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용덕 대구대 명예교수 집필...2019년 『반일 종족주의』에 학문적 반론서울대 출판문화원 발간...‘자율성’에 감춰진 구조적 강제성 해부날카로운 분석과 이념의 균형, 풍부한 사료와 해석의 깊이 눈길
서울대학교 출판문화원이 최근 출간한 『식민지 근대화의 실상: “반일 종족주의” 비판』은 제목만으로도 강렬한 문제의식을 드러낸다.
전용덕 대구대 명예교수가 집필한 이 책은 일제강점기 조선의 산업화가 ‘근대화’였다는 통설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연구서다. 2019년의 『반일 종족주의』에 관한 학문적 반론이기도 하다.
전용덕 교수는 1970년대부터 농업경제와 식민지 경제사를 연구해온 학자다. 그는 이번 저서를 통해 "'근대화'라는 단어로 식민지의 폭력성을 은폐하거나 희석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거듭 강조한다.
"자유로운 거래 같았지만 강요된 경제활동"
저자는 조선이 자본주의 체제에 편입된 것이 아니라, 일본의 전쟁 수행을 위한 통제경제 체제, 곧 ‘전쟁 사회주의(war socialism)’ 아래 놓여 있었다고 진단한다.
자유로운 거래처럼 보였던 경제활동은 실상 강요된 것이며, 자발적 참여로 포장된 징용과 학도지원 역시 “덜 고통스러운 방식의 복종”이었다는 것이다.
그는 ‘자율성’이라는 이름 아래 감춰진 구조적 강제성을 해부하며 자유주의 경제철학의 기준에 미치지 못한 상황을 낱낱이 드러낸다.
이 책의 가장 돋보이는 점은 ‘자유’와 ‘근대’라는 개념에 새로운 질문을 던졌다는 데 있다. 단순히 경제성장 수치나 산업화의 속도를 근대화의 증거로 삼는 기존 논리에 대해, 저자는 “성장은 있었지만 인간은 없었다”는 날카로운 비판을 제기한다.
"성장은 있었지만 인간은 없었다"

'역사란 무엇인가' 근본적 성찰 제안
하지만 이 책이 제시하는 관점은 결코 만능은 아니다. 지나치게 경제학 중심의 분석은 사회문화적 맥락을 도외시하는 경향이 있고, 조선인의 생존 전략이나 주체적 대응이 시장 논리만으로 환원될 수는 없다는 점에서 비판의 여지도 있다.
또, 일본 내 유사 정책이나 다른 식민지 국가들과의 비교가 부족하다는 점은 ‘전쟁 사회주의’라는 용어의 설득력을 일부 약화시킨다.
그럼에도 이 책은 ‘근대화’라는 이름의 역사 해석이 얼마나 쉽게 국가 권력에 의해 왜곡될 수 있는지를 드러낸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특히, 오늘날 한국 사회의 정치적 담론 속에서 ‘식민지 근대화론’이 점점 현실 정치의 언어로 재소환되고 있는 상황에서, 이 책은 단호한 경고를 던진다.
이 책은 단지 연구자들만을 위한 저작이 아니다. 세대와 위치에 따라 다른 울림과 질문을 던지는 책이다.
청소년과 대학생들에게는, 이 책이 ‘역사란 무엇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을 제안한다.
단순한 사실 암기나 연표 정리가 아닌, 권력의 언어를 분별하는 비판적 사고를 키워줄 수 있다. 자율과 강제의 경계, 발전과 수탈의 이중성, 선택이라는 단어에 숨겨진 구조를 의심할 수 있는 눈도 길러준다. 이 책은 역사 해석의 프레임을 바꾸는 법을 가르친다고 평가할 수 있다.
정치인들에겐 묵직한 윤리적 경고
일반 국민에게는, 익숙한 ‘결과 중심의 발전 담론’에 물음을 던진다. “그래도 일제가 근대화를 해줬다”는 주장의 이면을 파헤치며, 통계 너머의 고통과 억압을 기억하라고 말한다. 과거를 돌아보는 방식이 곧 현재의 태도를 결정짓는다는 깨달음을 전한다.
정치인에게는, 이 책이 묵직한 윤리적 경고를 담고 있다. ‘발전’이라는 이름으로 국민의 자유를 억압하고, 정책 성과로 고통의 역사를 포장하려는 시도가 얼마나 위험한지를 되묻는다. 지도자의 역사 인식은 곧 국민에 대한 책임감의 척도이며, 과거를 왜곡하는 순간 미래 또한 잃게 된다는 경고다.
『식민지 근대화의 실상』은 날카로운 분석과 이념의 균형, 풍부한 사료와 해석의 깊이를 겸비한 문제작이다.
해석은 논쟁적일 수 있지만, 그 논쟁 자체가 오늘의 역사 인식을 더욱 튼튼하게 만드는 발판이 된다. 무엇보다 이 책은 묻는다.
“우리는 과연 무엇을 ‘근대화’라 부르고 있는가?”
(전용덕 지음 |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 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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