하는가’를 사례를 통해 밝히고, ②뒷 부분에서는 ‘모호했을 때의 문제점’을 논거로 배치하는 거다. 그러면 권 위원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논거가 더욱 탄탄해진다. 논거를 좀 더 치밀하게 제시하지 않은 데 따른 아쉬움이 줄어들 것이다. 사회적이고 공적인 감정이 개인 감정에 비해 어떻게 다른지, 왜 그것이 공적 활동에 필요하며 개인 감정은 배제되어야 하는지를 논거로 조목조목 들면 더 논리적인 글이 될 수 있다.

☞ 유력 종합일간지 문화부 기자와 데스크를 거쳐 논설위원으로 활약하다 정년 퇴임한 언론계 선배를 지난주 광화문에서 만났다. 그 분은 “37년간 글을 썼는데도 여전히 글쓰기가 어렵다”며 겸손해 하셨다. 실제로 글쓰기는 정말 어려운 일이다. 남의 글을 비평하기는 쉬워도 직접 새로운 주제로 글을 쓰는 일은 쉽지 않다. ‘글 비평’을 연재하는 나의 글도 제3자가 분석해 보면 문제점이 적잖이 드러날 것이다. 예비 언론인들이 본보기로 삼는 글이 권석천 논설위원 컴퓨터 자판에서 더 많이 나오기를 기대한다.

사진=중앙일보 촬영
사진=중앙일보 촬영

☞ 다음은 <‘권석천의 시시각각’, 나는 ‘그들의 감정’이 싫다>를 분석한 개요 틀이다.

[단락 1] 정치는 허업(虛業)인가. ‘혀업(業)’인가. 요즘 정치인들이 감정적으로 내뱉는 ‘불상의 발사체’들을 보면서 의문이 생겼다. 혀로 쌓은 업보를 어떻게 하려고 저러는가.(문제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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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락 2] ‘차가운 강물 속에 빠졌을 때 이른바 골든타임은 기껏해야 3분이다.’ 민경욱 자유한국당 대변인의 페이스북 글이다. 헝가리 유람선 사고 실종자와 그 가족을 어떻게 여기면 이런 말이 나올까. 감정의 온도가 다뉴브 강물보다 차갑다.(문제제기 관련 사례1)

[단락 2-1] “아주 걸레질을 하는구먼. 걸레질을 해.” 타이밍을 놓치지 않으려는 듯 한선교 한국당 사무총장 발언이 나왔다.(문제제기 관련 사례2)

[단락 2-2] 지난달 29일 양승태 전 대법원장 첫 공판을 법정에서 지켜보며 느꼈던 건 또 다른 질감의 감정이었다.(문제제기 관련 사례3)

[단락 2-3] “이 민주정을 채택하고 시행하는 나라에서 법원에 대해 이토록 잔인한 수사를 한 사례가 대한민국밖에는 어디 더 있는지….” 전직 대법원장은 자신의 생각을 거침없이 밝혔다. 분노, 울분, 냉소, 우려, 참담함…. 그의 말을 들으며 밀려온 감정들의 리스트다. 그런데 한 가지 빠진 감정이 있었다. 부끄러움이다. 그가 42년간 법관으로 살아왔다면 이 한마디는 했어야 한다.(문제제기 관련 사례3)

[단락 2-4] “제가 검찰 수사의 문제를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재판하고, 유죄 판결해 왔다는 것이 한없이 부끄럽습니다. 그때 그 피고인들께 죄송한 마음입니다.”(문제제기 관련 필자 주장)

[단락 2-5] 부끄러움은 조금 특별한 감정이다. 사회적이고 공적인 감정이다. 객관적인 상황 인식과 자기 자신에 대한 성찰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이다. 그날 나는 양 전 대법원장 재임 당시 ‘대법원장님 심기(心氣)’를 살피는 게 왜 그토록 판사들에게 중요했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문제제기 관련 필자 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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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락 3] 한국 사회에서 개인감정과 공적 활동의 경계는 모호하다. 자기 마음속의 감정을 입 밖에 내지 않고 행동으로 보여주기도 한다. 부장판사 출신 도진기 변호사가 인터뷰에서 이야기했다.(문제제기 관련 사례4)

[단락 3-1] “판사들이 감정의 영향을 많이 받는 것 같습니다. 재판할 때 자신의 질문에 변호사나 피고인이 ‘그게 아니다’고 말하면 판사 기분이 상해 버립니다. 그렇게 생긴 감정이 판결에 영향을 미치고요.”(문제제기 관련 사례4) [단락 3-2] 판사뿐일까. 어떤 검사는 참고인으로 부른 사람이 소환에 응하지 않자 얼마 전 그를 해당 재판의 증인 명단에 집어넣었다. 그의 증언이 꼭 필요했을까. 당사자는 “검사분께서 기분이 안 좋았던 모양”이라고 씁쓸하게 웃었다.(문제제기 관련 사례5)

[단락 3-3] 기자들도 다르지 않다. 취재하다가 짜증이 나거나 비위에 거슬리면 비판의 볼륨을 높인다. 전문용어로 ‘조진다’. “어디 한번 붙어보자는 겁니까.” 불쾌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기도 한다. 공정해야 할 직업들이 자기감정에 따라 칼춤을 춘다. 창피하게도, 나 역시 내 감정을 엄격하게 대하지 못했다.(문제제기 관련 사례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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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락 4] 인간에게는 어찌할 수 없는 편향과 감정적 특성이 있다. 그런 것들이 공적 영역을 오염시키지 않으려면 차단벽이 있어야 한다. ‘나는 공적인 일을 하니까, 내가 느끼는 건 모두 공적인 것’이라고 착각해선 안 된다. 사무실에서도 마찬가지다. 업무를 하면서 그날 기분이나 자기감정에 거리를 두지 않을 때 ‘갑질’이 튀어나온다.(당부/주장)

[단락 5] ‘통이 작은 사람들이란 끊임없이 지저분한 짓으로 좋건 나쁘건 자기감정에 만족하는 법이다.’(발자크, ‘고리오 영감’) 당신은 어떤 말, 어떤 행동을 하기 전에 스스로 물어야 한다. ‘지저분한 짓’인가. ‘자기감정을 만족시키려는 것’은 아닌가. 공적인 감정 표현에는 ‘개인감정이 아니다’는 알리바이가 필요하다.(당부/주장)

[단락 6] 쥐꼬리만 한 권력을 쥐거나 마이크만 잡으면 개인감정이나 취향, 기호를 드러내야 직성이 풀리는 이들이 있다. 꼭 민경욱 씨나 한선교 씨 경우를 두고 하는 얘기는 아니다. 청와대든, 국회든, 정당이든 공론의 장에 자기감정의 부유물들이 떠다니게 해서는 안 된다.(당부/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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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락 7] 나는 더 이상 피곤해지기 싫다. 이해하기도 힘들고, 이해하고 싶지도 않은 그들의 감정에 내 마음이 부대끼는 게 넌더리 나게 싫다.(여운 처리 방식으로 주제 재강조) / 권석천 중앙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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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2.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