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동지에 담긴 뜻, 기운이 아직 여물지 않은 동지팥죽의 붉은 힘, 쫓아내기엔 올해가 너무 거칠어팥시루떡의 선택, 누르고 다져 조심히 넘기는 지혜불안의 시대, 음식이 먼저 몸과 마음을 낮춘다
동지 이야기를 꺼냈더니 뜻밖의 한마디가 돌아왔다. 올해는 '팥죽'이 아니라 '팥시루떡'을 먹어야 한다는 말이었다. 그 말을 한 이는 절에서 오래 봉사해 온 친구였다. 친구의 카톡이다.
"동지는 24절기 중 하나인데 보통 양력으로는 12월 22일쯤이고 음력으로는 11월이야. 1년 중에 밤이 제일 길고 낮이 제일 짧은 날이지. 근데 동지도 들어오는 시기에 따라 이름이 달라. 음력 11월 초순이면 애동지, 중순이면 중동지, 하순이면 노동지라고 불러.
보통 동짓날엔 팥죽 먹잖아. 근데 올해는 애동지라서 팥죽 말고 시루팥떡 먹는 게 좋대. 아직 기운이 여물지 않은 때라 팥죽처럼 기운 센 음식보다는 떡으로 살짝 넘기는 게 맞다는 거지. 그래서 올해는 '팥죽 말고 팥시루떡'을 먹는 게 좋아."
사찰 행사와 세시풍속을 몸으로 익혀온 친구라 절기 이야기를 할 때면 늘 근거가 분명하다. 그래서 그의 말은 미신처럼 들리지 않고 생활의 지혜처럼 다가온다.
그 친구는 먼저 올해 동지가 '애동지'라는 점을 짚었다. 애동지는 음력 초·중순에 드는 동지로, 기운이 아직 충분히 무르익지 않은 ‘어린 동지’를 뜻한다. 전통적으로 이때는 기운을 세게 쓰지 않는 것이 원칙이었다. 붉은 팥으로 액을 몰아내는 팥죽보다는, 흰쌀로 만들어 기운을 가라앉히는 떡이 어울린다고 여겼다. 애동지에 팥시루떡이나 백설기를 먹었다는 기록은 생각보다 흔하다.
애동지는 음력 초·중순에 드는 동지

대통령 탄핵 등 혼란 갈등 많았던 현실
팥죽과 팥시루떡은 성격이 다르다. 팥죽은 붉은색과 열의 상징으로, 막고 쫓는 음식이다. 한 해의 액운을 단호하게 끊어내고 싶을 때 선택된다. 반면 팥시루떡은 찌는 과정에서 김과 수분을 머금고, 시루에 켜켜이 쌓아 올려 완성된다. 밀어내기보다 다독이고, 끊기보다 이어주는 음식이다. 애동지의 성격에는 이 온순한 쪽이 더 잘 맞는다.
여기에 올해라는 현실이 겹친다. 사회와 경제, 사람들의 마음까지 유난히 소란스러웠던 해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을 둘러싼 정치적 혼란은 일상의 대화까지 파고들었고, 뉴스는 연일 긴장과 분열의 언어로 가득했다. 사회 전체가 오래도록 힘을 주고 버텨온 한 해였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더 강한 자극과 불의 기운을 보태는 것이 과연 현명한지 돌아보게 된다.
그래서 올해의 동지는 이렇게 정리된다. 기운을 세게 쓰는 날이 아니라 조심해서 넘기는 날이다. 애동지라는 절기의 성격에, 사회·경제·정서적 피로가 누적된 한 해의 분위기가 더해졌다. 이 두 조건이 겹치면서 팥시루떡이 더 권장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이는 특정 신념이나 유행의 문제가 아니라, 전통이 현실을 만날 때 자연스럽게 도출되는 선택에 가깝다.
기운 세게 쓰지 않고 조심해서 넘기는 날
팥시루떡에는 또 다른 의미가 있다. 한 번에 끝내지 않고 차곡차곡 쌓아 올리는 음식이라는 점이다. 급히 정리하지 말고, 무너지지 않게 다음으로 이어가라는 상징이 담겨 있다. 한 해의 끝에서 모든 것을 몰아내려 애쓰기보다, 조용히 정돈해 다음 해로 건너가라는 메시지다. 절에서 세시풍속을 배워온 친구의 말이 유독 신뢰를 얻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올해 동지에는 팥죽을 먹지 않아도 된다. 팥시루떡 한 조각으로도 충분하다. 소란스러웠던 한 해를 억지로 밀어내기보다, 무사히 지나왔음을 확인하고 차분히 다음을 준비하는 동지. 올해만큼은 그런 선택이 더 어울려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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