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외교에 앞서 인간의 보편적 윤리에 해당되는 ‘예(禮)’의 문제- 판문점에서 빈소인 연세병원까지는 불과 1시간도 안 되는 거리- 마치 조문한답시고 망자의 집 안에 들어가지 않은 채대문 앞에서 서성이다가 돌아서 버리는 것과 다르지 않아- 이는 예가 아니라 '마지 못한 예' 또는 '비례(非禮)'에 속해- 저항과 자주의 방법도 시간에 따라 달라져야- 자존심은 중요한 덕목이지만 언제나 자주인 것은 아니다

북측이 이희호 선생의 별세에 김여정 부부장을 시켜 판문점에 와서 조의를 표하면서 조화를 건네주는 방식을 선택했다. 이런 조문 방식을 선택한 북측 지도부의 의도가 무엇인지를 짐작하기란 어렵지 않다.
북측은 말만 앞세우면서 실천을 하지 않는 남측과는 당분간 대화하고 싶지 않다는 의사를 표시한 것으로 보인다. 북측은 미국의 승인 없이는 한 발짝도 움직이려 하지 않는 남측과는 더 이상 전향적인 대화가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런 판단을 내릴 수밖에 없는 북측 지도부의 어려움을 이해한다. 요컨대 북측은 대미관계의 타결 없이 대남관계의 진전은 불가능하다는 점을 뚜렷이 인식한 것이다. 6.12 회담 1주년을 기해 김정은 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보낸 친서는 이를 방증한다.
하지만 나는 이번에 북측이 보인 조문 방식에 유감을 표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번 경우는 외교에 앞서 인간의 보편적 윤리에 해당되는 ‘예(禮)’의 문제다. 판문점에서 빈소인 연세병원까지는 불과 1시간도 안 되는 거리다. 이것은 마치 조문한답시고 망자의 집 안에 들어가지 않은 채 대문 앞에서 서성이다가 돌아서 버리는 것과 다르지 않으며, 이는 예가 아니라 '마지 못한 예' 또는 '비례(非禮)'에 속한다.
나는 지난번 하노이 조미회담에 출정하는 김정은 위원장이 그토록 요란스러운 기차 여행을 할 이유가 과연 무엇인지에 대해 의문을 표시한 바 있다. '실실허허'보다는 '허허실실'이 단연 우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미국의 대북 압박과 제재가 얼마나 부당한 것이고 이에 대응하는 북측의 저항이 얼마나 불가피한 것인지를 모르는 바 아니다. 하지만 이제 북측도 달라진 시대에 능동적으로 대응하는 변통력을 보일 필요가 있다.
정 남측과 대화하고 싶지 않으면 김여정 부부장이 빈소에 와서 정중하고 침착하게 참배와 조문만 하고서 공적으로 아무도 만나지 말고 돌아갔으면 되는 일이다. 이렇게 해야 예는 예대로 차리면서 자주는 자주대로 지키는 모습을 보일 수가 있는 것 아닌가?
저항과 자주의 방식도 시간에 따라 달라져야 한다. 자존심은 중요한 덕목이지만 언제나 자주인 것은 아니다. 나는 북의 판단을 존중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북이 보다 더 많은 실속을 챙기기를 바라기도 한다. 북측 지도부의 실사구시 정신이 아쉽게 느껴진다.[김갑수/작가]




기사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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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현 2019.06.14 16:55
대화재개의 빌미를 안 주기 위함 아니겠습니까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