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강경 부모님과 이웃 농민들피땀 흘려 키운 배추를 포기해야 할 때식당 찾아다니며 판로 열고 트럭 올라가 배추 운반갈아엎어질 운명이던 배추는 식탁에 오르고고향 농민들 얼굴엔 다시 웃음이 피어났다
[편집자 주] 물치유 전도사로 알려진 (주)물들임 정연숙 대표의 생애를 따라가는 연재를 합니다. 단순한 성공담이 아니라, 한 어린이의 호기심이 어떻게 소명이 되었는지, 상처를 보던 시선이 어떻게 치유의 길로 발전했는지, 그리고 물을 통한 몸의 회복이 어떻게 마음의 회복과 연결되는지를 차근히 풀어봅니다. 독자에게도 잊고 있던 자신의 ‘마음의 씨앗’을 다시 떠올리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마음 한편엔 언제나 고향(충남 강경) 생각
스물몇 살 무렵, 정연숙 씨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었다. 쌍용그룹 기획실에서 근무하며 사회생활을 하던 시기였다. 정장을 입고 출근하고 회사 업무에 몰두하는 평범한 직장인이었지만, 그의 마음 한편에는 언제나 고향 강경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고향에서 들려온 한 소식은 남의 일처럼 들리지 않았다. 배추값이 폭락해 농민들이 애써 키운 배추를 갈아엎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당시 농촌은 깊은 절망 속에 있었다. 몇 달 동안 땀 흘려 키운 배추가 수확철이 되자 제값을 받지 못했다. 팔수록 손해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부모님과 마을 사람들도 연일 한숨을 쉬었다.
“이걸 다 어쩌나.” “그냥 밭에 갈아엎어야겠어.”
잠자리 들어도 부모님 한숨 귓가 맴돌아
농민들에게 배추는 단순한 농산물이 아니었다. 한 계절의 땀이었고, 가족의 생계였으며, 다음 해를 살아갈 희망이었다. 그런데 그 희망을 눈앞에서 땅속에 묻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그 소식을 들은 정연숙 씨는 마음이 편치 않았다. 잠자리에 들어도 배추밭이 떠올랐고, 출근길에도 부모님의 한숨이 귓가를 맴돌았다. 그러다 문득 자신에게 “정말 방법이 없을까?” 하면서 질문을 던졌다.
많은 사람들은 안 되는 이유를 먼저 찾지만, 그는 늘 할 수 있는 방법을 먼저 찾는 사람이었다. 우렁을 잡던 어린 시절에도 그랬고, 학급비를 마련하기 위해 재활용품을 모으던 반장 시절에도 그랬다. 문제가 보이면 외면하기보다 몸을 움직이는 것이 그의 방식이었다.
안 되는 이유보다 할 수 있는 방법 모색
결국 그는 행동에 나섰다. 주말이면 고향으로 내려가 배추 상황을 살폈고, 서울에서는 판로를 찾기 시작했다. 당시 대학 식당과 기숙사, 단체 급식소에서는 많은 양의 채소가 필요했다. 누군가 연결만 할 수 있다면 길이 열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유통 경험도, 판매 경험도 없었지만 일단 부딪혀 보기로 했다. 그는 근무 중 점심시간 등에 잠시 외출하여 회사 유니폼 차림으로 곳곳을 돌아다니며 직접 배추를 소개했다. 특히 인근 대학 식당도 찾아다니며 농민들의 사정과 배추의 품질을 설명했다.
“이미 거래하는 곳이 있습니다.” “굳이 바꿀 이유가 없네요.”
처음부터 일이 순조로운 것은 아니었다. 거절도 많이 당했다. 그러나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농민들이 흘린 땀을 떠올릴 때마다 다시 문을 두드렸다. 배추를 직접 보여주고, 맛을 설명하고, 진심을 전했다. 그렇게 발로 뛰기를 반복하자 조금씩 주문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식당 찾아다니며 고향 배추 공격적으로 소개
마침내 배추를 실은 트럭이 서울에 도착했다. 정연숙 씨는 빨간 고무장갑을 끼고 트럭 위에 올라갔다. 쌍용그룹 기획실에 다니는 젊은 직장인이 회사 유니폼 차림으로 배추를 나르는 모습은 사람들의 눈길을 끌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그는 남들의 시선을 의식할 겨를이 없었다. 배추 한 포기, 두 포기를 옮길 때마다 마음속에는 이상한 기쁨이 차올랐다. 갈아엎어질 뻔한 배추가 누군가의 식탁으로 향하고 있다는 사실이 그를 움직이고 있었다.
결국 마을의 배추는 상당 부분 판매되었다. 절망 속에 있던 부모님과 마을 농민들은 웃음을 되찾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나중에는 이 이야기가 사내 신문 기사로 소개되기도 했다. 많은 사람들은 결과를 보고 놀랐지만, 정연숙 씨가 얻은 가장 큰 수확은 따로 있었다.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과 포기하는 사람의 차이는 능력이 아니라 행동이라는 사실이었다.
회사 유니폼 차림으로 트럭에 올라가 배추 날라
지나고 보면 그날의 배추는 단순한 농산물이 아니었다. 그것은 절망 앞에서 포기하지 않는 마음의 상징이었다. 우리는 살아가며 수많은 ‘배추밭’을 만난다. 실패한 사업일 수도 있고, 무너진 관계일 수도 있고, 회복되지 않는 건강일 수도 있다. 그때 많은 사람들은 “이제 끝났다”고 말한다. 그러나 인생은 그 순간 결정되지 않는다. 안 된다고 결론 내리기 전에 한 번 더 움직여 보는 사람에게는 새로운 길이 열리기도 한다.
정연숙 씨는 지금도 그 시절을 떠올리며 “배추를 갈아엎을 수는 없었어요”라고 말한다.
그 말은 단지 배추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희망을 포기할 수 없었던 한 사람의 마음에 대한 이야기다. 그리고 그 마음은 지금도 사람들의 건강과 삶을 돕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희망은 상황이 좋아져서 생기는 것이 아니다. 희망은 먼저 움직이는 사람의 발걸음에서 시작된다. 그날 빨간 고무장갑을 끼고 트럭 위에 올랐던 젊은 직장인은 이미 자신의 삶으로 그 사실을 증명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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